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의 ‘레고같은’ 마케팅
레고의 ‘레고같은’ 마케팅
  • 박재항 (admin@the-pr.co.kr)
  • 승인 2014.03.3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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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항의 C.F.] 트렌드에 ‘딱딱 들어맞게’ 진화

칼럼명인 C.F는  커머셜 필름(Commercial Film)과 기업 파일(Corporate File)의 중의적 표현입니다. 커뮤니케이션에서 기업의 ‘비밀파일’을 뽑아내며 브랜드 전략을 읽어가고 있습니다.

[더피알=박재항]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란 도발적인 제목을 단 책이 나왔다. 애플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고,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보고서’란 부제에서 드러나듯 50개 기업에 관한 내용이다. 이들 50개 기업 중 윤리경영 평가에서 레고보다 높은 평점을 받은 기업은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대해 엄청나게 투자한 마이크로소프트가 유일하다.

레고에 대한 소위 ‘펀치라인(punch line)’이라고 하는 한 줄 묘사는 ‘딱딱 들어맞는 조각들’이다. 그리고 그 표현대로 레고는 현재의 마케팅이 요구하는 것에 딱딱 들어맞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 지난해 10월 레고 창작 작품 전시회에서 선보인 레고로 만든 책. ⓒ뉴시스

2012년 레고는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I>의 3D 개봉에 맞춰 레고조각으로 만든 큰 통을 돌리면 스타워즈 주제음악이 나오는 기기를 극장에 설치했다. 사람들에게 왜 손으로 굳이 돌리게 할까 잠시 의아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레고 자체가 손으로 블록을 직접 조립하고 끼워 맞춰야 하는 물리적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놀이다.

실제 가상의 디지털 시대일수록 물리적 움직임이 수반된 마케팅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레고는 원래 ‘잘 논다’는 덴마크어인 ‘Leg Godt’에서 나왔다고 한다. 또한 테마파크인 ‘레고랜드’도 그야말로 물리적으로 뛰어놀 수 있는 넓은 놀이터를 만들었다. ‘레고사람’인 미니 피규어는 사용자와의 일체감과 함께 인형놀이가 그렇듯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며 놀 수 있게 했다. 사람이 들어가면서 서사적인 상상력이 결부되기 시작했다.

콘텐츠 마케팅의 정점 ‘레고무비’

미니 피규어는 레고가 영화와 연결되는 길을 먼저 닦았다. 영화가 히트하면 그 캐릭터나 장면을 재현하는 레고 상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 영화를 소재로 한 게임들이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레고를 이용한 컴퓨터 게임도 출시됐다. 콘텐츠가 다양해진 것이다. 그 절정이 바로 영화 <레고무비>다.

▲ 올해 전세계 흥행돌풍을 일으킨 영화 ‘레고무비’ . 사진은 영상 스틸컷.

지난 3월 아카데미시상식과 골든글로브 등 영화제에서 비록 큰 상을 받진 못했지만, 올해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는 <레고무비>다. 애들만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다. 패러디 유머의 수준은 그것을 찾아내는 마니아층을 양산하고, 장면 하나하나를 만드는 직접 판매와 연결되는 효과를 낳는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기업 브랜드 네임이 들어간 것으로는 가장 노골적이고 그만큼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현재 상식과 관행으로는 PPL이라 하기 힘들다. 기업의 마케팅 부서가 거의 관여하지도 않았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있지만 영화 속에서 프라다의 속성이 다른 브랜드들과 차별돼 그만의 세계가 펼쳐지지는 못했다. 이에 비해 <레고무비>는 제품과 그 콘텐츠 세계가 확장된 PPL 이상의 콘텐츠 마케팅의 정점을 보여줬다.

‘딱딱 들어 맞는다’는 것은 필요에 따라 해체하고 변형할 수 있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실제 어느 집에나 최근 개봉된 영화 속 최신 레고 피규어와 오래된 아무 무늬 없는 레고 블록이 함께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조각이 세대를 거쳐 전해지고 놀이에 쓰이는 것이다. 이렇게 지속가능을 실천하는 기업들이 얼마나 될까? 사회성 부문에서도 레고는 서두의 윤리경영 평가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고 있는데 그 출발은 바로 이런 지속가능성이다.

▲ 덴마크에 만들어진 ‘레고랜드’ ⓒ뉴시스
실제 아이들이 레고를 가지고 노는 것을 말리는 부모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레고는 형편만 된다면 꼭 가지고 놀아야 할 장난감 품목으로 들어간다. 상상력과 그에 따라 창의성을 길러준다는 교육적 효과를 믿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의 대표적인 광고로 레고의 상상력시리즈를 든 적이 있다. 범세계적으로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이 더욱 뜨거워지면서 장난감에도 교육을 따지는 부모들의 요구에 레고는 교육용 놀이로 포지셔닝해 가고 있는 것이다.

잘 나갈수록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레고는 2016년 중국에 공장을 완공하고 10년 안에 6억명 이상의 중국인 신규 고객을 확보할 것이라고 한다. 중국향 레고 시리즈가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단순히 새로운 지역에 진출해 고객 수를 늘리는 것뿐 아니라, 중국 역사와 문화의 방대한 콘텐츠라는 샘물을 만나는 셈이다. 그리고 중국에 이어 인도와 같은 오랜 전통문화를 가진 지역으로의 진출도 시험무대가 될 것이다.

레고의 이런 성공에 걸림돌로 작용할 요소도 있다. 플라스틱이라는 비자연 소재라는 원천적인 한계가 그것이다. 레고는 유해물질이 전혀 없도록 하고, 생산과정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며, 세대를 이어 가며 쓰는 운동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했으나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중국 공장을 비롯해 제3세계 생산시설에서의 노동자 처우도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위험요소다. 레고는 90년대 말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아날로그 장난감의 대표로 인식, 2000년대 중반에는 5억달러 이상의 적자를 본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 마케팅이 원하는 많은 부분들에 ‘딱딱 들어맞는’ 레고지만, 언제 자신도 알지 못하는 변화를 맞게 될 지 모른다. 어느 기업이나 잘 나갈 때 경계해야 한다.


박재항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미래연구실장
前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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