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탈’ 쓴 성형광고의 허상
‘감성 탈’ 쓴 성형광고의 허상
  • 유현재 (hyunjaeyu@gmail.com)
  • 승인 2014.03.12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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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의 Now 헬스컴] 시집가려면 성형은 필수?

[더피알=유현재] 우리나라 전체 성형외과의 약 60%는 소위 강남 3구라고 불리는 강남구, 송파구, 서초구에 집중돼 있다. 서초구에 130여곳, 송파구 30여곳, 그리고 강남구에는 무려 620여개의 성형외과가 들어서 있다.

강남구 중에서도 특히 해외에 ‘성형벨트’로 소개될 만큼 압도적인 밀도를 자랑하는 곳이 있다. 바로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일대이다. 현재 압구정역 주변으로 약 250개의 성형외과가 성업 중이며, 더욱 세부적으로는 4번 출구에서 나와 펼쳐지는 양쪽 대로변에 빽빽하게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압구정역 내외에서 발견되는 각종 광고물들은 대부분 성형외과 광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현재 압구정 역사의 기둥이며 벽면 등 통행하는 사람들의 눈에 띌 법한 거의 모든 여백에는 성형외과 광고들이 도배돼 있다. 보이는 광고뿐 아니라, 라디오 등 들리는 매체를 통해서도 성형외과 광고는 소비자들을 향해 처절하게 어필하고 있다.

▲ 감성접근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공략하려는 ‘영악한’ 성형광고들이 늘고 있다. 성형수술에 대한 객관적 정보보다는 단순한 이미지나 유머로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교묘한 감정적 어필, 성형 부작용 부채질

성형외과는 여타 진료과목에 비해 훨씬 더 환자 유치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의료보험 적용 종목이 아니다 보니, 순전히 환자를 몇 명 유치하느냐에 따라 해당 성형외과의 존폐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고 등 고객 모집을 위한 홍보물의 적극적인 제작과 운영은 그들 마케팅에 대단히 핵심적인 사항이다. 필자는 성형외과들이 공격적 투자에 의해 다량의 광고를 집행하는 것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작금에 자주 발견되는 일부 성형광고들의 놀라운 내용과 형식에 우려를 느끼며 현실을 짚어보고자 한다.

사실 그 동안도 성형광고에 대한 논란은 참으로 많았다. 대부분 성형광고가 담고 있는 정보들의 왜곡과 허위, 과장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성형수술 전후의 사진을 극적으로 연출해 제시하는가 하면, 특히 수술 후 사진에 컴퓨터 그래픽을 적용해 혼란을 주는 사례도 많았다.

또 연예인들을 활용해 과도하게 이상적인 결과를 약속하며 흡사 묻지마 마케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환자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도용해 광고에 사용해서 소송을 당하거나 분쟁을 양산하는 일도 있고,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고지를 포함시키지 않아 비난 받는 성형광고들도 많았다.

사전심의를 받아야 하는 광고종목 임에도 법을 어기고 집행해 적발되는 사례도 있었으며, ‘양악 전문의’라는 구체적 개념이 합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양악전문의가 상주하는 것처럼 광고하다가 제재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속이기도 하고, 밝혀야 하는 사실을 숨기기도 했으며, 광고에 명시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힌 사례들이 논란의 주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성형광고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심의 등 공식적 제재가 한층 더 심해지고, 성형광고를 담당하는 대행사들의 규모와 역량도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더욱 전략적으로 공략하려는 ‘영악한’ 접근이 폭넓게 사용되는 중이다. 다름 아닌 ‘비정상적 감성형 광고’의 제작이다. 정말 ‘밑도 끝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스토리들을 만들어서 광고에 사용, 이성적 판단이 필수적인 성형수술의 결정에 소비자들이 행해야 하는 현명한 판단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얼마 전 지하철의 벽면에는 ‘딸아, 걱정 마 이제 시집갈 수 있을 거야!’라는 카피와 함께 마치 수능시험을 치르는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듯한 어머님의 두 손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성형광고가 발견됐다. 이 광고는 한 시민에 의해 서울메트로 측에 민원으로 접수될 만큼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감성적 접근이라는 용어가 정확할지는 모르겠으나, 상기 광고 어디에도 소비자들이 성형수술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전혀 없었으며, 그저 사람의 감정을 슬슬 긁는 표현만 존재할 뿐이었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성형수술, 즉 건강과 관련된 중요 결정을 함에 있어 살펴야 할 의사의 역량이나 기록, 수술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들을 얻기보다는, 단순한 이미지나 약간의 유머 등 감성적 요소만을 접하는 것이다.

가벼운 명제에 대한 가벼운 접근, 소비자 판단 방해

얼마 전 인구에 회자되었던 ‘걔가 성형한 거기’ 광고는 연예인에 의한 다양한 패러디 등 뜨거운 반응을 생산하며 인기를 끈 바 있다. 물론 해당 성형외과의 인지도 또한 높아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위에 언급한 사례들은 딱히 의료광고 심의에 저촉되는 카피나 표현을 포함하고 있진 않다.

‘딸아 걱정 마, 이제 시집갈 수 있을 거야’ 라든가, ‘그 남자 오늘은 내가 끝냈다’, ‘5살이나 많은 여자한테 내 남자를 빼앗겼다’, ‘대한민국에서 취업하려면…’ 등등의 접근은 과거 전형적인 성형광고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감성적 접근들이며, 물론 모두 합법적인 내용들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저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일 가능성도 다분하다.

하지만 혹시나 이같은 무분별한 감성적 접근의 성형광고들이 소비자의 현명한 판단에 방해요소로 기능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 남성이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과 함께 ‘마침내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제발 성형하라고…’라는 카피를 포함하는 성형광고도 집행된 바 있다.

두 사람은 서로 호감을 느껴서 한참을 만났는데, 남성이 ‘갑자기’ 더 이상은 여자친구의 외모를 참지 못하고 성형을 강요했다는 말인지, 황당한 설정을 넘어 막장에 가까운 접근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환자 유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예비고객들을 부추겨야 하는 현실은 이해하지만, ‘외모가 전부!’ 라는 너무나 낡은 명제를 다양한 장난을 쳐가면서 홍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에 다소 불쾌하다.

더욱 심각한 점은 이처럼 가벼운 접근이 한창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이나 젊은 여성층에게 알게 모르게 어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형수술’ 이라는 너무나 중요한 결정을 위해 소위 고관여(High Involved)된 상태로 정보를 수집하고 검토한 다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탕이나 껌 등 저관여(Low Involvement) 상품을 고르는 것처럼 행동하라고 종용하는 것이다. 성형수술은 명백히 저관여 상품도 아니고, 부작용 등이 발생할 경우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고관여 상품이다.

얼마 전 대학입학을 앞둔 여고생이 성형수술 과정에서 중태에 빠져 결국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나이 또래의 여고생들이 그저 웃고 떠들면서 성형수술을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성형수술이 저관여 상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 ‘시집가려면 성형 좀 해야지. ㅎㅎ~’ 라면서 수다를 떨다가 일부는 실제로 수술을 결정할 수 있는 작금의 우리네 현실이 문득 두려워진다.

심의에 저촉될 내용은 모두 배제한 채, 초감성적 접근으로 무장돼 너무나 무섭고 교묘해진 성형외과 광고들이 이 같은 분위기에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가열찬 논의와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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