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소통’, 그리고 ‘나의 자리’를 찾는 여정
가족의 ‘소통’, 그리고 ‘나의 자리’를 찾는 여정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02.1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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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마이플레이스’ 박문칠 감독
▲ 영화 '마이플레이스'의 박문칠 감독

[더피알=문용필 기자] 만약 먼 나라로 유학을 떠난 당신의 여동생 혹은 딸이 ‘싱글맘’이 되어 돌아온다면 어떤 느낌일까. 아직 ‘싱글맘’에 대한 다소 불편한 시선이 한국사회에 상존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황스럽거나 걱정 어린 시선을 감추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일 것이다.

박문칠 감독(36)의 다큐멘터리 ‘마이플레이스’는 싱글맘이 된 자신의 여동생과 이를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어떻게 보면 내밀하고 공개하기 불편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박 감독은 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마이플레이스’는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호평을 받으며 올해 정식 개봉되기에 이르렀다.

‘마이플레이스’에 등장하는 박 감독의 가족사는 특별하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역이민을 온 박 감독의 가족 구성원들은 저마다 다른 고민들을 안고 살아간다. 가족들이 저마다 ‘나의 자리’를 찾기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들이 그려진다. 그간 쉽사리 말로 꺼내지 못했던 가족간의 갈등구조과 고민들, 그리고 소통을 통해 이를 해소해 나가가는 과정도 담겨있다.

홍대 앞 한 카페에서 <더피알>과 만난 박 감독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마이플레이스’는 영화 혹은 다큐멘터리가 ‘나의 자리’라는 확신을 준 작품”이라며 “가족 안에서의 자리도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 준 영화”라고 밝혔다. 또한 “나를 완전히 드러냈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살면서 갖고 있었던 껄끄러운 부분들이 좀 더 편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

박 감독이 정의하는 마이플레이스는 어떤 영화인가?

다큐멘터리이지만 편하고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영화다. 한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지만 이를 따라가다보면 관객들이 자신의 삶과 가족까지도 돌아볼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사회에서 싱글맘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싱글맘이 된 동생의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감독이 아닌 가족 입장에서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두려움은 없었나?

사람들의 손가락질이나 인터넷 악플에 대한 걱정을 좀 했다. 처음에는 조카에 대한 걱정을 제일 많이 했다. ‘너무 어려서 의사표현을 못하는 조카가 나중에 이 영화를 볼 때 어떤 기분일까’ 하는 점을 항상 염두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특히, 어머니는 가족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하셨다. 그것도 영화를 만들면서 신경을 썼다.

▲ 영화 '마이플레이스'의 포스터(kt&g상상마당 제공)

가족들이 영화화를 반대했나?

여동생은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에 크게 부담이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극렬하게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조심스럽게 생각하셨다. 그런데 나와 같이 영화를 관람하시거나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시면서 ‘마이플레이스’가 관객들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을 보신 것 같다. 동생이나 손자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커밍아웃하고 세상과 부딪혀야 하는데 언제까지나 쉬쉬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아버지는 자신의 분량이 그렇게 많은 줄 모르고 영화를 보셨다가 놀라셨다. 쑥스럽거나 창피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두 번째 보실때는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시면서 재미있다고 하시더라. 영화제에서 가져온 마이플레이스 엽서와 그림을 벽에 붙이시거나 내가 영화제에서 받은 상을 거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진열하셨다.

영화 초반을 보면 캐나다에서 함께 건너와서 동생과 비슷한 삶의 고민을 가졌던 감독도 동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 나온다. ‘마이플레이스’가 동생과 소통하는 매개체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동생과 친한 편이고 이야기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어떤 계기가 없다면 깊은 이야기나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많이 없지 않나. 그런데 인터뷰를 핑계로 굳이 말로 하지 않았던 동생의 이야기를 좀 더 듣게됐다. 인터뷰를 하면서 동생에게 그 시간이 어떤 시간이었는지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싱글맘’ 동생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에 대해 박 감독은 불편한 점이 있었나.

젊은 사람들은 그나마 덜한 것 같은데 만약 부모님 세대의 지인이 주변에 있다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비교적 젊거나 개방적인 생각을 갖고있는 친척들은 덜하지만 그렇지 않은 친척들은 걱정했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에도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여동생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신경쓰이는 측면이 있었다.

영화에는 가족들이 각자 소통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모습들이 나타난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이러한 생각의 차이나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었나? 특히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서는 영화를 만들면서 조금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하게 된 것 같은데.

갈등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아주 깊이 알지는 못했다. 회피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동생과 아버지의 사이가 안좋았던 점에 대해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이를 대면할 수 있었던 것은 껄끄럽기는 했지만 필요한 과정이었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영화를 작업하면서 어떤 인물을 이해하려 하거나 인터뷰를 할 경우가 있는데 타인은 이해하려고 하면서 정작 가까운 분을 이해하려고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버지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의 이야기를 이번에 한번 들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듣고 나서 아버지를 (좀 더)이해하게 됐다.

동생과 아버지가 단절된 소통을 시작한 계기는 조카의 탄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딱 봐도 아버지가 조카를 예뻐하시는게 보였다. 조카가 돌이 되기 전까지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아기를 봤는데 아버지가 가장 조카를 잘 재웠다. 조카가 좀 더 큰 다음에도 아버지와 쿵짝이 잘 맞는 느낌이 들었다. 조카가 할아버지와 뭔가 하는 것을 좋아하더라. 그것을 보면서 동생의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이전에는 아버지와 뭔가 같이 하거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어색해했는데 조카를 매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편해진 것 같다.

영화를 보면 여동생이 어린시절 캐나다에서 건너와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박 감독도 캐나다를 떠나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동생처럼 어렵거나 예민하게 받아들인 부분이 있었나.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주로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편이고 좀 더 둥글둥글한 편이라 동생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에게 허용되는 부분은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이 영화감독으로서 장점이 된다는 생각은 해보았나.

남들과 다른 시각이나 감성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 되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보편적이고 호소력을 가질까하는 걱정이 항상 있었는데 핸디캡으로 생각했던 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있다는 것을 이번에 배우게 됐다.

▲ 영화 '마이플레이스'의 한 장면(kt&g상상마당 제공)

‘마이플레이스’는 비교적 오랜 시간동안 만들어진 한 가족의 기록이다. 몇 년간에 걸쳐 찍은 분량을 영화화하기 위해서는 편집의 비중이 컸을 것 같은데 주안점으로 생각했던 것은 무엇인가?

예전에 극 영화작업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인물을 따라가는 하나의 가족이야기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다. 보통 다큐멘터리들을 보면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공하거나 비슷한 케이스를 비교 분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접근보다는 개개인의 내면과 과거에 더 집중하고 인물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에 더욱 맞는 것 같았다. 방송에서 이슈를 다루는 것과도 차별화될 수 있을 것 같고 더 편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이상의 사회적 맥락이나 해석은 관객들의 몫으로 돌릴 수 있지 않을까.

‘마이플레이스’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화로 기억됐으면 좋겠나?

관객들에게 ‘이런 삶도 가능하겠구나’라는 영감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관객들이 자신의 삶과 가족,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더할 나위없이 좋을 것 같다.

박문칠 감독은 1978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났다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전공한 박 감독은 모 포털 사이트에서 기획자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다수의 독립영화 작업을 해왔다. ‘시린날’(2006), ‘당신은 베리굿’(2007), ‘Zing Zing Zing’(2009) 등의 작품을 연출했으며 안녕허대짜수짜님!’(2007), ‘나는 곤경에 처했다!’(2009) 등의 작품에는 조연출로 참여했다현재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에서 전문사 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해 공개된 마이플레이스는 제39회 서울독립영화제(심사위원상)와 제13회 인디다큐페스티벌(관객상), 14회 전주국제영화제(관객평론가상), 15회 정동진 독립영화제(땡그랑 동전상등에서 수상했으며 제18회 서울인권영화제 15회 서울국제영화제 9회 인천국제여성영화제 등에서 상영돼 호평을 받았다 1 대단한 장편 프로젝트’ 선정작으로서 1 30일 정식 개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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