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기자, ‘스피커’에서 제 2의 길을 찾다
해직기자, ‘스피커’에서 제 2의 길을 찾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07.1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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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명품 스피커 ‘쿠르베’ 만드는 박성제 PSJ디자인 대표
▲ 박성제 psj디자인 대표.

[더피알=문용필 기자] 박성제 PSJ디자인 대표에게 오디오, 혹은 스피커는 일상의 취미일 뿐이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직장에 다니던 시절, 아내를 졸라 동호회 장터를 통해 스피커를 바꾸곤 하던 평범한 오디오 마니아였다.

그러나 2년 전 해직의 아픔을 겪은 후 그는 용기있게 자신의 취미를 직업으로 승화시켰다. 그리고 그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스피커 ‘쿠르베’는 네모박스 형태가 대부분인 여타 스피커와는 달리 원통형의 범상치 않은 디자인과 하이엔드 제품임에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최근 오디오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는 호인(好人) 느낌이었다. 듬직한 체구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그는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쿠르베의 성능을 직접 확인시켜주고 싶었던지 그는 인터뷰를 하기 전 CD 한 장을 플레이어에 넣었다.

익숙한 하모니카 소리가 들리고 이내 고(故) 김광석의 담담한 목소리가 원통형의 스피커를 거쳐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이등병의 편지’였다. 십 수년을 들어왔던 노래지만 이어폰이나 PC 스피커로 듣던 것과는 확실히 감흥이 달랐다. 쓸쓸함이 짙게 배인 가객(歌客)의 목소리가 가슴과 귓전에 울렸다. 어떻게 이런 스피커를 만들게 됐는지 궁금했다.

“2012년 타의에 의해 회사를 그만두게 됐어요. 복직소송을 준비했지만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릴 것 같았죠. 뭔가 할 일을 찾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공방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창의적인 일을 해보고 싶어서 가구를 디자인해 만들다가 네모난 스피커를 몇 개 만들어봤어요. 그럭저럭 괜찮은 소리가 나더라고요. 그런데 네모 스피커는 좀 평범하잖아요. 마지막으로 내가 평생 쓸, 하나밖에 없는 멋있는 스피커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디자인했죠.”

박 대표는 오디오 동호회를 통해 만난 엔지니어와 상의해 원통형 디자인의 스피커를 디자인하게 됐다. 지난해 초의 일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회사를 차릴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약 두 달 후 완성된 제품이 나오고 동호회원들의 호평을 얻어 카페에서 청음회까지 열고나자 박 대표의 인생은 달라졌다.

“(청음회가 끝난 후) 며칠 있다가 두 분이 돈을 낼테니 (스피커를) 만들어 주면 안되겠느냐고 부탁하시더라고요. ‘어, 이거 봐라. 팔리겠네’라는 생각을 하게됐죠. 엔지니어와 상의를 거쳐 디자인과 음질을 보완했어요. 사업자등록을 하고 쿠르베라는 브랜드도 만들고 디자인 특허도 내서 지난해 5월에 정식 출시했습니다.”

쿠르베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쿠르베 엘르’ ‘쿠르베 스노우맨’ ‘쿠르베 주니어’ 등 총 7종의 제품이 출시됐다. 박 대표의 숨겨진 디자인 재능을 깨닫게 해준 공방은 현재 든든한 협력 파트너로서 쿠르베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박 대표는 “처음 한 두달은 혼자 만들었는데 주문이 조금씩 늘어나니까 혼자서는 힘들더라”며 “그래서 공방과 협업을 하게됐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쿠르베의 소리에 적잖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자작나무 합판을 원형으로 자르고 잘린 합판을 엇갈려 붙이면 내부에 불규칙적인 굴곡이 생기는데 음이 불규칙적으로 부딪히면서 자연스럽게 확장되면서 주파수가 왜곡되지 않는다고 박 대표는 전했다.

특히 중역대 음이 자연스럽고 생생해 보컬이나 첼로곡을 들을 때 좋다는 반응이 많다고 했다. 인클로저 (울림통)재료로는 핀란드산 최고급 자작나무를 쓰고 유닛(진동판)은 세계적인 유닛 제작업체인 노르웨이 시어즈(Sears)사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curved(곡선의)’를 의미하는 불어 단어 ‘쿠르베’(Courbé)는 대부분 원과 곡선으로 이뤄진 스피커의 특성이 반영된 이름이다.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인 귀스타브 쿠르베와는 별 상관이 없다. 박 대표는 “‘circle’이나 ’curve‘ 같은 단어를 갖고 라틴어나 불어, 독일어를 찾기 시작했는데 ‘courbé’라는 단어가 나오더라”며 “화가 이름과 발음이 같지만 그것도 나름 괜찮겠다 싶어서 상표등록을 했다”고 밝혔다.

“해직언론인 아닌 스피커 자체로 평가받고 싶었다”

박 대표에게는 또다른 수식어가 붙는다. ‘해직기자’라는 타이틀이 그것이다. 그는 1993년 MBC에 입사해 정치부와 사회부 등을 거친 베테랑 방송기자다. 노조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난 2012년 김재철 전 사장 체제의 MBC에서 일어난 노조 장기파업 당시 해고됐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 몇몇 언론들이 스피커 제작자로 변신한 박 대표를 취재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해직기자가 만든 스피커라는 점에 주목했다. 쿠르베 보다는 박 대표의 특이한 이력에 관심을 가진 셈이다.

“해고된 언론인이 만든 스피커에 관심이 있지 스피커 자체에는 그렇게 큰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스피커 자체로 평가를 받고 싶거든요. 해직언론인 박성제와 명품스피커 쿠르베, 여기서 해직언론인이라는 틀을 빼고 싶었어요. 그런데 안 그렇더라고요. 스피커 품질에 대해 자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폄하되는 느낌이 있어서 처음에는 고생을 좀 했죠.”

‘편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쿠르베의) 가격대가 만만치 않아요. 사실상 아마추어들이 사기는 쉽지 않고 마니아 중에서도 좀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분들이 노릴 수 있는 가격대죠. 그런 분들은 브랜드와 소리도 많이 따집니다. 처음에는 그래서 ‘디자인만 특이하고 그럴 듯 하지 소리가 좋겠어?’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 사진제공: 쿠르베오디오

어려움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20년 가까이 방송기자로 살아온 그에게 사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자는 내 일만 하면 월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런데 이거(사업)는 내가 오너이자 비즈니스 주체고 자영업자이니 매달 매출을 걱정해야 하죠.”

박 대표는 사업을 하면서 세상을 많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의 고단함과 아픔, 설움 같은 것을 많이 알게됐어요. 작년 이맘때, 그러니까 (쿠르베가) 아주 무명일 때 홍보브로셔를 만들어서 레코드 샵도 가보고 했어요. 문전박대도 겪었고 잡상인 취급도 당했죠.”

하지만 전문가들의 블로그나 잡지에 실리면서 쿠르베는 점점 알려지게 됐다. 올해 초에는 단독 전시회도 열었고 지난 4월에는 서울 국제 오디오 쇼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최근 종영된 드라마 ‘밀회’에 등장하면서 쿠르베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 드라마의 선풍적인 인기와 더불어 소품으로 쓰인 쿠르베의 독특한 디자인이 덩달아 주목을 받은 것이다. 박 대표는 드라마 방송 이후 쿠르베에 대한 반응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스피커를) 사러 온 분이 늘어났다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홍보가 많이 됐어요. 최근에는 청담동의 고급 수입오디오 매장과 계약도 했죠. 이미 디스플레이도 돼 있어요. ‘밀회’에 나온 것이 (쿠르베의) 대중적인 인기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대안언론, 기업 오퍼 받았지만 새로운 길 가보고 싶었다”

스피커 제작자로 변신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방송기자의 길을 달려온 박 대표이기에 취재현장이 그립지는 않은지 궁금했다. 아직 복직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장 MBC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노종면 기자나 최승호 PD 같은 다른 해직언론인들처럼 대안언론에서 활동할 생각은 없었는지 물었다. 그는 대안언론 뿐만 아니라 기업체의 오퍼도 받았지만 고사했다고 답했다.

“기업체 홍보(파트)로 가면 안정적인 삶을 다시 살수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안전한 선택이죠. 대안언론 가는 것도 어떻게 보면 안전한 선택입니다. 대안언론이냐 공중파 방송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일 자체는 같죠. 두려워 할 부분이 전혀 없었지만 도전은 아니라고 봤어요. 대안언론에 가는 것도 사회적으로는 보기도 좋고 명분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좀 더 행복하면서도 새로운 길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게 이거(스피커 제작)죠.”

▲ 쿠르베의 울림통(인클로저)을 들어보이고 있는 박성제 대표.

그러나 MBC로 돌아갈 것이냐는 질문에는 주저없이 “당연히 돌아갈 것”이라고 답했다. 서울 남부지법은 올해 1월 박 대표를 비롯한 MBC 노조원 44명이 낸 해고 및 정직 처분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법원은 지난달 박 대표와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 등 6명의 MBC 해직언론인에 대한 ‘근로자 지위 보전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바 있다. 그러나 MBC는 지난 7일 상암동 신사옥에 출근한 이들의 회사진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박 대표는 계속 ‘출근투쟁’에 나섰지만 MBC는 임시출입증을 발급했을 뿐 ‘업무’를 주지 않았다.

인터뷰 전 그가 건넨 명함의 직함은 ‘PSJ디자인 대표’였지만 이메일 아이디는 ‘psjmbc’였다. MBC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처음 만든 스피커를 <뉴스타파>에 기증하기도 했다. “제 분신이 들어가 있으니 저도 대안언론에 참여하는 거죠.” 박 대표가 빙긋이 웃었다.

다만, 박 대표는 MBC로 돌아가기 전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을 궤도 위에 올려놓겠다는 생각이다. “돌아가더라도 이것(쿠르베)은 살려야죠. 제가 없더라도요. 어떻게 보면 이건 제 분신이에요. 하지만 운영은 다른 사람이 할 수도 있죠. 제가 뒤에서 도울 수 있는 거고 퇴직하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는거고...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없더라도 (사업이) 굴러가게끔 만들어놔야죠.”

이어 박 대표는 “제일 중요한 건 마케팅 같다”며 “적절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유통 파트너를 잘 만나 그분들이 판매해주고 나는 제작만 하면 되는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다음이 적절한 홍보 정도인 것 같다. 이것을 내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쿠르베의 이름으로 자신이 만든 스피커를 수출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조금씩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 해외에 수출하는 국산 스피커는 거의 없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특별히 홍보를 하지 않았고 해외 오디오 쇼에도 나가지 않았지만 유럽과 미국의 (오디오) 사이트 몇 군데에 소개가 됐어요. ‘한국에 이런 스피커가 있다. 소리도 좋고 평이 괜찮더라. 가격은 얼마정도’라고 올려놓은 것을 보고 외국 딜러들이 메일을 보내와요. 아직 본격적으로 수출계약이 된 것은 아니에요. 내년쯤에는 해외 오디오 쇼에 나가보든가 해서 수출 오더를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물었다. 박 대표는 “하반기에는 새로운 콘셉트의 디자인을 하나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쿠르베의 후속작이고 원통형 인클로저를 활용하는 것은 갖지만 완전히 다른 콘셉트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피커 제작자로서의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디자인도 좋고 소리도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가격은 합리적인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스피커로 인정받고 싶은 것이 우선이에요. 그게 잘 되면 수출은 자연스럽게 되지 않을까요?” 기자 박성제는 그렇게 점점 ‘스피커 장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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