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 ‘미안하다’ 패러디물, 저작권 문제는 없을까?
고승덕 ‘미안하다’ 패러디물, 저작권 문제는 없을까?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4.07.0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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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인정받으려면…창작성 가미, 시장수요 대체하지 않아야

[더피알=안선혜 기자] ‘못난 키퍼를 둔 대한민국에게 미안하다!!!!!’ ‘못난 앞차를 둔 뒷차에게 미안하다!!!!’ ‘(해피밀 대란 당시)바닥나서 미안하다’….

서울 강남역 대로변에서 딸에 대한 미안함을 소리쳐 전한 고승덕 변호사(전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모습을 빗댄 패러디물은 지난 6·4 지방선거가 남긴 최고의 ‘핫’한 콘텐츠로 꼽힌다. 하지만 숱한 패러디물에는 저작권법 위반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 온라인 상에서 다뤄지는 다양한 콘텐츠들과 저작권법 이슈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 2012년 삼양식품은 인터넷 포털 등에 “내가 제일 잘 나가사끼 짬뽕”이란 문구를 사용한 광고를 집행하면서 걸그룹 투애니원(2NE1)의 노래제목인 ‘내가 제일 잘 나가’와 저작권 시비에 휘말렸다. 당시 이 곡의 작사·작곡자는 자신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광고사용 게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삼양식품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투애니원의 ‘내가 제일 잘 나가’라는 제호는 내가 인기를 많이 얻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단순한 내용을 표현한 것으로 문구가 짧고 의미도 단순해 보호할만한 독창적인 표현이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고, 독립된 사상이나 감정을 창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보기도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반면, 지난 2007년 서울지방법원 판결에 따르면 코미디프로그램 <웃찾사>의 ‘따라와’ 코너에 출연하는 개그맨들의 얼굴을 모방한 캐릭터를 이용하고, 유행어 “도토리 따러와!” “참여만 해도 도토리 다 주는 거, 너무 친절한 거 아니에요?” 등을 이용해 이벤트 홍보 화면을 제작한 통신회사는 패소 판결을 받았다.

원고인 개그맨들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개그맨들이 ‘따라와’ 코너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어 개인의 용모, 동작, 실연 스타일 등 총체적 인성에 대한 상품적 가치인 퍼블리시티권을 갖게 됐고, 원고의 동의 없이 ‘따라와’ 코너를 패러디한 광고를 내보낸 것은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한 것이라 본 것이었다.

유사한 듯 하나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온 이 두 판례는 저작권법과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유행어가 저작권법 상 저작물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해당 표현이 사상이나 감정을 창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 법원은 단순히 단어 몇 개를 조합한 것, 혹은 간략한 문장 등은 그 자체로 창작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대체적으로 저작물성을 부인하고 있다. 이는 적은 수의 단어 조합으로 이뤄진 표현에까지 저작권법의 보호를 부여한다면 사람들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에까지 지나친 제약을 가해 불편을 초래하게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보도자료로 나간 영화 포스터, 사용해도 된다?

그러나 저작권법상 권리침해는 아니더라도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대한 주의는 필요하다. 퍼블리시티권이란 자신의 정체성이 가지는 상업적 가치를 통제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로, 우리나라 법은 퍼블리시티권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판례상 인정하고 있다.

특정인의 동작, 행동을 모방하거나 성대모사를 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건 저작권법상 권리침해는 아니더라도 퍼블리시티권 침해로는 여겨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 온라인 커뮤니티 및 트위터 캡처. 고승덕 변호사의 사과 장면을 패러디한 초보운전 스티커(위)와 브라질월드컵 당시 실망스러웠던 우리나라 골기퍼의 경기를 고 변호사의 사과 장면에 대입시킨 패러디물.

최근 치러진 6·4 지방 선거가 남긴 가장 ‘핫’한 콘텐츠들 중 하나인 고승덕 변호사(전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패러디물에도 원칙적으론 위법의 소지가 깔려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고 변호사가 나온 보도사진 및 동영상은 저작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고, 여기에 글씨를 첨가한다면 2차적 저작물에 해당돼 저작권법에 위반되기 쉽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친고죄를 적용하는 저작권법의 특성상 원저작자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처벌을 하지는 않는다.

또 저작권과는 별도로 고 변호사가 자신이 희화화되는 것에 기분이 나쁘다고 느낀다면 프라이버시권 침해로도 법적 대응이 가능하다.

지난 선거에서 후보들이 많이 활용했던 영화 포스터 패러디도 조심해야 할 사안 중 하나다. 흔히 보도자료로 뿌려진 영화 포스터나 책 표지는 자유롭게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중에게 자료를 배포했다고 해서 저작권을 포기한 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자나 홍보물을 만든 사람이 자유 이용을 허락했다면 이용에 문제가 없겠지만, 저작권을 포기하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해 저작권자에게 확인을 거칠 것”을 권했다.

이동길 법무법인 나눔 변호사는 “패러디가 공정이용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원작물 자체에 대한 비평 또는 풍자의 요소를 지녀야 하고, 다른 창작적 요소가 있는지 따져봐야 하는데, 특히나 사회 현상이나 정치 상황 등을 비평하는 매개패러디라면 공정이용 사유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공정이용은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저작물을 저작권자의 허가를 구하지 않고 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원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12월 2일 저작권법 개정에서 공정이용 일반조항이 신설됐다. 패러디는 크게 원작 자체에 대한 비평을 담은 직접적 패러디와 사회적 풍자를 담은 매개패러디로 나뉘는데, 매개패러디의 경우 원작자의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다.

그밖에 패러디에 있어서는 원작이 이용된 분량과 원작물에 대한 시장 대체성이 있는지도 주요한 판단기준이다. 이동길 변호사는 “사기업이 쓴다고 무조건 패러디가 인정을 받지 못하는 건 아니다”며 “패러디의 공정이용에서 중요한 판단기준은 시장적 수요를 대체하느냐 인데, 해당 콘텐츠로 인해 원저작자의 경제적 손실이 없을뿐더러 홍보에도 오히려 도움이 된다면 덮어놓고 반대할 일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지난해 유튜브 조회수 500만을 넘어서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레밀리터리블>(공군 제작)의 경우도 해당 영상 때문에 영화 <레미제라블>의 흥행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원리다.

단, 기업 홍보용 패러디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좀 더 엄격하다는 점은 고민거리이다. 문종원 맥도날드 커뮤니케이션팀 팀장은 “흔히 크리에이티브 싸움이라고 하는데, 기업이 패러디한다거나 벤치마킹하면 평가가 굉장히 박해진다. 자신할 수 있을 정도의 패러디가 아니면 굳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표현방식은 보호, 아이디어는 비보호

▲ 마이클 케나 작 '솔섬'(위), 대한항공 광고에 사용된 사진(아래) ⓒ뉴시스

표현방식은 보호하나, 아이디어는 보호 대상이 아닌 저작권의 특징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도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2011년 8월 마이클 케냐가 2007년 찍은 ‘솔섬’과 비슷한 사진을 광고에 사용하면서 마이클 케냐의 에이전시인 공근혜 갤러리와 법정다툼까지 가게 됐다.

지난 3월 1심 재판부는 “저작권 보호 대상은 학문·예술에 관해 사람의 노력으로 얻어진 사상·감정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 형식이므로, 사상·감정·이론·아이디어 자체는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대한항공의 손을 들어줬다. 피사체가 자연물이기에 누구나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고, 해당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을 직접 이용한 게 아니라 단지 솔섬을 찍는다는 아이디어를 차용했다는 논리에서다.

그렇다면 최근 누리꾼들의 무한 애정을 받으며 주가를 높이고 있는 김보성의 ‘으리으리’한 시리즈 광고들은 서로 저작권 침해 문제가 없는 걸까? 각사에서 ‘리’자를 ‘으리’로 변환시키는 아이디어는 차용했지만 각 표현은 ‘신토부으리’ ‘볼거으리’ ‘에누으리’ 등 다르게 나타나기에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다만, 현재 대한항공의 솔섬 사진 침해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공근혜 갤러리는 1심 판결 후 즉각 항소했고, 양사는 법적 공방 제 2라운드 돌입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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