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낮춘 동네변호사, 이웃과 통하다
문턱 낮춘 동네변호사, 이웃과 통하다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4.01.2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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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남다른 세상] 이미연 ‘동네변호사카페’ 변호사

[더피알=이슬기 기자] 의정부 제일시장 초입에 위치한 금은방 황금당과 건어물점 중앙유통 건너편. 1층엔 도미당 약국이 있는 단출한 건물 2-3층에 ‘동네변호사카페’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의정부에서 나고 자란 이미연(33) 변호사가 2012년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동생 이세나 씨와 함께 꾸린 커피향 은은한 변호사 사무실이다.



“처음 자리를 잡을 때, 일단 법원 앞은 피하자는 생각이었어요. 법원 앞이면 제가 일보기는 편한데, 오시는 분들에게는 편한 곳이 아니더라고요. 변호사 사무실이 너무 많아서 정작 의뢰인이 누구를 찾아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 되기도 하잖아요. 막상 여기에 자리를 잡고 나니 저는 조금 불편한데요.(웃음) 찾아오시는 분들한테는 좋은 것 같아요.”

동네변호사카페에는 시장 인근에 있다 보니 오다가다 들르는 이들이 심심찮다. 가지고 오는 사안은 부동산 임대차, 이혼 등 다양하지만 당사자보다는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의 법률문제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룬다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 전문가와 상담을 하면 어렵지 않게 해결방안과 절차를 안내받을 수 있는 사안들이다. 이 변호사는 우연히 간판을 보고 상담 받으러 오는 분들 덕분에 이곳에 자리를 잡은 보람이 있다고 설명했다. 2층에 동생이 운영하는 카페를 두고 3층에 사무실을 차린 것도 조금이나마 문턱을 낮추기 위함이었다.

“사실 생활법률이라고 해도 보통 사람들에겐 어렵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전문가와 상담을 하면 대부분 어렵지 않게 풀리는데 일단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다른 변호사 사무실에 가면 저도 모르게 경직되곤 했거든요.” 
 
시장통 '변호사' 간판보고 드는 의뢰인들
물론 지금의 사무실은 이 변호사 자신을 위한 형태이기도 하다. 오로지 사법고시 합격만을 바라보고 경주마처럼 공부해왔는데, 연수원에 들어가자 목표가 사라지게 됐다. 당시 그녀의 인생에는 사법고시 이후의 삶에 대한 계획은 없었던 것이다. 공부가 가장 힘든 줄 알았고 합격만 하면 자동으로 인생이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인생은 없었다. 

더 힘든 일들이 앞으로 계속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 즈음 연수원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덕분에 자신의 길을 다지게 됐다. 시험 스킬에 지나지 않았던 지식들이 법률전문가로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구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 즈음 커피향이 있고, 이웃 곁에서 문턱을 낮춘 이 공간도 구상했다.

“아무래도 조직에 들어가면 내 자신의 색이 온전히 받아들여지진 않잖아요. 언제까지 조직에 맞추면서 내 행복을 유예하면서 살 수 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랫동안 미뤄뒀던 생각을 제고해볼 기회가 됐던 거죠. 그때 ‘제너럴닥터’라는 병원과 카페를 접목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어요. 변호사 사무실도 비슷한 시도가 필요한 곳이 아닐까 싶어서 해보기로 했죠. 사실 수요예측이나 전망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고, 겁이 없어서 덜컥 시작했던 것 같아요.(웃음)”

덕분에 이 변호사는 로펌에 들어간 다른 변호사들보다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다. 관리감독을 하는 사람도 없고, 싫은 일은 가려서 할 수 있으니 심적 부담도 덜하다. 대신 직원 없이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다보니 바쁘다. 환경에 의해 사무실의 모든 일을 할 줄 아는 만능 변호사가 됐다.

이 변호사의 첫 의뢰인은 지나가다 간판을 보고 들어온 동네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한국에 아무런 연고가 없어서일까. 할머니는 엉터리 계약서를 들이미는 집주인에게 집 보증금 300만원을 떼일 처지에 처해 있었다. 사연을 들은 이 변호사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소송 절차를 고지했고 할머니는 다음날 돈을 받을 수 있었다. 후에 할머니가 수임료와 함께 가져온 골뱅이와 화장품이 이 변호사의 첫 성공보수였다. 분명 훈훈한 추억이지만, 이 변호사는 연차가 있는 지금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회상했다.

“그 분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때는 일반인의 상식선에서 자녀나 조카가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바로 전화를 했었는데요. 지금이라면 정식으로 위임을 받아서 절차를 게시했을 거예요. 그게 제가 변호사로서 해드려야 하는 일이고요.”

혼자서 모든 일하는 '만능변호사'
혼자 사무실을 차리면서 다소 부담을 느꼈던 점은 의뢰인과의 상담이었다. 법률적인 부분은 공부를 해서 답변을 주면 되지만, 무작위로 찾아와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는 분들과 상담해야 한다는 점은 어렵게만 느껴졌었다.

“처음에 걱정은 됐었는데, 해보니까 저랑 잘 맞더라고요. 상담에 크게 어려움을 겪었던 적은 없었어요. 어르신들도 많이 오시는데, 오래 고민하다 찾으시는 분들이 대다수라서 한마디에 요지를 다 담으시더라고요. 그분들은 설명을 들으시고 일단 그냥 돌아가세요. 그리고 생각을 좀 정리한 다음에 다시 오시죠. 많이 답답하신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간단한 문제가 복잡해지는 경우도 많아요. 여러 차례오시는 분들 보면서 지역마다 동네변호사들이 하나씩 있었으면 참 좋겠다 싶죠.”

대학 시절부터 여성 인권에 관심이 있었던 이 변호사는 현재 국선 변호인 제도인 성폭력 피해자 법률 조력인으로도 등록돼 있다. 이 사안과 사무실에서 의뢰받는 사안의 비율이 반반정도, 동네변호사카페의 상담료는 30분에 3만원이다. 손은 많이 가고 수임료가 많지 않은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지금 하는 일들에 만족한다. 남들 눈에 조금 미련해보여도 지금의 모습이기에 느낄 수 있는 보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오랫동안 공부했는데, 소위 ‘본전생각’은 들지 않을까. 부모님들의 의중까진 알 수 없으나, 이 변호사는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단다. 무엇보다 과거 때문에 지금 행복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잘될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는데 그런 건 개업 변호사들이 다 겪는 일이죠. 예전에는 가능한 오래 이곳을 유지하고 싶었고, 불안감도 없지 않았는데, 이제는 언제든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상황이 될 때까지 열심히 하고, 상황이 안 될 때는 쿨하게 접고 동생은 동생 갈 길을 가고, 저는 다른 방식을 찾아봐야죠.”

KBS의 한 강연프로그램에 출연해 개업 후 유명세를 치른 이 변호사는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강연을 청하는 곳들은 마다하지 않는 편이고 변호사를 꿈꾸는 학생들도 심심찮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똑똑한 친구들이 사회가 불안하고 압박이 커지는 데서 오는 고민들을 가득 안고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렇다고 자신이 학교를 다닐 때와 시스템이나 분위기가 다른데 무턱대고 조언을 하기도 조심스럽다고. 다만 항상 강조하는 것은 한 가지 있다.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그릴 때, 순서를 바로 잡으라는 것이다.

“보통 직업을 먼저 정하고 원하는 분야를 때늦게 찾는 편인 것 같아요. 거기까지는 아예 생각도 못해보거나. 근데, 저는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먼저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걸 모르고 무작정 고시공부만 했었는데, 관심 있는 콘텐츠가 생기면 직업의 형태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성폭력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그런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는 직업은 복지사, 상담사, 학자, NGO활동가 등 다양한 것들이 있으니까요. ‘변호사’를 먼저 정할 게 아니라, 무얼 다루고 싶은지가 더 소중한 문제예요.”

관심사 먼저 찾으면 길이 보일 것
또 자신은 일반적인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내면서 만족스럽지만, 모두가 그렇진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저마다 자신만의 우선순위가 있고, 그걸 아는 게 먼저라는 뜻이다.

“저는 조금 불편하고 폼 안나도 자유로운 게 첫째였어요. 화려하지 않아도 제가 관심 있는 분야의 경험을 쌓는 게 좋았고요. 근데, 사실 고등학교 때 공부 잘했던 친구들은 그걸 포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말하자면 높은 연봉, 명문대 이런 것들을 포기하는 게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면, 일단은 그 스트레스를 줄여야 해요. 스트레스가 되는 일을 줄이고 자신에게 재밌는 것들을 탐색해야죠.” 

이 변호사는 이런 생각을 고시공부를 하는 동안 정리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계속 책만 보고 머리를 쓰는 것이 고시준비생의 일이다. 반복되는 일과에 도를 닦는 기분으로 지내다보니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을 꾸준히 가진 게 도움이 됐다고.  

▲ (왼쪽부터) 아기자기한 소품이 아늑한 분위기를 내는 2층 가페는 이 변호사의 동생이 운영하고 있다. 시장통 눈길을 끄는 동네변호사카페 간판은 동생 이세나 씨가 직접 디자인했다. 3층 이 변호사의 사무실, 근방에 사는 조카의 흔적이 정겹다.

혼자 일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질 때는 일반인의 상식선에서 조언을 해주는 동생이 많이 의지가 된다. 함께 사는 가족들과 맥주한잔을 기울이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다. 또 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은 책을 읽는 것인데, 고전문학이나 판타지, SF 등의 장르소설을 좋아한다. 궁금한 분야의 깊은 인문학 서적도 탐독하는 편인데, 비일상에 가까운 것들이 일상을 환기시켜주는 기분이다.

처음 지역에 자리를 잡을 때는 마을공동체 운동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참여연대의 교양강좌도 찾아들으며 다양한 형태를 둘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3년차가 되는 이 변호사는 일을 하면 할수록 공부할 것들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 여전히 마을공동체에 뜻을 두고 있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더 손에 익을 때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혹시 마을공동체 운동 외에 더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는지 물었다.

“요즘 뉴스들이 너무 우울합니다. 사회적 이슈들이 주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죠. 거시적인 상황에서 답답한 면들이 있어서 스스로 참여하는 시민이 되고 싶어요. 예전에는 여기서 이렇게 늙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이 자리에서 무뎌지지 않는,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들을 궁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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