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 된 재난대응매뉴얼, ‘귤’이 되려면
‘탱자’ 된 재난대응매뉴얼, ‘귤’이 되려면
  • 조성은 (admin@the-pr.co.kr)
  • 승인 2014.06.1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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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의 사내컴 속으로] 조직문화 변화 없는 매뉴얼은 무용지물

[더피알=조성은]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세월호 대참사를 계기로 국토교통부는 대형사고 현장에서 맞춤형으로 적용하는 실행 매뉴얼을, 교육부는 수학여행 시 선박 이용과 관련한 안전매뉴얼을 제작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참사는 아무리 훌륭한 재난관리매뉴얼이 있어도 사고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3000여개가 넘는 재난유형별 대응매뉴얼이 탱자가 아닌 귤이 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모양이지만, 이번 사고 수습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국가재난안전체계의 문제점에 대해 대통령 주재로 부처별 의견 및 해법을 논의한 자리에서 재난대응매뉴얼의 활성화 방안이 세부주제 중 하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 자료사진=지난 2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해양수산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재난안전점검대책회의. ⓒ뉴시스

조직문화는 재난관리매뉴얼의 효과적인 작동 여부를 좌우하는 토양이다. 조직문화는 조직이 일하는 방식을 이끄는 조직구성원들 간의 공유된 가치, 신념, 지식, 이해 체계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예방을 강화하는 이상적인 재난관리는 재난상황에 대한 빠른 인식, 신속한 대응,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한 평가와 학습 행동을 할 수 있는 조직구성원들 간의 공유된 가치, 신념, 지식의 조직문화를 요구한다.

위기관리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재난사고발생 상황에서 조직구성원들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느냐는 개인적 가치, 신념, 태도 보다 조직이 지닌 우세한 조직문화가 더 근원적 요인임을 밝히고 있다. 조직문화는 조직의 재난대응에 대한 집단적 능력을 발전 또는 약화시키는 환경, 즉 토양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재난관리매뉴얼 제작, 개인적 특성과 성향보다 재난관리를 효과적으로 지원 또는 악화시키는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느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재난시 위기관리, 개인특성보다 조직문화에서 판가름

성공적인 재난관리매뉴얼이 작동한 조직문화는 재난상황을 정확하고 신속히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직의 리더에서 직원들까지 모두 재난에 대한 올바른 가치, 신념, 지식, 이해가 공유된 조직문화다. 재난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그것이 가져올 인적·물적 피해 위험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지 못하면 신속한 재난대응매뉴얼 작동은 불가능하다. 또한 조직구성원 누구나 안심하고 재난관리를 위한 제언들을 할 수 있고 이것들이 반영되며 원활한 수직적·수평적 커뮤니케이션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참여적 조직문화에서 가능하다.

권위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조직은 재난대응매뉴얼이 형식에 치우치거나 수동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재난 징후가 발견됐을 때 보고를 장려하는 조직문화가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사고 탐지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 조직 해체에 직면한 해양경찰청의 일선 해양경찰관들은 세월호 참사의 부실 대응 원인은 실적과 평가가 중심이 되는 조직문화였다고 지적했다. 해양사고 30% 줄이기라는 목표에 근거한 실적 평가는 이를 수행하기 위해 조직구성원들의 해양사고 숨기기, 거짓 보고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재난사고 부실대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위로부터 재난관리에 대한 명확하고 일관성 있는 톤, 지속적인 재난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사람 중심의 가치와 윤리적 원칙들에 대한 내재화, 위험 정보 흐름의 투명성과 즉각성, 재난 사건 보고와 활동적인 관련 학습 추구에 대한 격려, 적합한 위험 감수 행동에 대한 보답과 격려, 재난관리 기술과 지식 습득에 대한 가치 부여, 현상유지에 대한 도전, 다양한 관점과 가치 신념들이 보장되는 조직문화가 뒷받침할 때 재난대응매뉴얼도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므로 탱자가 된 재난대응매뉴얼의 활성화 방안은 귤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의 조직문화를 만드는 조직문화변화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바꾸는 재난대응매뉴얼 활성화 방안

이를 위해서 첫째, 재난관리의 토양이 되는 기존 조직문화를 평가하라. 샤인(Schein, 1992)에 따르면 조직 문화는 3개의 층으로 구성되고, 밑으로 갈수록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첫 번째는 직위에 따른 사무실의 크기, 복장, 문서작성형식, 호칭법, 의사결정방식 등과 같은 가시적인 수준의 인공물(artifacts), 테크놀로지(technology), 그리고 행동 방식(behavior patterns)이 있다. 두 번째 층은 조직 내에 어떤 것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는 공유된 가치(Shared values)다. 예를 들어, 서열보다 성과에 따라 보상과 승진을 결정하는 조직은 성과가 조직 내 공유된 가치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층에는 조직 구성원들의 행동방식을 이끄는 기본 신념(basic beliefs)과 가정(assumptions), 즉 세계관이다. 이러한 기본 가정들은 그 자체가 조직구성원들이 존재하고 행동하는 방식이므로 조직구성원들 스스로도 잘 파악하지 못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화 외에 숨겨진 문화, 조직 전체를 지배하는 우세한 문화는 물론 부서별, 직급별로 존재하는 하위문화 등 모든 문화들을 파악해야 한다.

둘째, 기존 조직문화가 재난대응매뉴얼 작동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기존 조직문화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기존 문화가 성공적인 재난대응매뉴얼 작동을 뒷받침하는 바람직한 문화인지 진단해야 한다.

셋째, 성공적인 재난관리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개선할 것인가를 찾아라. 바람직한 재난관리 조직문화를 성장시키고 지속시키는데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변화를 만들어야 내야 하는지를 규정해야 한다.

넷째, 재난대응매뉴얼의 좋은 토양이 될 수 있는 조직문화변화를 기획하고 실행하라.

다섯째, 지속적으로 재난관리를 위한 조직문화변화를 모니터하고 그 결과를 반영하라. 원하는 결과들을 성취하고 있는지, 지금까지 진행하는 관점에서 지금 변화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그 내용을 프로그램에 수용한다.

정부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혁명적 발상으로 안전혁신마스터플랜을 마련하겠다고 천명했다.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은 무용지물이었던 재난대응매뉴얼, 해양경찰청,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등 재난관리 정부조직의 총체적 부실은 하드웨어적인 문제 해결방식인 국가재난관리시스템에 대한 대대적 개편만을 통해선 해결하기 힘들다. 해양경찰청이 해체하고 산재해 있는 재난관리업무를 통합하고 권한을 강화하는 국가재난안전처를 신설한다고 해도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 즉 조직문화를 진단하고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혁명적인 발상은 실효를 거둘 수 없다.



조성은

코콤포터노벨리 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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