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학자 서정우 교수가 말하는 언론, PR, 소통
원로학자 서정우 교수가 말하는 언론, PR, 소통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4.05.1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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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서정우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명예교수

[더피알=안선혜 기자] 미국 특파원으로 발령받은 젊고 패기 넘치던 기자가 어느 날 학자의 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반세기를 국내 언론홍보학계에 몸 바쳤다. 이쪽 분야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이름 석 자 ‘서정우’ 교수다.

한국언론인연합회 명예회장이자 연세대 명예교수로 몸담고 있는 그가 <더피알> 창간 4주년을 맞아 “후배 PR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2002년 퇴임 후에도 여전히 강단을 지키며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 소통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그가 이번 인터뷰를 통해 또다시 숙제를 남겼다.

▲ 서정우(徐正宇) 교수
現)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명예교수 / 現)한국언론인연합회 명예회장 / 現)서암학술재단 이사 / 前)언론중재위원회 부위원장 / 前)한국abc협회 회장 / 前)한국 방송비평협의회 위원장 / 前)펜아시아 타임즈(미국) 편집인 / 前)한국일보 코리아타임즈 기자 /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 미네소타대학교 언론대학원 석·박사 / 국민훈장 목련장 / 홍보근정훈장

“연세대학교가 왜 광고를 안 넣고 언론‘홍보’영상학부라고 했을까요? 광고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 PR에 비해 훨씬 위기일 것입니다. 광고는 너무 본색이 드러나잖아요. 광고는 반드시 매출과 연결을 시켜야 하니까 직접적이고 1차원적이고, 이윤추구적이고, 경제적입니다. 요즘 시청자, 소비자들이 얼마나 현명한데 그걸 구분 못할까요.”

42년 간 캠퍼스를 지키던 원로 학자의 시각에서 PR은 다가오는 시대를 이끌어갈 주요 영역이었다. “다분히 관념적이고 사변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 시대는 반드시 커뮤니케이션 시대로옮아옵니다. 과거수렵, 농경, 산업 사회를 거쳐 정보 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커뮤니케이션 영역이 엄청나게 커졌고, 시대의 사조적 변화를 떠나서도 어느 선진사회든 당면한 과제가 소통입니다. 잊지 말고 앞으로 10년만 지나보십시오. 내가 미래학자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서 (PR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확장될 것입니다.”

광고가 접근이 제대로 되지 않는 시대, 이들이 해법을 PR에서 찾은 것도 큰 함의를 갖는다. “당장 나만 해도 잇몸이 어쩌고, 암을 어떻게 보장하고 하는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려요. 사라는 소리는 최대한으로 줄이고, 엉뚱하게 자유, 사랑, 가족애, 형제애, 나눔 등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내건 PR광고는 그나마 먹힙니다. 매출을 올렸다 하는 원인과 결과로는 소개하기 힘들어도 기업 이미지를 엄청나게 올렸고, 기업 이미지를 올렸다는 게 그 회사가 만든 제품이라면 연결이 안 될 수가 없는 거죠.”

“10년 뒤 PR영향력 엄청날 것”

서정우 교수는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의 전신인 신문방송학과를 만들다시피한 한국 언론계의 큰 별이다. 과거 독일과 일본에서 영향을 받은 1세대들이 지고, 미국 유학파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언론학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을 시도했던 2세대 연구자들의 중심에 서 교수가 서 있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이기도 한 그는 미주 특파원, 펜아시아 타임즈 편집인 등을 거쳐 1965년 9월 미네소타 대학에 입학하면서 학자의 길에 들어섰다.

원로 학자의 눈에 비친 최근 대학들의 변화는 주목 할만 했다. 서울대는 언론정보로, 연세대는 언론홍보영상으로, 고려대는 미디어로 이미 학과명이 바뀌었고, 국내 최초로 신문방송학을 개설한 중앙대조차도 지난달 14일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로 명칭을 변경하기로 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격하게 변했어요. 그에 따라 인쇄 매체 위기가 심각한데, 아직도 학생들에게 신문저널리즘만 가르쳐서는 안 돼요. 방송이신문에 비해 생명력이 좀 더 있지만 방송 제작론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신문방송은 점차 중심의 위치에서 물러날 겁니다. 그보다 뉴미디어가 앞으로 창조해낼 세계는 경이롭기도 하고, 혁명적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학문에 주는 영향이 됐든, 산업계에 주는 영향이 됐든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학문이 능동적으로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요.”

미국 역시 이 같은 변화를 겪어 왔다. 저널리즘(School of journalism)에서 시작했던 학과명은 이후 저널리즘&매스커뮤니케이션(School of journalism&mass communication)으로, 지금은 커뮤니케이션학(School of communication)으로 바뀌었다. 신문, 방송, 잡지, PR, 광고, 마케팅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개념을 채택한 것이다.

비단 이 같은 변화가 학계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기업 역시 홍보실에서 커뮤니케이션실로 명칭을 변경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더디기는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뉴미디어발 혁명, 소통의 원형은 훼손

매체 환경 변화가 가져온 또 다른 변화는 전통 퍼블리시티 기반 PR의 위기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인터넷, 뉴미디어 등의 등장으로 PR에 활용할 수 있는 중심적인 미디어가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광고 제작자들이나 PR 관계자들이 아직도 마인드가 과거 신문방송 시절의 PR 마인드에 머물러 있다는 점입니다. 미디어가 바뀌면 콘텐츠가 바뀝니다. 형식뿐 아니라 콘텐츠까지 바뀌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최고 결정권자의 생각이 바뀌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겠죠. 그러나 그 밑에 실장들은 이제 변화된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이 CEO가 되기도 하고 CEO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고. 어떤 회사든 혹은 매체든 그 트렌드에 빨리 민감하게 승선해야 합니다. 일단 타 올라서 적응해 나가야 합니다.”

다만 모바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대변되는 뉴미디어 발 사회적 소통 효과에 대해서는 염려하는 부분도 여전히 많다. “며칠 전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었어요. 고3 딸을 둔 가족이 모처럼 시간을 내서 모였더라고요. 얼추 보니 공부 때문에 수고하는 딸에게 기운도 북돋아주고, 오랜만에 함께 하는 시간도 가지려고 모인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세 사람 전부 핸드폰만 보고 있더라니까요.”

뉴미디어가 왔으니 그걸 활용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학자로서 서 교수가 염려하는 부분은 뉴미디어 발 혁명이 들어오고 나서 원래 원했던 소통의원형이 엄청나게 왜곡됐다는 데 있다. 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채널 자체가 연령대에 따라 갈리다 보니 세대 간 소통의 갭이 커지는 것도 문제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원래 원했던 소통의 원형인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진정하게 연결해주는데 이바지 하는가, 혹은 광고주와 소비자의 관계든지, 그게 기업이 아니라 정부일 경우라도 마찬가지로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간혹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서 교수는 이 세대의 문법이 당신들 세대와는 다름을 느낀다. “세상이 참 가벼워졌어요. 대화를 해 보면 압니다. ‘차’를 주제로 에세이를 내주면 전부다 자동차 만을 생각하고, ‘땅’하면 부동산만을 떠올립니다. 사고가 엄청나게 굳어있고, 획일화 돼 있고, 직선적입니다. 그렇다고 이 세대를 평가절하하는 건 아닙니다. 분명히 그 세대가 갖고 있는 문법이 있을 테고, 리더십이 있을 것이고 능력이 있을 것이에요. 앞으로 사회는 그런 애들의 원칙에 맞추어서 형성되리라 믿지만,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기본적으로 뉴미디어 의존도에서 찾습니다. 긴 글은 쓸 생각도 없고 쓸 능력도 없습니다. 단문, 단답 위주지요.”

인터넷, 모바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시들고 있는 인쇄매체에 대한 대안도 제시했다. “나는 인쇄매체가 공룡처럼 없어지진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읽고 생각하는 문화가, 사회가, 인간이 사회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매체 환경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신문사 간부들을 만날 때마다 이야기해요. 이제는 단편적인 뉴스는 실을 필요가 없다. 호흡이 긴 글을 실어라. 많은 사건과 정보들이 엮어서 만들어내는 모자이크 이런 걸 실으라고 말입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서 할 수 없는 걸 지면이 담당해야죠. 깊고 분석적이고 해설적이고 심층적인 것 말입니다.”

실제 신문은 바뀌어 가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14일 개편을 통해 중견 기자들이 이름을 걸고 쓰는 분석 기사를 확 늘리고, 정치·사회·경제의 다양한 콘텐츠를 융합한 기사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기사 배열도 기존 정치·사회 등 카테고리별 구분이 아닌 독자들의 관심도에 따라 순서를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플레이보이라는 잡지 아시나요? 흔히들 그렇고 그런 부류가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인텔리에 속하는 사람들도 그 잡지를 읽습니다. 여성의 여체를 읽는 게 아닙니다. 플레이보이에서 딱 한 꼭지는 정말 수준 높은 인터뷰가 실립니다. 문학가와 정치가의 대담과 같은 기사지요. 그거 딱 하나 찢으려고 사람들이 그 잡지를 삽니다.”

많은 사건과 정보와 인간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엮어내는 다이내미즘(Dynamism), 그 큰 트렌드를 잡지 역시 따라야 한다는 게 서 교수의 생각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쇄매체가 살 길이 없어요. 100년 전 한성성보가 하던 편집 체제를 지금 신문들이 그대로 하고 있어요.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는데 말입니다.” 그동안 언론이 ‘갑’의 위치에 취해 변화에 대한 노력을 더디 한 것이 아닌지 씁쓸해 하는 원로 교수였다.

국민의 수준만한 언론이 있다

수많은 매체, 이들을 다 응대해야 하는 홍보인들의 고충, 그러나 이들을 규제할 수 없는 현실…. 그렇다고 서 교수는 정부가 나서서 법을 제정해 규제를 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정착시키기 위해 겪어야 할 과정이라 보기 때문이다.

“난 국민의 수준만한 언론이 있다고 생각해요. 국민의 수준만한 정치가 있고 국민의 수준만한 국회가 있습니다. 나는 늘 강의실에서 강의할 때마다 이야기 합니다. 왜 국민이 가만히 있느냐, 국민이 신문 구독 안하면 내일이라도 망한다, 그 무브먼트(Movement)가 캠페인이 되어 난 신문 안 보겠소, 100만 독자가 일어서면 신문사는 다 손들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방송도 마찬가지고요.”

기관이 하면 어렵지만 국민은 할 수 있다는 게 서 교수의 생각이다. 또한 국민들을 깨워줄 미디어의 역할도 필요하다. 미디어에서 계속 방제를 제기하고 논쟁을 붙이고 해서 고치고 나가야 한다는 것.

“올해 4주년을 맞은 <더피알>에 바라는 게 있다면 정보 유통의 교차로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매체 환경 변화에 따라 생기는 미디어업계, 광고업계, PR업계에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부정부패, 비리가 있습니다. 그런 현상을 놓고 계속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그게 환경 감시죠. PR계에 학계와 업계의 저널이 될 만한 것이 없었는데 마침 <더피알>이 나왔고, PR관계 정보 유통을 돕는 언로가 될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PR전문가들의 이야기를 PR업계에 전달하기도 하고, PR업계의 이야기를 PR전문가들에게 토스(toss)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어떤 결론을 주지는 않지만, PR계의 공통분모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서 교수는 PR 문화가 형성돼 우리사회에 정착하는 모습을 그리곤 한다. 매체 환경 변화와 수년간의 불황으로 인해 경색된 언론과 기업 간의 관계, 과거에는 100이었다면 지금은 10으로 줄어든 파이를 놓고 엄청난 경쟁을 펼치는 미디어의 생존을 위한 분투, 또 그 가운데서 한정된 예산을 쥐어짜내야 하는 담당자들의 고충 등 여러 가지로 어려운 현실이지만, 지금의 과도기를 지나 다시금 공생하며 나아가는 미래를 그는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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