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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없는 삶은 없다, 동화 속 마녀일지라도[문화공감] 뮤지컬 <위키드>

[더피알=이슬기 기자] “<오즈의 마법사>는 오늘날의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쓴 글이다. 이 책이 경이와 기쁨은 고스란히 두고 고통과 악몽만을 없애 버린 현대적 동화가 되기를 바란다.”

회오리바람을 타고 마법사들의 세계에 떨어지며 시작되는 도로시와 그의 친구들의 모험담, <오즈의 마법사>를 쓴 프랭크 바움이 서두에 붙인 말이다. 뮤지컬의 원작이자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위키드>는 이 이야기에 덧댄 사실적 동화다. <오즈의 마법사>에 언급되지 않은 마녀들의 사생활을 풀어내면서 나쁜 마녀와 착한 마녀의 경계도 느슨하게 했다.

   
▲ 뮤지컬 <위키드> 한 장면.

착한 마녀의 대명사 글린다는 상냥하고 예쁘지만 실상 타인들의 칭찬과 환호에 중독된 공주병 말기 환자다. 나쁜 마녀 엘파바는 녹색피부만큼 촌스럽고 울퉁불퉁한 성격이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진실의 수호자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경계를 비튼 후 남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한 존재의 세상에 맞서는 법이다. 글린다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의 환상을 먹고 산다. 엘파바는 다소 투박하지만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행동하며 거기서 비롯되는 외로움을 감당한다. 그리고 그 두 주인공 사이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저마다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따라, 무엇에 자신을 맡기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이질적인 두 주인공 사이의 우정도 흥미롭다.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존재, 한마디로 밥맛’이라며 이질감을 온몸으로 느꼈던 엘파바와 글린다는 서로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자신과 다른 상대의 길을 존중해주는 것, 물론 이 부분이 관계의 끝을 품은 지점이기도 하지만, 서로를 해치지 않고 각자의 길을 가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환상을 한 겹 벗겨냈지만 이야기가 여전히 동화의 아름다운 결을 간직한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 뮤지컬 <위키드> 한 장면.

무대 한 가운데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드래곤 시계부터 글린다가 타고 다니는 비누방울 장치에 의상까지 무대는 동화적 환상을 충실히 구축해냈다. 또 첫 한국공연이라지만 구석구석 오리지널 크리에이티브팀의 손길로 완성된 공연은 부족함이 없다. 까다로운 오디션을 통과한 배우들의 실력 또한 탄탄하다. 옥주현, 박혜나, 정선아, 김보경, 이지훈, 남경주 등이 동화보다 더 환상적인 무대를 완성했다. 오픈런, 샤롯데씨어터, 1577-3363.
 

 

   
INTERVIEW 박혜나 배우
 

나만의 엘파바 위해 하루 12시간씩 연습
 

“아직도 꿈만 같아요” 앙상블 오디션부터 시작해 4차례의 오디션 관문을 거쳐 <위키드>의 주연 ‘엘파바’로 선택된 배우 박혜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무명의 신인도 과감히 기용하는 철저한 실력 위주 오디션 덕분이라는 평이다.

뮤지컬 배우로서 <위키드>의 초록마녀는 어떤 의미인가요?
2012년 내한공연 때 가족들과 함께 처음 <위키드>를 봤어요. 정말 좋은 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죠. 배우로서 ‘하고 싶다’ 이전에 이런 작품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습니다. <위키드> 오디션 소식에 바로 접수를 했고 오디션 과정 동안 많은 걸 배우고 느꼈어요. 같이 공연하던 친구와 밥을 먹다 합격 전화를 받고 식당 밖으로 나가 둘이 껴안고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발표가 늦어져서 떨어진 줄 알았거든요. 오디션 시작부터 발표까지 감사하고 기쁜 일들이 참 많았어요. 초록마녀를 통해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위키드>의 주연을 맡게 되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고맙게도 다들 ‘네가 될 줄 알았다’며 응원을 많이 해줬어요. 잘할 거라고 얘기해주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지금까지 지내온 무대 경험이 그냥 보낸 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죠. 미디어에서는 ‘무명’의 극적인 캐스팅이란 말을 많이 해주시는데 기대보다 잘한다는 평가가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해요. 특히 스타 옥주현 씨와 더블 캐스팅돼서 위축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어차피 다른 길을 걸어오고 각자의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기에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주현 언니와 함께 연습하며 많이 배웠죠. 나만의 엘파바를 빨리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달려왔어요.

연습과정은 어땠나요?
브로드웨이 연출가 리사 리구일로가 직접 연출했는데, 하루하루 발끝에 남아있는 기까지 쏟아내며 12시간씩 연습했지만 정말 행복했어요. 3주간 무대 리허설을 했지만, 관객이 꽉 들어찬 첫 무대에서는 정말 정신이 없었죠. 그런데 마지막 커튼콜에서 관객분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주시는데 그 첫 공연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사실 제 팬들이라고 해봐야 앞에 두 세줄도 안됐을 텐데 말이죠.

해외 크리에이티브 팀들과의 연습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수많은 노트와 외워야 할 대사, 연기, 댄스로 배우들도 모두 힘들어했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을 분들이 해외 팀이었을 것 같아요. 올해가 <위키드> 10주년이라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는 만큼, 리사 연출님을 비롯해 음악감독, 안무 등 해외 팀은 멕시코, 일본 등 세계를 돌아다녀야만 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들에게 디테일한 디렉션을 주고 따뜻하게 챙겨줘서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으로의 꿈은 뭔가요?
지금은 엘파바로 머리가 꽉 차 있어서 다른 생각은 못하고 있어요. 단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나중에 더 나이가 들어서 모리블 학장으로 다시 출연해보고 싶어요. 한국에서 <위키드>가 오랫동안 사랑받고, 또 저도 뮤지컬 배우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보면 그런 꿈같은 순간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죠.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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