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홍보
공정한 홍보
  • 문기환 (khmoon@saturnpr.co.kr)
  • 승인 2010.10.0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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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뜬금없이 어느 미국 대학교수의 정치철학 분야 교양과목 강의가 책으로 만들어져 우리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른바 ‘정의’에 대한 책이다. 그러더니 광복절 이후 우리사회는 ‘공정’이라는 말이 화두가 되고 잣대가 돼 정치, 경제, 사회 전반 이슈들을 아우르고 있다. 그렇다면 ‘공정한 홍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홍보인의 책무라 할 수 있겠다. 대학 졸업 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한 이래 지금껏 홍보 일만 해오고 있는 친구가 있다. 그는 몇 해 전까지 홍보부장으로 있다가 사정이 생겨 어느 중견기업 홍보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기업으로 옮겨 간지 1년 정도 지난 후 생긴 일이다. 그 동안 워낙 성실한데다 기자들과의 관계도 좋아 그 중견기업에 관한 긍정적인 홍보 기사가 TV, 신문, 잡지에 제법 크게, 자주 보도됐다.
신설된 홍보실의 성과가 그 정도이면 대단하다고 대내외적으로 평가 받고 있어 내심 흡족하게 지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회장에게 정기적 보고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회장이 “중요한 얘긴 아니지만 홍보책임자이니 참고로 알고만 있으라”고 한마디 하더라는 것이다. 얘기인 즉, 며칠 전 마케팅부장이 신제품 마케팅 판매 촉진계획의 하나로 언론보도 아이디어 하나를 제안했다. 친구는 ‘언론보도’란 단어를 듣는 순간 바로 자기 업무인지라 잔뜩 긴장한 채 귀를 기울였다. 그 부장의 제안은 TV 저녁 뉴스에 신제품을 보도하게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단, 어느 정도 비용이 든다고 했다. 회장은 “엄청난 TV 광고비용에 비해 훨씬 적은 비용으로 뉴스 시간에 보도 될 수만 있다면 판매 촉진 홍보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며 “즉각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차라리 그 신문사를 인수…”
여기까지 들은 친구는 두 가지 이유에서 매우 불쾌했다고 한다. 첫째는 ‘분명한 홍보업무 영역의 일을 홍보실장이 없는 자리에서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 둘째는 ‘혹시 회장이 저런 상식 밖의 제안을 믿는다면 지난 1년간 홍보실에서 수행한 대대적인 신문, 잡지, 방송 보도를 두고 마치 광고처럼 비용을 써서 한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이어진 회장의 말을 듣고는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한다. 마케팅 부장이 “단, 비용 처리할 때는 세금계산서나 영수증 발행을 할 수 없다”고 보고하길래 일언지하에 “그렇다면 절대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었지만, 내내 찜찜했던 친구는 얼마 후 만난 마케팅 부장에게 따지듯 물어봤다고 한다.
“십 수년 경력의 홍보실장인 나도 못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돈만 내면 TV 저녁 뉴스에 회사가 원하는 신제품 보도를 할 수 있나, 그 비결 좀 알려달라”고. 그러자 그는 자초지종을 털어 놓았다고 한다. “며칠 전 만난 신생 광고대행사 사람이 판촉방법을 놓고 고민하던 나를 보더니 은밀히 그런 제안을 했다”며 “아무리 쥐어 짜도 묘책이 없어 그만 회장에게 그런 제안이나마 보고를 했다. 그런데 칭찬은커녕 엄청 혼났다. 사전에 상의를 하지 않아 홍보실장에게 죄송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요즘엔 언론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높아져 홍보팀에서 기사 가치가 있는 홍보자료를 만들고 이를 기자들에게 설득력있게 설명했을 경우에만 보도되는 ‘언론홍보’와 비용만 지불하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크기로 원하는 내용을 알릴 수 있는 ‘광고’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그 보도자료는 OO신문에 꼭 나와야 해!’ 혹은 ‘그 신문에 난 기사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빼야 해!’라고 지시하는 CEO도 일부 있다고 들었다. 그런 우문에는 다음 한마디가 현답일 것이다. “차라리 그 신문사를 인수하시지요!”

문 기 환

khmoon@saturnpr.co.kr

새턴PR컨설팅 대표

(주)대우 홍보팀장(1990~1999)

이랜드그룹 홍보총괄 상무(200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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