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브랜딩…‘같은’ 단어, ‘다른’ 의미
삼성 브랜딩…‘같은’ 단어, ‘다른’ 의미
  • 박재항 (admin@the-pr.co.kr)
  • 승인 2014.01.1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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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항의 C.F.

칼럼명인 C.F는  커머셜 필름(Commercial Film)과 기업 파일(Corporate File)의 중의적 표현입니다. 커뮤니케이션에서 기업의 ‘비밀파일’을 뽑아내며 브랜드 전략을 읽어가고 있습니다.

[더피알=박재항] 1999년 여름 내내 숨가빴다. 엄밀히 따져보면 IMF 금융위기가 조금은 진정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던 1998년 가을부터였다. ‘디지털’이 전자산업뿐 아니라 사회전체의 변화를 몰고 오는 키워드로 떠오르던 때였다. 그 변화의 파장이 어느 정도까지 갈 것인지 아무도 제대로 예측할 수 없었다.

당시 삼성전자 최고경영층은 디지털 부문에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미래 변화를 꿰뚫는 통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한편으로는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결정이기도 했다.

삼성전자를 설립해 전자산업에 뛰어든 지 30년이 가깝게 된 시점이었고, 나름 매출 등의 외형은 늘어났고, 품질 및 제품 개발 수준도 선두 업체들과 비등한 수준에 올랐지만, 해외 소비자들에게까지 그같은 인식이 확산되진 않았다. 브랜드 위상과 이미지에 있어서도 글로벌 선두 기업들과의 격차가 여전했다.


불확실하지만 디지털이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킬 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나왔다. 소비자들의 전자 브랜드 인식체계가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디지털에 거의 모든 것을 걸기로 했고, 기업 슬로건으로 사내외에 의지를 표명하기로 했다.

슬로건의 실무 작업을 하면서 세 가지 방향을 잡고 그에 맞춰 수십개의 대안을 개발했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고 개인적으로 밀었던 안은 ‘Discover Digital. Discover Samsung’이었다. 디지털이 소비자들에게 용어부터 생소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디지털 세계를 접하고 탐험해보도록 촉구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삼성을 발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시장과 소비자를 디지털세계로 이끌다

하지만 최고경영층을 포함한 임원회의를 거쳐서 결정된 안은 우리가 밀었던 ‘Discover~’이 아니었다. 삼성만의 디지털이 어떻게 다른가에 좀 더 무게를 둔 것이었다. 그게 바로 ‘Samsung DigitAll. everyone’s invited’였다.

굳이 뜻을 풀이하자면 삼성은 디지털에 관한 모든 제품과 기술을 가지고 있고, 상층 소비자만을 겨냥하는 선두 업체와 달리 모든 이들이 즐기는 디지털을 지향한다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경쟁업체까지 직접적으로 겨냥한 당시 상황에 맞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삼성의 행보와도 잘 맞아 떨어졌다. 다만 소비자가 주체가 되는 ‘Discover’란 단어가 갖는 역동성이 담겨져 있지 않아 좀 아쉬웠다.

시장과 소비자는 디지털이 몰고 온 변화에 역동적으로 반응했다. 2000년대 중반 이전에 삼성전자는 휴대폰의 수익성 측면에서 노키아를 앞섰고 PDP, LCD 등의 디지털 기반의 제품들이 주류로 등장하면서 TV에서도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앞선 디지털 기술력에 초점을 맞추어 ‘Imagine’이란 단어를 슬로건 형식으로 제시해 해외에서의 브랜드 광고에 활용했다.

국내에서는 제품별로 슬로건을 쓰기도 했다. ‘내 손 안의 디지털 세상’ ‘디지털 익사이팅’에서 2007년 ‘Talk, Play, Love’로까지 진화한 애니콜의 슬로건이 대표적이다. 해외 브랜드 커뮤니케이션부터 국내에서의 대표 제품군의 슬로건까지 당시 삼성전자는 디지털의 세계를 넓게 규정하며 포용하려고 방향을 취했다. 애니콜이 6년만에 새로운 슬로건을 낸 해가 2007년이란 게 의미심장하다. 그 해는 바로 아이폰이 세상에 나와 스마트폰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생태계가 열린 때였다. 결과적으로 애니콜이란 휴대폰의 역사의 한 장이 접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세를 과시한 듯한 모양새가 됐다.

▲ 삼성전자는 15년 전에 기업 슬로건의 핵심 단어로 제안했던 ‘discover’를 2013년 uhd tv용 메시지에서 ‘discover true detail’이란 문구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해당 광고 스틸컷.

‘Discover’의 재발견

애플이라는 시장 개척자에 맞서 삼성은 기능이나 디자인상의 구체적인 차별점을 내세우는 형식으로 나아갔다. 화면 크기 논쟁이 대표적이다.

이후 점유율에서 아이폰을 압도하면서 삼성 스마트폰 광고는 라이프스타일 쪽으로 다시 넓게 펼친 메시지를 선보이고 있다. TV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1위를 차지했지만, 국내에서는 LG전자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가 있었다. 전체 TV시장으로 보면 국지전적인 양상이 펼쳐졌다. 그 절정이 바로 ‘Discover True Detail’이란 문자 그대로 세밀한 것까지 진짜 차이를 찾아보라는 현재 UHD TV용 메시지다.

15년 전에 기업 슬로건의 핵심 단어로 제안했던 ‘Dis­cover’와 이번 TV광고에서의 ‘Discover’는 같은 단어라도 뉘앙스가 다르다. 영어로 한다면 전자가 ‘탐험하다’와 같은 의미의 ‘Explore’라면, 후자는 ‘발견하다’의 ‘Find’에 가깝게 받아들여진다. 어떤 컨텍스트(문맥)에서 쓰이냐에 따라서 단어의 의미는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다.

삼성의 이번 UHD TV광고는 해상도라는 TV광고의 진부할 수 있는 소구 포인트를 멸종위기의 동물을 소재로 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또한 지난해 8월 처음 론칭할 때는 전시체험행사까지 연계해 의미가 지나치게 좁혀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4개월째 같은 소재의 광고가 방영되며 좁게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 신년을 맞아 절대강자로서 고객들이 ‘TV의 새로운 세계’를 ‘Discover’하는 새로운 캠페인을 기대한다.


박재항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미래연구실장
前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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