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헌 활동가를 쉬게 하라
사회공헌 활동가를 쉬게 하라
  • 엔자임 이병일 이사 (admin@the-pr.co.kr)
  • 승인 2014.07.0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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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의료봉사와 남겨진 과제] 이병일 더 커뮤니케이션즈 엔자임 이사

[더피알=이병일] 세월호 사태로 전 국민이 미디어를 통해 매일 참담한 소식을 접하던 무렵, 스마트폰은커녕 휴대폰 로밍도 불가능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한 시골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국의 대표 의료봉사 NGO인 국제실명구호기구 ‘비전케어(Vision Care)’의 핵심 프로그램인 해외 안과의료봉사 캠프(Eye Camp) 전 과정을 참관하고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컨설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흔히 ‘의미 공유(Shared Meaning)’라는 커뮤니케이션의 목표가 수행되기 위해서는 시스템적인 ‘채널(channel)’과 ‘연결(connecting)’이 전제된다. 그 방식이 아날로그이던 디지털이던, 우리 일행은 ‘접속의 시대’로부터 공간이동을 한 이후 단절된 네트워킹에 이내 당황하고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 무료개안수술 후 의료캠프 마지막날 시력 확인을 위해 병원을 찾은 수술환자들.

‘아프리카의 뿔’에 해당하는 에티오피아는 내전으로 혼란을 겪은 수단과 ‘해적’으로 악명 높은 소말리아 사이에 위치해 있다. 1인당 연소득 771달러에 인간개발지수 177개국 중 170위. 세계 최빈국 중 하나. 평균수명 47.6세. 40세 이전 사망이 전체 인구의 40 퍼센트에 육박하고, 국민의 80%는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것이 에티오피아의 현주소다.(UNDP 2010)

열악한 그 곳엔 안과의사가 거의 없어 백내장에 걸리면 일반 국민은 곧 실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한국에서 15분이면 끝나는 시술이 사회적 시스템이 없고, 의료인의 시술의 수고를 제외하고도 15만원이라는 엄청난 의료원자재 비용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 오랜 기간 실명 상태로 지낸 환자가 한국 의료진을 찾는 일이 많다.

목적지인 피체병원(Fitche Hospital)은 미국 CDC의 공적개발원조(ODA)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설립된 병원이다. 한국의 비전케어에서 파견된 의료진 및 자원봉사팀, 현지 수도에 주재한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합류한 간호사 및 검안사, 그리고 이곳 에티오피아에서 보기 드문 안과의사 2명이 연수차 합류했다.

현지에서 완성된 아이캠프팀이지만 의료 활동은 예상한 수준을 크게 상회할 정도로 훌륭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깐의 식사시간을 빼고는 쉬지 않고 수술이 이뤄졌고, 4박5일 동안 1000명의 외래환자, 130여명의 백내장 개안수술을 진행했다. 심지어 현지 의료진의 수술 트레이닝까지 병행된 시술이 포함됐다. 일손이 모자란 탓에 필자 역시 자연스럽게 수술팀 산동실에서 환자 지원 활동에 참여했다.

계속되는 수술에 현지 의료진은 점심식사인 ‘인젤라(에티오피아의 주식)’가 식어버렸다고 불평했다. 그만큼 숨가빴다. 한국 의료진은 수술실이 전력부족으로 정전을 맞은 순간에야 비로소 부족한 휴식을 취했다. 그조차 한국에서 동행한 손빠른 의료기기 회사 직원의 참여로 금방 시스템이 안정화돼 현장의 가치사슬(Value Chain)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Engagement)는 비전케어 같은 NGO의 조직 아이덴티티의 핵심적인 근간이다. 자발성의 성과는 그 어떤 효율 보다 높다.

캠프팀의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는 모두 항공료와 숙식비를 자비로 부담했다. 그들은 회의하지 않았다. ‘문제발견 즉시 해결책 모색’의 메커니즘이 가동됐다. 악명 높은 아프리카 벼룩에 대응해 벼룩약과 팔목을 가리는 토씨를 챙겨왔고, 열악한 숙소에 대비해 침낭을 한국에서 챙겨왔다. 심지어 불편한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컵라면과 햇반을 넉넉히 준비해와 하루 세 번의 끼니해결을 도왔다.

비전케어는 이 아이캠프를 2002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12년 동안 160여 차례나 진행했다. 그동안 안질환 및 외래 진료건수가 올해로 총 10만건에 이른다.

▲ 무료 개안수술캠프가 마련된 수술실에서 대기중인 환자들.

그러나 이들의 헌신과 활약에 감탄하면서 발전적인 고민을 더한다. 2002년 파키스탄에서 처음 시작한 아이캠프는 이제 아프리카 및 남미대륙을 비롯해 전세계 32개국으로 확장됐다. 해외 거점병원만 3곳이 마련됐고, 미주지부를 비롯해, 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에 현지 지부를 두고 있다.

그만큼 활동가가 감당해야 하는 국가와 책임을 지는 아이캠프도 초기보다 크게 늘었다. 10여년간 체득된 해외 의료캠프 노하우는 소중한 자산이 돼 현장 구성원들의 지식으로 내재됐지만, ‘사명의식’만으로 조직의 도약을 모색하기에는 구성원이 ‘소진(Burn Out)’되기 쉬운 잠재적인 부담을 안고 있다. 

비정부기구(NGO) 및 비영리단체(NPO)에서 활약하는 구성원을 흔히 ‘활동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활동가가 활약하는 많은 사회공헌단체에서는 ‘인력난’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전케어의 경우 구성원의 자발성과 사명의식을 조직DNA로 성공적으로 성장해 온 사례에 해당하나, 여타의 단체 중에는 의욕에 비해 현장 이해도는 다소 부족한 신입 활동가와 수많은 희생과 경험을 통해 산전수전을 다 겪은 간부 활동가 사이에 3~5년차 중간 팀장급 활동가의 부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제적 보상이 아닌 가치지향적인 삶을 위해 합류한 이들에게 역설적으로 동기부여가 소진되면, 현실적인 고민 끝에 자책하며 판 자체를 떠나는 경우도 종종 발견 된다.

선의에도 전략적인 ‘절제’가 필요하다. 가장 성실하다고 불리는 유대인들이 ‘안식년’을 취하는 것에는 더 오래, 더 많은 성과를 얻기 위한 그들의 ‘지속가능한 지혜’가 녹아 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 군부대의 실전 훈련 마지막에는 필드훈련 기간만큼의 휴식과 복구(Recovery)기간이 반드시 수반된다.

한국의 사회공헌단체가 1세대의 조직 설립자와 개국공신의 ‘초인적인 헌신’으로 성장해 왔다면, 조직의 안정화를 모색하는 2세대로의 이관 단계에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의 모색을 꾀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비전케어 역시 1세대의 헌신 시기에서 2세대로의 진화를 모색하는 시기를 맞고 있다. 행위 주체인 참여자의 효율 및 지속성 제고와 전략적인 시스템에 대한 접근을 고민하는 질적 전환의 변곡점을 만난 것이다.

꾸준한 활동으로 쌓아둔 비전케어 이해관계자들과의 신뢰는 탄탄했고, 이를 통해 키워온 이들의 후방 생태계는 튼튼했다. 해외캠프팀을 준비하면 제약사는 약품을 원가로 공급했고, 렌즈회사도 이윤을 거의 남기지 않고 지원했다. 검사장비를 지원하는 의료기기사는 직원을 직접 파견하고, 현지 치료가 어려운 환자의 경우 국내로 초청해 치료하기까지 했다. 동종업계의 가치사슬에서 각자 역할하고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공유한 ‘부가가치’로 모이자, 바로 공유가치가 창출되는 ‘CSV(Creating Shared Value) 현장’으로 완성됨을 목격했다.

비전케어의 아프리카 거점 활동지역인 에티오피아는 유명한 커피 산지이기도 하다. 한국의 스타벅스 커피 한잔 비용으로 에티오피아 현지에서는 싸고 품질 좋은 원두 커피 한통을 얻을 수 있다. 이를 한국의 연간 후원회원에게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실비로서의 가치(Value)만큼 1인당 수술 원자재비(15만원)를 충당하는, 말 그대로 상호 공유가치(CSV)에 기초한 ‘지속가능한 프로그램(Sustainable Program)’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가능성 여부(Feasibility Check)는 현장에서 수고하는 활동가들과 커피 한잔 하면서 얘기해 보아야겠다. 
 


이병일
엔자임 이사 (Healthcare MBA)

SK그룹에서 OK캐쉬백, 싸이월드 브랜딩 등을 담당했고,현재 엔자임에서 복지부, 환경부, 식약처, 질병관리본부 등 공공 공익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중이며, 공공 공익마케팅본부 이웃(EOOT)을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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