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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병’이란 유령이 배회하는 한국 저널리즘
‘기승전병’이란 유령이 배회하는 한국 저널리즘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4.03.07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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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뒷심 없는 언론보도, ‘문제제기’만 있고 ‘대안제시’는 없어

[더피알=이슬기 기자]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절로 “숨이 막힌다”는 푸념을 내뱉게 된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불지옥이 돼가는 사회 모습을 반영한 것이지만, 동시에 이를 재생산하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대표적인 것이 자살보도다.

오늘(7일)만 해도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된 김모씨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기사가 온라인을 뒤덮었다. 이에 앞서 SBS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짝’의 출연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휩쓸었고, 세 모녀 자살 사건부터 뒤를 잇는 유사 사건들이 연일 보도됐다. 어지간한 뉴스에는 내성이 생겼을 법한 요즘 뉴스소비자들의 눈길을 ‘죽음’이라는 극단적 키워드로 사로잡으려는 언론의 움직임이 숨가쁘다.

각 사건들에는 국가기관의 비리와 시청률 지상주의, 부실한 복지정책이 만들어낸 사회적 타살 등의 수식이 따라붙는다. 사회의 복잡성만큼이나 얽히고설켜 저마다의 원인과 다중다양한 문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언론이 이들 사건을 보도하는 행태는 놀랍도록 대동소이하다. 우선 사건이 터지면 너나 할 것 없이 속도 경쟁을 한다. 클릭이 곧 수익으로 연결되는 군소 온라인 매체들이나 주요 일간지 할 것 없이 실시간으로 사건을 알린다. 기(起).

이어 발견 당시 사건현장의 디테일을 살려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혹시 유서를 남겼다면 그 내용들을 꼼꼼하게 짚는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 있다면 이를 소상히 전한다. 일지를 재구성하며 사건을 확대재생산한다. 이들의 보도에 뉴스소비자들은 사건의 비극성에 취하고 감정적 몰입을 경험하기 쉽다. 승(承).

이 과정에서 때마다 거론되는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언론 종사자들의 기억에는 없는 눈치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발간한 권고기준에는 자살의 방법, 장소에 대한 상세묘사, 미화법 사용 등을 보도에 포함시키지 말아야 할 사항으로 명시하지만 이를 ‘보도에 포함시켜야 할 사항’이라고 읽는 것만 같다.

곧 원인 분석과 정부나 관련 기관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다. 매체 성격에 따라 다소의 강도나 시각 차이도 존재한다. 물론 분초를 다투던 초반 정황보도에 비하면 한풀 꺾인 듯 하고, 복잡한 사회에 비해 상식수준이라 여겨지는 분석이 상당수이며, 언젠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인상이 짙지만. 어찌 뉴스라고 늘 빠르고 새로울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가 전(轉)이라 할 수 있겠다.

응당 그 다음은 결(結), 맺음에 해당하는 것이 와야겠지만 요즘 세태는 그 자리를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병(病)’ 메우는 분위기다. 애초에 ‘기승전병’은 허무한 결말을 콘셉트로 하는 웹툰에서 파생된 표현으로 병은 ‘병신 같은 맛’을 줄인 ‘병맛’이라는 신조어에서 나왔다. 대체로 어이없고 황당한 것들을 이를 때 폭넓게 쓰인다.

급격하게 유야무야해지는 언론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건 정황 보도 당시의 열성은 온데간데없고 또 다른 자극적인 뉴스로 사안을 뉴스소비자들의 기억에서 빠르게 밀어낸다. 심도 있게 분석을 하고 대안 모색을 위해 골똘해야 할 그 지점에서 뒷심 없는 우리 언론의 속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렇게 우리사회의 곪은 부분들이 공론화의 기회를 놓친 채 방치되는 동안, 어디서 본 듯한 비극적인 사건들은 계속되고 언론인들은 오늘도 이를 보도하느라 분주하다. SNS를 기반으로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재편되면서 언론사들의 생존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basic)’는 해묵은 명제에서 답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저널리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숙고가 절실한 시점이다. 최근 굵직한 보도로 재미를 보고 있는 <디스패치>의 근성이 그들에게만, 일부 영역에만 한정됐다는 사실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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