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사진으로 ‘결정적 순간’을 만나다
스마트폰 사진으로 ‘결정적 순간’을 만나다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4.06.0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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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중년②] 한창민 스마트폰 사진가

[편집자주] 공자는 40세를 두고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나이, 불혹(不惑)이라 했지만 이들을 만나고 그건 낡은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미혹 되는대로 실행하기 좋은 나이’가 어울린다. 그간 회사 다니랴, 가족 돌보랴, 바빴던 우리네 중년들이 조금 달라진 걸까. 좌충우돌 예능에 도전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작가가 되고, 프로 만화가로 실력을 다지는 등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하는 중년 3인방을 소개한다. 충분히 젊었던 그들은 짜기라도 한 듯 입을 모았다.“마음이 동한다면, 당신도 늦지 않았다”고.

만화로 커뮤니케이션 문턱을 낮추다 - 이영욱 변호사
② 스마트폰 사진으로 ‘결정적 순간’을 만나다 - 한창민 오픈넷 사무국장
③ 유쾌하게 망가져 ‘예능의 신’에 도전하다 - 김문석 경향신문 기자

[더피알=이슬기 기자] ‘평범한 중년 남성의 사진 놀이’가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사진을 전공하거나 배운 경험이 전무한 그는 새로운 아이폰 4S를 구입하고 사진중심 앱 인스타그램(Instagram)을 놀이터삼은 지 약 1년 만에 만여 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중 3500여 장을 온라인에 올려 공유했다.

이는 곧 지인의 권유로 ‘한창민 사진전_지난 일년’이란 제목의 전시로 이어졌다. 그간 그의 사진을 눈여겨봐오던 SNS 친구들로부터 시작된 뜨거운 관심은 유수 언론에 다뤄지며 전시를 성황리에 마쳤다. 그리고 1년, 스마트폰 사진가 한창민은 <나는 찍는다 스마트폰으로/오픈하우스>라는 책으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 한창민 오픈넷 사무국장
조형물과 같은 자세의 행인이 인상적인 표지는 ‘결정적 순간’에 사진의 미학과 철학을 담았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을 떠오르게 한다. 책은 그가 사진전을 하게 된 이야기를 비롯해 스마트폰 촬영에 유용한 팁, 소재를 담는 요령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격자기능을 이용하면 피사체 배치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찰칵 소리를 안 나게 찍으려면 스피커를 손으로 막으면 된다’ 등. 누구라도 지금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나도 한번 해볼까’ 싶은 마음이 일 법하다.

이야기만 들으면 한창민 작가(50)는 어느 날 갑자기 작가가 됐다. 물론 여러 가지 운이 따른 탓이 있겠으나, 그를 오래 알아온 지인들은 “넌 원래 끊임없이 놀았다” “늘 사람들을 만나왔다”며 특별히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을 찍기 전에도 저는 좋은 책, 영화, 공연 등 문화생활을 항상 즐겼고 좋은 것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는 편이었어요. 하다못해 좋은 식당, 좋은 사람 등 좋아하는 것들은 늘 나누고 알려왔죠. 그게 어느 순간 사진과 SNS를 만나 폭발하게 된 것 같아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미디어, 인터넷 영역의 다양한 회사에서 기획자로 근무해왔다. 현재는 오픈넷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할 당시 그는 140자의 제한된 글 중심으로 소통하는 트위터에 슬슬 피로감을 느끼는 상태여서, 이미지 중심으로 소통하는 인스타그램의 방식에 큰 매력을 느꼈다. 워낙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그의 천성은 사진놀이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무엇보다 가볍고 편리하다는 점에서 스마트폰은 그의 마음에 쏙 들었는데, 그는 일년동안 새로운 장비로 해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실험을 다 해봤다고 회고했다.

“수중촬영 빼고는 기본 카메라로 해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촬영을 다 해봤더라고요. 일부러 소재를 찾아다니진 않았어요. 그냥 출퇴근길, 집이나 사무실 주변, 근처 골목 등 닥치는 대로 찍었던 것 같아요. 같은 자리라도 다시가면 또 다른 풍경이 있기도 하고요.”

▲ 한창민 작가의 사진전 포스터(왼쪽)와 책표지는 사진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사진놀이는 촬영 후 제목을 정하고 사람들과 공유해 품평 받는 데까지 아우르는 활동이었다. 낮에는 기자가 돼 촬영을 하고 밤에는 스스로 편집장이 돼 사진을 선택하고 올렸다. 품평을 받다보면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취향을 예측하고 확인하는 것 등도 이 유희의 일부였다. 이 취향의 간극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간혹 전혀 취향이 다름에도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사진을 찾아내는 등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평범하게 시작한 중년의 사진놀이는 점차 비범한 사진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유명한 사진작가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사진전을 했다고 해서 이만큼 관심들을 가져줬을까요?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고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저는 그걸 저만의 방식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드러냈던 거죠. 저는 남들처럼 비싼 카메라를 장만하고 동호회를 하면서 황금스팟을 찾아다지니 않았거든요. 전 그저 같은 피사체라도 남들과 다른 구도로 찍어보려는 노력을 계속 했어요. 가장 단순한 도구를 이용하다보니 자연스레 피사체라는 본질에 집중하게 된 거죠. 그러다보니 저를 보아온 사람들은 저를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 가장 만만한 장비로 사진을 찍다가 어느 날 전시도 하고 책도 내니까 뿌듯하고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이런 느낌이 있어서 저에게 더 마음을 모아준 것 같아요.”

사진을 찍고 전시를 하고 책을 내면서 다소 냉소적이던 한 작가의 태도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일단 사진을 찍다보니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커지게 됐다. 피사체가 없으면 사진이 없으니까. 자신을 둘러싼 사물, 사람, 자연 등 사방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보다 애틋해졌다. 또 자신의 사진을 아끼고 사랑해준 이들과 더 가깝게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동하고 있다. 피사체에 대해서든 관계에 대해서든 여러모로 좀 더 적극적이고 따뜻하게 변했다고.

그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건, 자신의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다. 말하자면 ‘자기로의 일탈’이랄까.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하면서도 흔히 주변에 휘둘리면서 자기를 잊거나 잃어버린다. 사진은 그에게 그렇게 버리면서 살아온 자신을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돼주었고 나아가 낯선 세계와 소통하는 통로가 됐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소중한 경험도 선사했다.

“예전보다 적은 양이지만 저는 지금도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고 있어요. 지금은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특별한 포부보다는 작가로서의 저에게 오는 제안이나 만남을 즐길 생각이에요. 아, 또 저를 보며 자신도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으신데, 저는 그냥 하시는 게 정답인 것 같아요. 결국 자기선택이거든요. 목표나 욕심을 너무 높게 두고 투정하지 마시고 그냥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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