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게 익은 술이 사람에도 좋다
편안하게 익은 술이 사람에도 좋다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4.04.1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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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남다른 세상] 송명섭 전통주 명인

▲ 송명섭 명인은 직접 농사지은 쌀과 손수 만드는 누룩으로 ‘송명섭 막걸리’를 만든다. 그는 양조장을 찾은 일행에게 일단 자신의 술을 내어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사진 박세연 작가)

[더피알=이슬기 기자] 우연히 인사동 뒷골목의 한 주점에서 송명섭 막걸리를 접했다. 목넘김이 깔끔하고 묵직한 것이 신선했다. 그러고 보니 실명이 굳이 들어간 품명이나 기교 없이 새하얗고 예스러운 용기와 닮았다. 그만큼 자부심과 고집스러움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그 흔한 ‘아스파탐’도 넣지 않고 만드는 술이라는 주모의 설명이 이어졌다. ‘죽력고(竹瀝膏)’로 전통술 담그기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송명섭 명인(55)이 직접 농사를 지은 쌀과 손수 만드는 누룩, 물로만 빚은 술이라는 사실은 후에 알게 됐다.

정읍(井邑)에 위치한 명인의 양조장을 찾은 시간은 점심시간이 막 지나서였다. 골목 쪽으로 담벼락도 없는 마당 한쪽에는 항아리가, 한 가운데에는 아궁이와 소주고리로 보아 전통방식의 술 제조설비로 짐작되는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양조장 건물은 명인의 부모 대부터 이어져온 시간을 그대로 간직해 언뜻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인상마저 들었다. 소박한 초봄의 볕과 퍽 어울리는 정취였다.

그 후로는 모두 순식간이었다. “뭐가 궁금해 이 먼데까지 왔냐”며 가볍게 다그치던 명인이 “술 좀 하느냐”고 묻더니 별다른 설명도 없이 일단 마셔보라며 내어준 몇 잔술에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르고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취하기까지는.

명인은 자신의 술을 순서대로 내어 주었다. 처음 내어준 막걸리는 다소 밋밋한 듯 산뜻했다. 소금을 혀 밑에 넣고 마셔보라며 내어준 두 번째 잔은 순식간에 미각을 자극해 입안이 왁자지껄한 느낌이었고 마지막 잔은 고상하게 숙성된 맛이었다. 차례로 가장 최근에 나온 술, 두 번째 술은 주문자가 반품을 요청한 술, 마지막 술은 낮은 온도에서 몇 달쯤 묵힌 술이었다. 같은 술인데 저마다 풍미가 새로웠다. 그 다음엔 막걸리를 빚는 과정의 맑은 술을 내어주었다. 분명 쌀과 누룩으로만 빚은 것이라는데 은은한 과일향이 돌았다. 향에 취해 두 잔을 내리 들이켰다. 그제서야 명인은 의중을 내비춘다.

“술 빚는 사람이랑 얘기를 하려면 일단 내가 만든 술을 먹어봐야 얘기가 통하지. 간혹 술을 못한다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란 말이야. 음식 맛도 모르면서 음식을 알고 싶다니.”

술은 음식이다

그는 술을 음식이라고 말했다. 의아해하자 직접 옛 문헌을 찾아 보여줬다. 조선시대 요리책 <산가요록(山家要錄)>과 <수은잡방(需雲雜方)> 등에는 다양한 음식과 초 만드는 법 뒤에 술 담그는 법도 똑똑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술이 음식이라니. 그렇게 치자면 전통주는 아이들이 먹어도 괜찮은 걸까. 명인은 당연한 걸 묻는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월보름에 먹는 ‘귀밝이술’도 술인데, 옛날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 마셨다. 발효음식의 일종일 뿐 그렇게 따지자면 효모가 살아있는 김치도 가벼운 알코올이 섞여있다고 볼 수 있는데 어디 어른 아이 가려먹던가.

▲ 아궁이와 소주고리 등 전통방식의 술 제조설비가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정읍 태인양조장은 명인의 부모 대부터 이어져온 시간을 그대로 간직한 듯한 소박한 인상이었다.(사진 박세연 작가)
그는 10여 년 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인공감미료 없이 만드는 막걸리도 명품이지만 그의 고집과 정성은 어머니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은 ‘죽력고’라는 대나무 술에 응집돼있다. 죽력고는 전라도 지방의 전통주이자 조선 3대 명주로 꼽히는 술로 아주 많은 공이 든다.

죽력고 제조는 직접 관리하는 대나무 밭에서 자른 대나무를 일일이 손으로 쪼개 항아리에 채워 넣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항아리를 한지로 봉하고 진흙을 발라 왕겨를 덮어 3~5일간 불을 지피면 대나무 기름, 즉 죽력이 나온다. 죽력고는 여기에 솔잎, 생강 등을 넣고 직접 빚은 밑술에 소주를 내리는 방식으로 증류시키면 완성된다. 죽력고는 만드는 과정 자체가 우리 전통문화의 한 부분이다. 죽력고는 한의학에서 중풍 구급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술을 만드는 건 그저 술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을 살펴주는 것뿐이에요. 그러면 스스로 알아서 술이 되거든. 빨리 되라, 이렇게 되라 다그치지 않아요. 오래 만들다보니까 술이 말을 잘하더라고. 술이 표현하니까 화가 나면 화를 빨리 풀 수 있도록,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지. 왜 사람도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면 귀신같이 음정, 박자가 딱딱 맞잖아요. 술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거지. 술이 기분이 좋으면 발효도 적당하고 맛도 알아서 기가 막히게 나오는 거거든.”

느리고 바르게, 스스로 익는 술을 거들뿐

그는 술과 대화하며 술의 상태를 ‘느낀다’고 표현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으면 그의 감정을 느끼게 되듯 술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진단다. 그래도 간혹 술의 화가 풀리지 않거나 미쳐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땐 그냥 조용히 장사를 지내준다. 스스로 술이 되길 포기한 것을 살릴 재주는 명인에게도 없다. 보통 한 번에 쌀 110kg으로 보름에서 20일정도 걸려 술을 만드는데, 술이 없어서 못 파는 경우도 있다.

별다른 첨가물을 쓰지 않아도 명인의 술이 향기로울 수 있는 비결은 직접 빚는 누룩에 있다.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그의 누룩은 2010년에 특허를 받기도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의 누룩은 일정하고 균일한 빛깔이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누릿누릿한 중에도 한쪽은 조금 시커멓고 한쪽은 희끗희끗한가 하면 다른 쪽은 더 짙은 색을 띄고 있었다.

“누룩은 서로 어울려야 하는 법이거든. 오방색이 다 들어가요. 다 제각각 제 색을 내면 쓰고, 맵고, 떫고, 짜고, 신. 갖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거든. 그래야 술이 맛있지요. 황국같이 좀 튀는 게 있어야 맛에 균형을 잡아주고 각각 조합이 맞아요.”

명인의 술 빚는 비법은 술이 알아서 잘 익게 거드는 것뿐이라고 재차 말했다. 그래서 그의 술맛은 그때그때 미세하게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조용히 입소문을 타며 전국에서 찾는 이들이 느는 추세인데, 개량화해 대량생산을 할 생각은 없는 걸까.

“제의도 받기는 하는데, 나는 전혀 생각이 없어요. 자분자분 삽으로 하던 걸 포크레인으로 하라는 건데.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그런 건 잘하는 곳들이 많잖아요. 나는 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정성으로 빚는 지금의 방식이 좋아요. 내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래서 나를 찾는다고 생각하고.”

▲ 송명섭 명인이 자신의 누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의 누룩은 오방색이다.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효모가 제 맛을 내 조화를 이뤄야 술맛이 좋다는 설명이다.(사진 박세연 작가)

양조장집 막내아들로 자란 송명섭 명인의 학창시절 꿈은 소를 치는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명문대를 나와서 은행에 일하는 형보다 더 부러운 건 정릉골에서 소를 치던 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건 차치하고 그는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아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어찌어찌 세월이 지나 술 곁이 가장 편안한 전통주 명인이 됐지만 누구의 간섭 없이 정직하게 좋은 술을 만들고 연구하는 지금이 좋다고. 혹여 양조장 일손이 좀 여유가 생기면 평소 관심을 두던 한의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단다. 술 연구와 멀지 않은 작업이다.

마시는 사람에 대한 예우를 다해 빚는 술

“저는 술을 마시는 사람에 대한 예우를 다해서 만들어요. 정성들인 음식을 내어주는 거죠. 그러니 마시는 이들도 예우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 만취해서 흥청망청하는 건 술에 대한 예우도 아니고 사람이 할 짓도 아니죠. 아이스크림 좋다고 배 아프도록 먹는 아이들이랑 같은 건데, 넘치도록 먹는 사람의 탓이지 술은 죄가 없어요.”

내친 김에 명인이 생각하는 좋은 술에 대해 물었다. 정성을 다할 뿐, 철저한 품질관리를 통한 맛의 개량화는 지향하지는 않는다는 다소 모호한 표현에 궁금증이 일었기 때문이다. 명인은 사람마다 취향마다 지역마다 좋은 술의 기준은 다 다를 수 있다는 답을 내놨다. 자연스럽게 이어온 문화를 거스르지 않는 명인의 철학이 느껴졌다.

“다만, 좋은 술을 만들면서 좀 억울한 측면은 있어요. 우리나라 주세법은 참 이상하죠. 이렇게 정성을 들여서 만드는데 생수랑 가격이 비등비등해. 원료인 쌀농사부터 다 아울러서 만드는 건데… 재료가 들어도, 손품이 들어도 훨씬 많이 드는데 말이야.”

무형문화재에 대한 정책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외국의 경우는 무장경관 2명이 상시 경호를 할 정도로 그들의 가치를 인정해준다. 한 사회를 지탱하는 문화의 소중함과 다양성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문화재 지원정책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그는 적어도 10년은 배워야 명인이 될 텐데 기술을 배울 전수자에 대한 지원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명인을 만나고 서울로 향하는 길, 어느새 천지에 어스름이 깔렸다. 약간 꼬장꼬장할 것 같았던 첫인상을 떠올리면 생각지 못한 상황이다. 다소 취기가 오른 채 버스에 몸을 실어 나른했건만 신기하게도 음정, 박자 딱딱 맞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정직하게 빚은 술의 진가는 다음날 숙취 없이 개운한 아침에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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