“기업이 제품만 만든다고? 희망도 만들어요”
“기업이 제품만 만든다고? 희망도 만들어요”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4.01.1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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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불편하지 않도록…더불어 행복한 기업들

[더피알]장애인과 소통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과거 기업의 장애인 대상 사회공헌 활동이 기부금을 전달하는 방식의 소극적인 행동에 그쳤다면, 요즘은 장애인 오케스트라를 만들거나 전용 도서관을 지어주는 등 더불어 행복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건설 등 기업 특성에 맞춰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업(業) 연계형 사회공헌’도 늘어나는 추세다. 2014년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더 많은 사각지대를 환하게 밝히기를 기대한다.

▲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제일지점에서 열린 ‘착한 갤러리’ 행사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헤드셋을 통해 소리로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에게 세상 들려주는 은행

“이 작품은 프랑스의 화가, 밀레가 그린 ‘만종’입니다. 만종은 교회나 절에서 저녁을 알리는 종소리라는 뜻이지요. 그림은 가로 55.5 cm, 세로 66cm의 직사각형의 캔버스로 제작됐습니다. 화면의 상단 1/3은 태양이 노을 지며 저물고 있습니다. 이 노을은 은은하고 따사로운 색채로 표현돼 감상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하단 2/3의 지평선 아래로 들녘이 펼쳐지고, 낡은 옷차림의 부부가 마주서 있습니다. 부부는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의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고개 숙인 모습으로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왼쪽에 서 있는 남편은 겸손하게 모자를 벗어든 모습인데, 바짓단이 발목까지 껑충하게 올라오는 낡은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마주선 아내는 얌전하게 두 손을 모은 모습으로, 흙먼지가 잔뜩 묻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한 폭의 그림이 떠오르는 이 글귀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착한 갤러리’ 작품설명 중 일부분이다. 착한 갤러리는 일반인은 물론 시각장애인도 소리로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눈으로 보는 듯 생생히 묘사한 오디오 해설을 제공하는 이색 전시회다. 오는 31일까지 밀레의 ‘만종’,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김홍도의 ‘씨름도’ 등 동서양 미술작품 10점이 전시된다.

최근 기자가 직접 갤러리가 열리고 있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제일지점을 찾아가 보니 은행 한 편에 미술작품들이 나란히 놓여있고, 각 작품 앞에 오디오플레이어가 비치돼 있었다. 헤드셋을 들면 노현정 아나운서, 배우 이종석 등이 녹음한 그림 묘사 해설을 들을 수 있는 방식이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라 작품을 들으니 정말 눈을 감고 있어도 그림이 떠올랐다. 은행 업무를 보러 온 직장인들도 눈 감고 작품을 감상하며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은행 관계자는 “기존 미술관들은 시각장애인에게 작품의 작가나 배경설명에 대한 오디오 해설을 제공해 시각장애인들이 미술작품 자체를 감상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아 전시회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3회째를 맞은 이 캠페인은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전 세계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예방 가능한 실명퇴치운동(Seeing is Believing)의 일환으로 국내에서 진행되는 목소리 재능기부 캠페인이다.

은행 측은 지난 2011년 이후 매년 임직원 및 일반인들의 목소리 기부를 통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를 제작, 전국 맹학교 및 점자도서관에 기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원봉사 참가자도 늘고 있다. 2011년 착한도서관 시즌1에는 약 5만명이, 2012년에는 6만명이 지원했다. 이 중 전문 성우들의 심사를 통해 최종 선발된 참가자와 임직원들이 시각장애인 전용 영화와 수십권의 이야기책 낭독에 참여했다.

은행은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마라톤 대회, 걷기대회, 축구 클리닉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문화 사각지대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세상을 들려주고 있다.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최근 지역 사회복지단체에 차량기증식을 연 가운데 스타렉스 이지무브 차량의 승차 시연을 하고 있다.

함께 움직이는 세상, 장애를 희망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은 ‘함께 움직이는 세상’이라는 사회공헌 슬로건 아래 나눔경영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자동차를 통한 인류의 행복 추구’라는 경영 이념을 바탕으로 △교통안전 문화 정착(세이프 무브) △장애인 이동편의 증진(이지 무브) △환경보전(그린 무브) △임직원 자원봉사 활성화(해피 무브)를 사회공헌 4대 과제로 삼아 관련 활동을 추진 중이다.

특히 이지무브는 자동차기업의 전문성을 살린 장애인 지원 활동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교통 약자들의 이동 편의를 위해 ‘이지무브 차량’ 개발을 시작해 온 현대차그룹은 미니밴, 스타렉스 등 자사 차량에 휠체어 슬로프, 회전 승하강시트, 휠체어 크레인 등 편의 사양을 적용해 왔다.

또 저상 버스를 출시하는 등 교통약자가 안전하게 차를 타고 내릴 수 있게 설계된 차량들을 생산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나아가 2010년 8월 장애인의 이동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회적기업 ‘㈜이지무브’를 설립해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이 회사는 장애인과 노인들의 이동 편의를 위한 보조·재활기구를 생산·판매한다. 소비자인 장애인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든 것도 특징. 직원 30%를 장애인과 고령자로 채용해 기획조정, 생산관리 등 각 분야에 배치한 결과 설립 3년 만에 32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2012년 특허 등록한 ㈜이지무브의 자체개발 제품인 피난용 보조기기 KE-체어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4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KE-체어는 화재 및 재해 시 장애인이 긴급 대피하도록 휠체어에 특수 바퀴를 장착했다. 계단을 미끄러지듯이 내려올 수 있는 피난 기구다.

현대차그룹은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시설을 갖춘 놀이터 ‘아이마루’ 설립도 지원하고 있다. 아이마루는 원반 던지기, 짐볼 타기 등 움직임, 감각, 지각능력을 요구하는 심리운동을 통해 장애 아동의 운동 기능 및 심리 건강을 개선시키는 공간으로 특수 시설과 함께 전문 교사를 두고 있다.

▲ ‘hello! sem 오케스트라’ 장애아동 단원들과 홍보대사 김미숙 씨가 10월 15일 오케스트라 창단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장애인은 오케스트라 하면 안되나요?

삼성전기는 장애인 지원을 회사의 대표 사회공헌활동으로 선정하고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장애아동으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 ‘Hello! SEM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는 등 나눔에 앞장서고 있다.

‘Hello! SEM 오케스트라’는 국내 최초 장애아동 오케스트라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장애아동·청소년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재활 치료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지적·자폐성·지체·시각 장애가 있는 아동과 청소년으로 구성된다.

단원들은 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클라리넷·플루트 등 악기를 받게 된다. 1대1 레슨과 단체 레슨 등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정기연주회, 전국순회공연, 해외연주회 등 다양한 활동 기회도 주어진다.

최치준 삼성전기 사장은 지난해 10월 15일 열린 창단식에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한 장애 아동이 음악을 통해 꿈을 실현하고 사회와 소통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오케스트라를 만들게 됐다”고 창단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이번 오케스트라는 국내 임직원 1만3000여명이 매달 두 번씩 점심을 분식으로 대신하며 아낀 금액을 모아 지원하는 후원사업이라 나눔의 의미가 더 뜻깊다.

2005년부터 저소득층 관절 장애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인공관절 무료 시술 활동 역시 삼성전기의 대표 사회공헌활동이다. 지금까지 전국 350여명의 장애인들이 시술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이밖에 삼성전기는 ‘전국 장애학생 음악콩쿠르’, ‘전국 장애인 배드민턴대회’ 등 다양한 사회공헌사업 진행하고 있다.

▲ 한화건설 봉사단이 꿈에그린도서관에 진열할 책장을 조립하고 있다.

장애가 불편하지 않도록, 역량 모으는 기업들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되는 따듯한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 특성과 연관된 도움을 제공하는 업 나눔 활동도 늘어나는 추세다.

우선 건설사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눈에 띈다. 한화건설은 지난 2011년부터 장애인 시설 내 유휴공간에 도서관을 조성하는 ‘꿈에그린 도서관’ 조성사업을 시행 중이다. 2011년 3월 서울 홍은동에 위치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그린내’에 ‘꿈에그린 도서관’ 1호점 개관을 시작으로 지난달에는 성북구 서울시장애인시설협회에 29호점을 개관했다.

대우건설은 단순 기부에서 벗어나 참여형 봉사활동으로 사회공헌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사내 자원봉사조직을 확대해 전 직원이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특히 ‘사랑나눔 캠페인’은 각 본부별로 소외계층과 장애이웃을 위한 ‘릴레이 봉사활동’을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3월 집 밖으로 외출이 불가능한 재가장애인 3가구를 방문해 봉사활동과 생필품 기부를 진행한 것을 시작으로 2013년에만 약 1700명의 임직원이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대림산업은 사회공헌 활동 중 소망나눔을 통해 자활이 필요한 장애인 및 사회적 약자들에게 물품 및 성금을 기탁하고 있다. 또 지난 2004년부터 사내의 중고 PC를 복지기관과 연계해 국내 장애인 등에게 기증하고 있다.

이동통신 3사는 ‘소통’이라는 사업 특성을 활용해 사회공헌을 펼친다. SK텔레콤은 2007년 영상통화를 이용해 수화로 고객 문의 사항을 상담하는 ‘3G+영상고객센터’를 개설했다. ‘3G+영상고객센터’는 청각장애인이 영상통화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면 숙련된 전문 상담원이 수화로 고객 문의 사항을 처리해주는 서비스다.

LG유플러스는 임직원과 자원봉사자의 목소리 재능기부로 제작한 시각장애인용 학습도서를 장애인단체에 기부하는 ‘유플러스 보네이션(Vonation·Voice+Donation)’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KT는 2003년부터 ‘소리찾기 사업’을 진행 중이다. 청각장애 아동들에게 귀 수술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총 673여명의 청각장애아동에게 인공와우, 뇌간이식 수술, 재활치료를 지원했다.

이밖에 삼성전자는 아이캔(eyeCan) 마우스를 개발해 ‘따뜻한 기술’ 전파에 앞장서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보급을 시작한 아이캔 마우스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눈동자 움직임으로 PC를 조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구마우스다.

기존 제품가격은 1000만원에 육박하지만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와 공개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5만원 이내로 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췄다.

삼성화재는 ‘안내견 학교’를 통해 시각 장애인에게 안내견을 분양하고 있으며, 장애인을 대상으로 사회 적응훈련 지원 및 우수장애학생 육성 등의 활동을 전개 중이다. 삼성화재 재무설계사들은 2005년부터 장애인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장애인 고용에 힘쓰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SPC그룹은 지난달 19일 서울 은평구 서울시립은평병원 1층에 ‘행복한 베이커리&카페' 4호점을 열었다. SPC그룹이 매장 설비와 인테리어, 직원 교육 등을 지원하고, 서울시는 매장 공간 마련을, 사회복지법인 애덕의 집은 장애인 채용과 매장 운영을 맡는 공익사업이다. 수익금은 전액 장애인 직업재활에 사용한다.

스타벅스코리아는 2012년 커피업계 최초로 한국장애인 고용공단과 ‘장애인 고용증진 협약’을 체결하고 한해 94명의 장애인 파트너를 신규 채용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장애인 바리스타가 일하는 매장의 직원을 대상으로 장애인 인식 개선 및 수화 교육 과정을 개설하는 등 상생의 기업문화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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