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통해 위안부 문제와 한식을 봅니다”
“독도 통해 위안부 문제와 한식을 봅니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03.2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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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박기태 단장
▲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박기태 단장.

“PR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요.”

그는 외교관이 아니지만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데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홍보전문가도 언론인도 아니지만 권위 있는 홍보인상과 언론인상을 수상한 기이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10여년 전 외국인들과 교류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작은 펜팔사이트를 만들었던 청년은 이제 10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거대 조직을 이끌고 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를 대표하는 박기태 단장(40)의 이야기다.

‘반크’(VANK)는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약자다. 지난 1999년 그 역사가 시작된 반크는 15년간 갖가지 프로젝트를 통해 사이버 외교관과 사이버 한국홍보대사들을 양성하고 해외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알리는 민간외교사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반크는 일반인들에게는 ‘독도 지킴이’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출범 이후 과거사 관련 망언을 이어온 일본의 ‘아베 정권’이 국제 사회에서 곱지않은 시선을 받고있고 최근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행사를 강행해 공분을 사고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역사와 영토를 바로 알리기위한 반크의 노력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더피알>이 박 단장을 만나기 위해 찾은 반크 사무실은 서울 보문시장 근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외부에서 볼 때는 그 흔한 간판하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단출했다. 창 너머로 보이는 지도 한 장으로 반크 사무실임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었다.

조심스럽게 들어간 사무실 내부는 마치 대학교의 동아리방을 연상케했다. 벽면에는 반크가 제작한 갖가지 홍보물들이 붙어있었다. 8명가량의 반크 운영진과 청년리더들이 열심히 업무 중이었다.

기자가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정장을 말쑥하게 입은 박 단장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외부 강연을 마치고 서둘러 왔다는 박 단장은 다소 지쳐보였지만 아이같이 밝은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차 한잔 하겠느냐”는 말에 극구 사양했지만 박 단장은 “손님에게 예의가 아니다”며 기어코 기자 앞에 차 한잔을 가져다 놓았다. 초콜릿을 손으로 뚝뚝 잘라 권하는 모습에서 그의 격의없고 소탈한 성격을 읽을 수 있었다.

먼저 근황을 물었다. 박 단장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 준비로 바쁘다고 했다. 반크의 15년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회라고 했다.

“외교나 국제 관계 쪽에 꿈이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반크가 유명하지만 일반 대학생들이나 성인들은 반크하면 ‘독도’로만 알고 있지만 반크를 통해서 (사이버)외교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잘 몰라요. 박물관에 오시는 분들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 분들에게 반크의 활동을 보여주고 이 분들이 모두 반크의 회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 단장은 “20만 명의 회원들을 사이버 외교관이나 한국홍보대사로 양성해서 100만명의 외국인들을 친한파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20만명 (회원을) 만들기 위해 뛰고 있다”는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현재 반크의 회원은 약 12만명. 여기에는 2만명의 외국인들도 포함돼 있다. 인터뷰 당일 반크의 사무실에도 2명의 외국인이 일하고 있었다. 반크를 돕고자 폴란드와 중국에서 온 여성인턴들이었다.

“잃을 것이 없으니 무모하다는 계산을 못한거죠”

반크의 시작은 지난 1999년 박 단장이 만든 인터넷 펜팔사이트였다. 해외여행 경험이 없었던 ‘대학생 박기태’는 외국인들과 교류하고자 한국어를 공부하는 전세계 대학생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답장이 오기 시작했고 그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사이버 관광 가이드’가 됐다.

하지만 반크는 ‘관광가이드’의 역할에만 머물지 않았다. 박 단장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역사나 영토를 모르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잘못 알고 있더라”며 “그들이 그런 생각을 갖도록 한 교과서(출판사)와 외신을 설득하면서 사이버 외교관으로 변신한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온라인상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국을 홍보하는 다양한 홍보물을 만들었고 이는 해외에 나가는 대학생 홍보대사를 통해 퍼져나갔다.

▲ 반크의 외국인 청년인턴과 포즈를 취한 박기태 단장.

박 단장은 “나는 홍보나 역사 관련 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외교관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분야에)무식하다. 그런데 무식하니까 용감해진 것 같다”며 “무모한 일이니까. 아는 사람이었으면 못했을 것 같다. 지위나 타이틀이 없으니 잃을 것도 없고 무모하다는 계산을 못한것 같다. 무식함이 오히려 장점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모르는 만큼 열정이 생겼다. 열정이 생기는 것만큼 전문가들이 (반크에)참여하더라”며 웃었다. 다만, 박 단장은 “무식함을 계속 방치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역사와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반크는 쑥쑥 성장해나갔다. 여기에는 운도 뒤따랐다. 지난 2001년 12월 정식으로 출범한 후 성장배경에는 2002년 한일월드컵과 초고속 인터넷 확산의 바람을 탄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면서 우리가 일본보다 더 먼저 한국을 세계에 알리자는 분위기가 조성됐어요. 그런데 (마땅한)플랫폼이 없으니 사람들이 반크로 몰렸죠. 외국인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니까요. 조금 지나니 초고속 인터넷 열풍이 불었는데 게임이나 음란사이트가 판치니까 교육청에서 건강한 인터넷을 하자며 청소년들에게 반크를 홍보해줬어요.”

반크는 계속해서 한국홍보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2002년 1월에는 사이버 외교관 양성 사이트를 구축하고 사이버 한국홍보대사 양성사업을 시작했다. 한국 소개 수업 자료를 제작해 이를 해외 학교에 배포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같은해 5월에는 해외 교과서와 인터넷, 외신 속 한국역사와 영토, 문화 오류 등을 시정하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직지 세계화 사업 시작’ 사이트 구축(2006년)과 ‘광개토 꿈 날개’ 프로젝트(2008년), ‘국가브랜드 업(UP) 프로젝트’(2008년). ‘사이버 독도 사관학교’ 설립(2009년), ‘글로벌 역사 외교 아카데미’ 설립(2010년)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반크가 걸어온 길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반크는 2만 5000명을 대상으로 사이버외교관 교육을 실시하고 3800명 가량의 사이버 한국홍보대사를 양성했다. 해외 유명 교과서 출판사와 지도업체, 웹사이트 등 400곳 이상이 한국과 관련된 오류를 시정하는 쾌거도 이뤄냈다.

가수 김장훈이 반크를 찾은 이유는?

그렇다면 박 단장이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반크의 활동은 무엇일까. 그는 ‘광개토 꿈 날개’ 프로젝트와 지상파 방송 광고를 꼽았다.

“(어느날) 가수 김장훈 씨가 찾아왔어요. 이렇게 좋은 활동이 있는데 사람들이 모르니 자신이 홍보대사가 되고싶다고 하더군요. 홍보대사가 된 김장훈 씨가 TV프로그램이나 대학축제에서 반크를 소개하니 대학생 회원이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그러면서 수많은 대학생들이 해외에 나갈 때 반크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교육을 받았죠. 이게 ‘광개토 꿈 날개’ 프로젝트예요. 반크가 범국민적인 단체가 될 수 있도록 김장훈 씨가 기여한 것이죠.”

▲ 반크가 제작한 한국 홍보물들.

또한, 박 단장은 “2005년에 KBS에서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를 밤 10시에 방송했는데 9시 뉴스가 끝나고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반크의 CF가 4~5개월간 무상으로 방송됐다. 제작은 홍보대행사에서 하고 카피는 우리가 썼다”며 “광고를 보고 많은 청소년들이 ‘반크가 멋있다’고 한 기억이 난다”고 소개했다.

반크를 운영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묻자 박 단장은 고령의 나이에 반크에 가입한 ‘어르신 회원’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이가 많아서 반크 활동을 못하겠다는 분이 있는데 저희 회원중에는 80세 할아버지도 계세요. 저에게 전화할 때마다 ‘충성’이라고 하시는데 중령으로 예편하신 분이세요. 나라에 기여하고 싶으셨는데 신문을 통해 반크를 알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반크 활동을 위해) 영어학원도 다니셨어요. 80세나 되신 분이 영어핑계를 대지 않고 어려운 인터넷을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활동)하셨다는 것이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반크가 지향하는 ‘눈높이 홍보’ 방법

박 단장은 지난해 11월 서울AP클럽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홍보인상’을 수상했다. 서울 AP클럽은 광고·홍보 분야의 원로 중진들의 모임이다. 다시 말해 전문 광고·홍보인들이 박 단장의 ‘국가홍보’활동을 인정한 셈이다.

▲ 박기태 단장은 “pr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조금 늦었지만 수상소감을 묻자 박 단장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을 인정해주신 것 같다”고 답했다. 어떻게보면 원론적이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같은 생각은 박단장이 생각하는 PR의 정의이기도 했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반크의 홍보방식에도 이는 그대로 녹아나 있다. 다름아닌 ‘눈높이 홍보’다.

“다른 사람들은 독도를 보면 독도의 역사나 국제법을 보지만 저는 독도를 통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고 독도를 통해 한식을 봅니다. 독도에 모든 것을 연결시키는 것이죠. 이것이 제가 지향하는 홍보의 장점입니다.”

이어 박 단장은 반크가 제작한 홍보물 몇 개를 가져왔다. 크리스마스 카드 크기의 홍보물에는 ‘한국의 맛있는여행(Delicious journey of Korea)’, ‘한국의 위인(Greatpeople of Korea)’이라는 제목과 함께 각 지역별 유명 음식과 위인을 소개한 한반도 지도가 담겨있었다.

“제가 외국인들에게 독도를 그냥 홍보한다면 관심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좋아하는 한국음식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김치나 불고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한국음식을 소개하면서 울릉도의 음식을 소개하죠. 그러면서 독도이야기를 꺼냅니다.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동상을 보면서 놀라는 외국인에게는 이분들을 소개하면서 (독도를 지킨)안용복이나 이사부 장군을 소개하죠. 그러면서 독도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나라에 따라 관심을 갖는 아젠다에 맞춰 (한국을)홍보하는 것이 반크가 지향하는 홍보전략”이라며“우리가 100%를 알리지 못하더라도 50%라도 알리고 나머지는 외국인들을 끌어오자는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반크지만 어려움도 있다. 제일 큰 문제는 역시 재정이다. 현재 반크는 가입회원에게 3만원의 가입비를 받고 있다. 기업 등이 후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박 단장의 설명이다. 박 단장은 “무척 힘들지만 힘들다고 생각하면 못한다. 반크는 1년 앞을 모른다”며 “이렇게 한 10년 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제가 매년 ‘1년후에 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아직 안 망했어요. 순간순간마다 오늘 가입하는 회원들 이달 가입하는 회원, 올해 후원해주신 자금으로 운영하자는 마음으로 (반크활동을)하고 있어요. 망하더라도 쿨해지자는 마음이죠.(웃음)”

마지막으로 박 단장에게 향후 계획을 물었다. 그는 “반크가 양적으로는 커졌지만 (전문)외교관 이상으로 사명감과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예화가 필요하다”며 “반크의 교육을 통과한 최정예회원들을 1개월에 한 번씩 대학원처럼 육성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또한, 박 단장은 “신라시대 화랑단의 열정과 세종대왕 때의 집현전처럼 ‘싱크탱크’로서의 실력을 무장할 수 있는 최정예 학교를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다. 열의에 가득 찬 박 단장의 눈빛에서 반크의 밝은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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