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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버네이즈, PR의 아버지인가 조작의 아버지인가
에드워드 버네이즈, PR의 아버지인가 조작의 아버지인가
  • 신인섭 admin@the-pr.co.kr
  • 승인 2014.06.05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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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섭의 글로벌PR-히스토리PR] 세계 PR에 큰 획…평가는 엇갈려

“지금은 대량생산 시대이다. 물건을 대량 생산하는 과정에서 물건을 유통하는 광범위한 기술이 개발 되었다. 이 시대에는 또한 아이디어를 대량 유통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_ Crystallizing Public Opinion 1923

▲ 에드워드 l. 버네이즈

[더피알=신인섭] PR 전문가를 비꼬는 말 가운데 영어 낱말 ‘스핀(SPIN)’이 있다. 이는 말은 꾸미거나 조작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PR일을 하는 사람을 비꼬는 표현이다.

1891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와 1995년 104세에 사망한 에드워드 L. 버네이즈(Edward L. Bernays)는 긴 생애만큼 오랫동안 숱한 일과 이야깃거리를 남긴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이다.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여동생이 어머니이고 그의 처남이 아버지이니 프로이드와는 뗄 수 없는 일가나 마찬가지다.

그가 뉴욕에서 시작한 PR 사무소 동업자 플레시먼(Fleishman)은 그의 아내가 됐고, 현재 그녀의 이름을 딴 플레시먼은 세계 3위의 글로벌 PR회사로 성장했다. 1995년 버네이즈는 104세로 사망했다. 그의 추도사에는 ‘PR의 아버지(Father of Public Relations)’라는 말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의 전기(傳記) 제목에는 ‘조작(操作)의 아버지 (Father of Spin)’라는 말로 표현된 인물이다.

정신분석학·심리학, PR연구에 도입

농업을 전공해서 22살에 코넬대학을 졸업한 버네이즈는 전공과목 대신 저널리즘을 택했다.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그는 윌슨 (대통령) 정부가 창설한 공보위원회 (Committee of Public Information)에서 일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사실 미국의 참전은 1차 대전이 끝나기 1년 전인 1917년이었는데, 이 때 공보위원회가 한 일은 방대했다. 시급을 요구하는 모병,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한 국채 판매, 적십자 운동 등 온 나라를 동원하는 데에 이 위원회는 혁혁한 공헌을 했다.

이 시절 광범위한 정부의 공보 업무를 계획하고 집행하는 것을 보고 겪은 버네이즈는 전쟁이 아닌 평화 기간에도 이런 기술을 응용할 수 없을까를 생각했다. 공보위원회는 전쟁이 끝난 이듬해 1919년에 해산됐다.

1923년 버네이즈는 뉴욕대학에서 미국 최초로 PR 강의를 하게 되는데 그 해에 그는 <크리스털라이징 퍼블릭 오피니언(Crystallizing Public Opinion·여론의 결정)>이란 책을 내게 된다. 또 5년 뒤에는 그가 쓴 가장 중요한 책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출간했는데, 그 가운데 말썽거리가 된 부분이 다음 글이다.

“조직된 습관이나 여론을 의식적이고 현명하게 조종하는 일은 민주주의 사회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가 계획한 수많은 PR 행사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버네이즈는 PR의 힘을 실천을 통해 증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 판매와 관련된 일이다.

어메리칸 토바코(American Tobacco) 회사의 힐(Hill) 사장은 괴짜였는데, 인구의 절반인 미국 여성이 담배를 필 수 있도록 하면 정원에서 금광이 나오는 것과 같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1928년 힐 사장은 버네이즈를 고용해 일을 맡겼다.

버네이즈는 특정 담배를 선택하게 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 문제로서, 어떤 특정 행동이 남성에겐 타당하나
왜 여성들에겐 그렇지 않는가를 알아내는 일을 시작했다. 원인을 찾기 위해 정신분석학에서 도움을 구했고, 그가 찾은 사람은 저명한 심리학자 A.A. 브릴(Brill)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브릴은 1929년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여성이 담배 피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히 정상적인 것이다.
여성의 자유는 여러 가지 억압된 여성의 욕구를 해방시켰다.
그 결과 지금 많은 여성은 남성이 하는 일과 꼭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임신하지 않는 여성이 증가하고 있으며 아이를 갖더라도 적게 가진다.
여자의 특성은 가려져 있다. 남성과 동일시되는 흡연이 여성에게는 자유의 횃불(Torches of Freedom)이다.

브릴의 결론에서 언급된 마지막 말 ‘자유의 횃불’에 착안한 캠페인이 시작됐다. 1929년 부활절 일요일 예배 후 신도들이 교회에서 나올 무렵, 버네이즈가 엄선한 일단의 미녀들이 뉴욕의 중심 번화가인 5번가(Fifth Avenue)에서 행진을 했다.(5번가에는 큰 교회 셋이 있다)

그리고 버네이즈의 신호에 따라 담뱃불을 붙였다. 왜 공공장소에서 남성의 흡연은 당연하고 여성은 부당한가에 대한 항의 즉, 자유의 외침을 의미하며 횃불이 당겨진 것이었다. 센세이션이 일어났다. 언론은 앞 다퉈 관련 기사를 썼다. 그리고 이 행사는 미국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갔다.

▲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를 여성의 자유를 향한 외침과 결부시킨 ‘자유의 횃불’ 캠페인 광고. ‘an ancient prejudice is removed(오래된 편견 하나가 제거되었습니다)’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띈다.

담배 캠페인, ‘자유의 횃불’로 승화

1920년 미국 여성은 그렇게 싸워 온 참정권(투표권)을 얻었고, 1929년에는 드디어 여성도 내놓고(?) 담배 필 자유를 달라는 자유의 횃불을 들고 나섰다.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 광고에는 ‘An Ancient Prejudice Has Been Removed(오래된 편견 하나가 제거되었습니다)’란 헤드라인이 나왔다. 물론 멋진 여성의 그림이 곁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버네이즈는 훗날 자유의 횃불 캠페인을 성공시킨 그의 행동을 후회했다. 그리고 1960년대 그는 금연 운동 변호사의 일을 도왔다. 1980년 그의 나이 90세 때 아내는 폐암으로 죽었다.

올해는 그가 사망한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남이야 무어라 부르든 버네이즈는 미국, 나아가서는 세계 PR 발전에 큰 획을 그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제3자의 증언, 정신분석학, 심리학 및 사회학 등을 PR연구에 도입한 일, PR자문을 ‘사회과학자의 업무’와 같은 일로 승화시킨 일은 대단한 업적이다.

버네이즈가 쓴 몇 권의 책은 PR의 고전(Classic)이 됐다. 그런 점에서 그의 이름을 딴 PR회사가 한국에 있는 것도 결코 놀랄 일은 아니다.
 

 

 

신인섭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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