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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치료] 섣부른 원인 진단을 경계하라
[자살치료] 섣부른 원인 진단을 경계하라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4.04.07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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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좌담(1) 한국적 자살 특수성에 대해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더피알=강미혜 기자]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간 송파구 세 모녀. 2014년에 벌어진 이 비극은 현재 한국사회가 자살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가를 묻는 가슴 아픈 계기가 됐다.

이른바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은 우리사회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하루에 4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담한 현실, OECD 국가 중 9년 연속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 앞에 더 이상 자살은 개인적 문제, 시간을 두고 해결해 나가야 할 사회적 숙제가 아니다. <더피알>은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자살이 만연한 한국적 상황을 심층 진단하고, 소통과 치료를 위한 현실적 방안을 다각도에서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①한국적 자살 특수성
②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캠페인 논란
③자살보도 권고기준과 미디어 역할 

 좌담회 참석자 (가나다순)

김동석 더 커뮤니케이션즈 엔자임 대표(이하 김 대표)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하 송 교수)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이하 유 교수)
이명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정신과전문의(이하 이 센터장)
진행- 박일준 한국갈등관리본부 대표/ 정리- 강미혜 기자·사진- 성혜련 기자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9년 연속 자살률 1위다. 2012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자살은 29.1명으로, OECD 평균인 13명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한동안 자살국가란 오명을 가졌던 일본(20.9)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최근 잇따른 자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세대와 계층을 가리지 않고 마치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우리사회의 자살,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명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
이명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

이 센터장  언론에서 자살률 증가를 묻는 인터뷰를 요청해 오면 잘 응하지 않는다. 그만큼 자살 원인에 대해선 정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가령 실업이 자살의 주원인이 된다고 치자. 이 관점에서 한 해 1만5000명의 자살자들이 전부 실업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가정하면, 200만명에 달하는 실업자 중 살아 있는 다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실제 2년여 전 한 방송사에서 실직가장과 자살의 연관성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낸 적이 있다. ‘실직가장=자살’로 선을 그어버린 셈인데, 그렇게 되면 열심히 살아가는 실직가장들은 심적으로 더 힘들어진다. 자살은 다양한 사회적 지표들 속에서 다각도에서 면밀하게 분석돼야 할 문제다. 원인 진단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민을 대상으로 미디어나 전문가들이 특정 부분을 부각해서 쉽게 얘기할 수 없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송 교수  전적으로 동의한다. 자살은 어느 한 영역으로 이해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주제다. 최근까진 주로 의학적 모델에 의해 접근돼 우울증과의 인과관계가 강조돼 온 게 사실이다. 그런 경향이 자살에 대한 원인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우울증이라는 매개가 자살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우울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외적 요인을 먼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미국 핀란드 등 외국에선 마치 시체를 부검하듯, 자살자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를 근거로 자살 원인을 파악하고 현실적인 예방책을 마련한다. 물론 외국 사례가 한국 상황에 그대로 적용될 순 없지만, 적어도 자살의 근본 원인을 찾기 위해 국가가 나서서 과학적·합리적 노력들을 했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크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유 교수  자살원인에 대해 쉽게 결론짓는 풍조에 대해 몇몇 학자들은 화가 난다고까지 표현한다. 자살하면 십중팔구 우울증 내지는 생활고 때문이라고 해버리니, 비슷하게 우울증을 겪고 생활이 어려운 분들에게 얼마나 무례한 건가? 여기엔 미디어 책임이 크다. 자살자들이 우울감을 느낄 수도,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 있는데 그것에만 딱 연결시켜 레이블링(낙인)해서 마치 우울증과 빈곤만이 자살의 주원인인 것처럼 비쳐지게 만들었다.

김 대표  자살예방을 위한 논의의 시작을 자살원인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으면 좋겠다. 사회복지가 잘 돼 있는 스웨덴, 핀란드 등의 국가가 자살률이 높고, 경제적 수준이 한참이나 뒤떨어진 방글라데시는 오히려 자살률이 낮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는 자살문제를 단순히 경제나 복지의 문제로만 설명할 순 없다는 하나의 논거가 된다. 자살은 그 원인이 굉장히 다양해서 솔루션도 다양하게 모색돼야 하는 사회적 의제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진행- 박일준 한국갈등관리본부 대표
진행- 박일준 한국갈등관리본부 대표

전문가 모두 자살원인을 한두 가지로 규정할 수 없고, 섣부른 원인진단이 오히려 자살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하셨다. 그런데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이 많고 이에 따라 복지시스템 개선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도 복지에 핑거포인팅 해 표심잡기에 나서는 분위기인데, 복지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이런 경제적·사회적 위기를 한국적 자살의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는지.

김 대표  송 교수께서 앞서 언급하셨듯, 과거엔 자살을 주로 우울증과 연결시켜 개인적 문제로 접근했다. 그러다가 요즘은 자살원인을 복지사각지대에서 많이들 찾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자살에 있어 개인적 요인(우울증 등)과 사회적 맥락(복지문제 등)이 결합돼 해결방안 역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사회는 70~80년대 고도성장을 겪으면서, 또 97년 IMF라는 충격을 맞으면서 지속적으로 심각한 변화를 겪어왔다. 그런 격변의 여파가 개인적·사회적 요인과 맞물리면서 자살이란 문제로 터져 나오는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 생각된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송 교수  사회과학적 측면에선 우리사회가 가진 집단주의적 성향,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밀접하게 영향을 받는 문화가 자살이란 부정적 행위에도 반영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97년 IMF 외환위기시 자살률이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경제적인 영향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자살통계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노인자살의 급격한 증가가 관찰되는데, 이는 기존 ‘효도’라는 우리문화의 지지체계가 경제위기를 통해 붕괴된 결과가 아닐까 한다. 가족 내 경제적 지원체계, 집단주의적 성향과 같은 우리 고유의 문화가 새롭게 닥친 위기와 결합돼 더욱 심각한 결과를 낳은 것이 한국적 자살의 특수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센터장  단순논리로 얘기하면 상실을 경험한 사람이 큰 변화를 겪으면 자살 고위험군이 된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사회도 사회적 상실을 경험하고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가치와 규범의 혼란, 즉 아노미적 상황인 셈이다. 스스로도 옮고 그름의 문제, 사회적 가치와 정의에 대해 혼란스러울 정도다. 이런 급격한 변화에 의한 사회적 내용들이 개인에게 침투해 혼란이 더 커져가고, 그로 인해 불거지는 현상을 자살로 해석할 수 있겠다.

유 교수  우리사회의 가치 혼란 못지않게 모든 고민의 마지막 출구로 자살을 생각하게 하는 사회적 풍조, 죽음마저도 이슈거리로 만드는 문화적 가벼움도 크나큰 문제다. 요즘 연예인들 나와서 과거에 힘들었던 얘기 하면서 죽고 싶었다느니 자살을 시도했다느니 하는 식의 고백형 토크가 너무 많다. 그 기저에는 죽음도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우리나라처럼 미디어 탄력성이 높은 국가, 셀러브리티의 행동과 말에 큰 영향을 받는 국민들에게 그런 부정적 자극은 생명경시 풍조를 확산시키는 동력이 된다. 미디어와 미디어에 등장하는 유명인들이 자살시도를 여과 없이 노출시킴으로써 자살도 문제해결을 위한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알게 모르게 심어주고 있다.

이 센터장  실제로 ‘자살마케팅’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인사는 사업 망했던 시절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는데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안했다는 말을 매번 강연 스토리로 얘기하더라. 그런 식으로 자살에 관한 얘기를 경험담 내지는 무용담으로 풀어놓고 강연주제와 연결시키거나 TV에 나와서 떠드는 유명인들이 너무 많다. 공통적으로 전부 과거형이다. 마치 ‘힐링캠프’ 같다.

반면 외국에선 유명인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얘기한다. 제프 갤럽 전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총리의 경우 재임 중 우울증을 고백하며 치료를 위해 사임했다. 그의 용기 있는 결단에 호주 정신의학계는 물론 언론계에서도 찬사를 보내며, 우울증의 위험성에 다시 한 번 주목하고 사회적으로 깊이 있게 담론하는 계기로 삼았다. 정치리더와 같은 셀러브리티의 그런 솔직한 ‘커밍아웃’은 일반 국민이나 대중들에게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감기와도 같고, 잘 치료받으면 개선될 수 있다는 인식을 준다. 그런데 우리나라 셀러브리티들은 혼자 쉬쉬하다가 주목받고 싶을 때나 ‘나 예전에 그랬어’로 자살이란 소재를 활용하니까 사회적으로 부정성만 더 키우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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