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커뮤니케이션 문턱을 낮추다
만화로 커뮤니케이션 문턱을 낮추다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4.05.3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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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중년①] 이영욱 변호사

[편집자주] 공자는 40세를 두고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나이, 불혹(不惑)이라 했지만 이들을 만나고 그건 낡은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미혹 되는대로 실행하기 좋은 나이’가 어울린다. 그간 회사 다니랴, 가족 돌보랴, 바빴던 우리네 중년들이 조금 달라진 걸까. 좌충우돌 예능에 도전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작가가 되고, 프로 만화가로 실력을 다지는 등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하는 중년 3인방을 소개한다. 충분히 젊었던 그들은 짜기라도 한 듯 입을 모았다.“마음이 동한다면, 당신도 늦지 않았다”고.

① 만화로 커뮤니케이션 문턱을 낮추다 - 이영욱 변호사
② 스마트폰 사진으로 ‘결정적 순간’을 만나다 - 한창민 오픈넷 사무국장
③ 유쾌하게 망가져 ‘예능의 신’에 도전하다 - 김문석 경향신문 기자

[더피알=이슬기 기자] 법대를 졸업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문화·예술을 좋아하고 미술에 재능을 보였던 그의 꿈은 만화가였다. 대학시절에도 만화동아리 활동을 하고 관련 분야에서 몇 개의 상도 받았지만 졸업 후 애니메이션, 광고회사 등을 3년가량 경험한 이영욱 변호사는 뒤늦게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이제는 9년차 변호사, 매주 대한변협신문에 연재하는 ‘변호사 25시’를 비롯해 서너 개 매체에 만화나 삽화를 그리는 프로 만화가다. 대부분의 시간을 변호사로 살지만 주말 등 넉넉하지 않은 자유시간을 쪼개 만화를 그리는 그는 누구보다 바쁘게, 하지만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고 조율해가고 있었다.

▲ 서너개의 매체에 만화나 삽화를 그리는 프로만화가 이영욱 변호사는 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에도 연재를 꾸준히 할만큼 만화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때 작품을 엮은 <고돌이의 고시생 일기/김영사>를 비롯해 지금까지 10권의 법률관련 만화 단행본을 출간했다.

그는 첫 인사를 나누며 두 개의 명함을 건넸다. 하나는 그가 속한 법무법인의 이름이 박힌 깔끔한 명함, 다른 하나는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빼곡한 만화가의 명함이었다.

“보통 한 달에 평균 대여섯 개의 마감이 있는 편이에요. 부담스럽긴 하지만 제가 좋아서 하는 거고, 좋아하는 걸 하다 보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도 해요. 만화를 그리는 건 제게 몰입의 즐거움을 주는데 그게 너무 좋아서 아무리 바빠도 놓칠 수 없죠.”

이영욱 변호사(43)는 이례적으로 고시생 시절에도 법률저널에 만화를 연재했다. 그만큼 만화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당시 연재물은 <고돌이의 고시생 일기/김영사>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이밖에 그가 판례를 알기 쉽게 만화로 옮긴 책 등 단행본만 10 권을 냈다. 이 변호사는 현재 법무법인 강호에서 지적재산권, 공정거래 쪽 일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는 그저 좋아서 계속 해온 만화가 변론에도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음을 경험했다. 사실관계가 복잡한 사건들은 글이나 말로는 왜곡되기 십상이고, 판사들은 격무에 시달린다. 이때 그가 재현 영화를 보여주듯 상황에 말풍선을 이용해 제작한 15분~20분가량의 만화가 효과를 발휘한 것. 절박한 마음에서 복잡한 사건에 사용한 만화변론은 결과도 좋았다.

“얼마 전에는 어떤 대법관님이 제 만화를 재밌게 보고 계신다고 먼저 알아봐주시더라고요. 그 4컷 만화 때문에 그 신문을 보신다고(웃음) 너무 감사하고, 제겐 최고의 칭찬이죠. 그분 외에도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해주시는 경우가 꽤 있어요. 사실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없고, 그래서 신뢰를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어렵잖아요. 제 경우에는 만화 때문에 저를 알아보시는 경우가 꽤 되니까 저로서는 금상첨화죠.”

의뢰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기 전에 회사생활을 했던 경험덕분인지, 만화덕분인지 그는 전통적인 법조인 같지 않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 한편으로는 업계 유명 만화가들과 친분을 쌓을 기회를 갖게 돼 즐겁다. 석사학위도 만화저작권으로 썼는데, 만화가들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할 때 보람도 느낀다.

인터뷰 전날에도 3시까지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는 이 변호사는 만화를 계속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천성적으로 에너지 수위가 높은 편인 것 같다”며 웃었다. 사실 수지타산을 따지면 만화는 계속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가 대학 졸업 후 만화에 열정을 바치느라 동기들보다 늦어진 시간만 해도 6~7년에 이른다. 때때로 이 변호사는 ‘그 시간을 단축했다면 더 좋았을까’라고 자문해본 적은 있지만, 지금이 더 좋다고 여긴단다. 그 시간이 없었으면 ‘변호사 25시’ 같은 만화를 연재하고 있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 만화작업은 대개 그의 사무실에서 이루어진다. 이영욱 변호사는 "종종 변호사에게 이런 첨단 장비가 왜 필요한지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다"며 웃었다.

그는 좋아서 계속 해온 일이 당시에는 쓸데없어 보였지만 결국에는 본업도 풍성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뭐라도 하고 싶은 일을 놓지 않고 해나가는 건 자아실현에 좋을 뿐만 아니라, 크게 보면 본업에도 도움이 되기 마련이라고. 융합이 각광받는 이 시대에는 더 쓰임이 다양할 수 있다.

“제 경우에는 만화를 그리는 게 전반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부드럽게 하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워낙 스스로를 드러내는 걸 즐기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만화를 그리다보면 부득이하게(웃음) 생각을 드러내야 하고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서투르긴 하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또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되려면 자신을 좀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매일 잠깐씩 보는 가족보다 TV에 나오는 연예인의 생각을 더 잘 알고 있을 지도 몰라요. 그게 다 그들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 덕이겠죠.”

만화에 대한 애착이 깊은 만큼 이 변호사는 만화를 통해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개인적인 소망은 제가 법쪽 이야기를 많이 아니까, 법정드라마 웹툰에 스토리작가로 참여해보고 싶어요. 법정에서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일들이 많이 벌어지거든요. 지식이나 정보를 시각화하는 작업에도 관심이 많아요. 또 원래 메시지가 좋은 예술을 좋아하는데요. 나이나 경험이 쌓이다보니까 저도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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