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여는 마법의 주문 “어려 보이시네요”
지갑 여는 마법의 주문 “어려 보이시네요”
  • 박형재 기자 (news34567@nongaek.com)
  • 승인 2014.07.2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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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올드’라도 포장은 ‘젊음’으로, 다운에이징 마케팅

[더피알=박형재 기자]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뽀글뽀글 아줌마 파마머리에 땡땡이 치마를 입었다. 감출 수 없는 뱃살까지, 좀 나이 들어 보인다. 다른 사람은 찰랑거리는 생머리에 깔끔한 캐주얼 재킷을 입었다. 늘씬한 몸매를 보니 운동도 열심히 하는 모양이다. 자세히 보니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다. 자신을 어떻게 꾸미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나이 들어보이다니. 좀 서글프지 않은가? 

화장품, 패션,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나이보다 어려보이고 싶은 소비자의 심리를 활용한 ‘다운 에이징(down-aging)’ 마케팅이 뜨고 있다.  젊은 감성을 추구하는 30~50대 고객들의 요구에 맞춰 제품에 젊고 세련된 감성을 적용하고 이에 맞는 마케팅, 판매 전략을 구사해 소비자를 끌어모으는 것.

특이한 점은 유통업계가 중년 고객을 잡기 위해 이들의 실제 나이보다 젊은 20·30대를 겨냥한 제품 출시에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패션업체 관계자는 “20대를 타깃으로 제품을 내놓으면 40대도 많이 찾아오는 게 요즘 소비 트렌드”라며 “주요 소비층인 30·40세대를 잡기 위해 일부러 ‘20대에게 인기있는 제품’이라고 홍보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 20대들을 위한 백화점 매장엔 40·50대 손님이 주요 고객이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마리 스토즈는 20대 초반을 공략한 동대문 패션 브랜드이지만 전체 고객 중 40대 비중이 30%에 이른다.  중년 여성들의 패션아이템을 소개하는 홈앤쇼핑의 ‘스타일에비뉴2’에서는 ‘아이지엔 컬러매직 제깅스’가 큰 히트를 쳤다. 이 제품은 당초 20·30대 여성을 겨냥한 스키니진 형태의 옷이었지만 방송이 나간 뒤 40·50대 구매자가 몰리는 바람에 매진됐다.

반면 롯데백화점이 건강보조식품과 의료용품, 패션용품을 모아 2011년 문을 연 ‘실버 기프트 편집숍’은 판매 부진으로 문을 닫았다. 업계 관계자는 “대놓고 나이를 드러내는 ‘실버 매장’을 누가 좋아하겠느냐”며 “다운에이징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시세이도 역시 다운에이징 화장품에 “아름다운 50대가 늘어나면 일본이 변한다”는 나이를 강조한 광고 카피를 사용한 뒤 판매부진을 겪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여은아 계명대학교 패션마케팅학과 교수는 “패션, 뷰티 브랜드들이 제품 타깃을 20, 30대로 두고 광고모델이나 제품을 출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머물고 싶은 나이기 때문”이라며 “실제 주요 소비자의 연령대와는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꽃중년 잡으려면 20대에 인기있다고 홍보하라” 
 

▲ 비비 올리비아 브랜드 화보.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제품을 출시해 중년 여성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다운에이징 마케팅은 트렌드에 민감한 뷰티, 패션업계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애경이 출시한 화장품 브랜드 에이지 투웨니스(AGE 20’s)는 철저히 나이 마케팅으로 기획, 성공한 사례다. 이 브랜드는 이름만 20대를 의미할 뿐 실제 타깃 고객은 30·40대다. 모델도 중년배우 견미리 씨를 기용했다. 덕분에 ‘견미리 화장품, 동안 메이크업의 종결자’로 불리며 론칭 1년6개월여만에 1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애경 홍보팀 김지은 씨는 “2012년 론칭 당시부터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전략적으로 파고든 것이 주효한 것 같다”며 “브랜드 네임은 ‘20대의 피부로 돌아가자는 의미’를 담았고, 타깃 대상은 30·40으로 명확히 했다. 제품은 주 고객층의 최대 관심사인 피부 윤기와 건조함 방지를 신경 썼고, 중년에도 젊음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견미리 씨를 모델로 써 입소문 나는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레시피가 출시한 화장품 브랜드 ‘미스에이지(miss.age)’ 역시 다운에이징 마케팅을 전면에 내세웠다. 브랜드 명칭은 ‘나이를 잊고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40~60대가 주요 고객층이지만 모델로 20대 배우 정은별, 최희수 등을 내세우고 기능성 파운데이션 등 다운에이징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승원 씨를 초대해 소비자들과 뷰티클래스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신지은 미스에이지 홍보 담당은 “뷰티업계에서 동안은 일종의 트렌드다. 화장품에 노화방지, 주름개선 같은 단어는 꼭 들어가야 하는 키워드가 됐다”며 “소비자들은 꾸준한 관리를 통해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동안이 들어가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외면당한다”고 강조했다.

패션 업계에서도 다운에이징 흐름에 맞춰 연령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나이는 50대지만 마음은 30대 중반인 ‘젊은 중년’들이 늘면서 영캐주얼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 40·50대가 영캐주얼을 많이 찾으면서 기존 20·30대를 주 타깃으로 하던 일부 브랜드들도 두 세대가 함께 소화할 수 있는 디자인과 패턴의 제품을 선보이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나이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몸매가 옷을 입는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영 캐주얼, SPA브랜드 등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의류 매장에는 딸과 함께 옷을 사러 온 엄마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예전에는 아이에게 옷을 사주려고 매장에 들렀던 이들이 최근에는 본인 옷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을 찾는 것이다.

형지의 크로커다일레이디는 이 같은 다운에이징 트렌드에 발맞춰 젊음과 실용성을 강조한 캐주얼 룩을 선보여 인기를 끌고 있다. 20·30대 상품처럼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스타일로 차별화를 꾀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나이든 이미지를 벗어던지려는 고급·올드브랜드의 다운에이징 전략도 눈길을 끈다.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며 중장년층을 주 고객으로 삼던 명품 화장품업계는 최근 20대 젊은 층의 마음을 얻기 위한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중저가 화장품의 파상공세를 막는 한편 잠재고객을 미리 선점하고, 업체 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브랜드 이미지를 젊게 만들려는 움직임이다.
 

▲ 에이지 투웨니스 모델 견미리 씨와 sk-ii 모델 이연희 씨. 에이지 투웨니스는 늙지 않는 중견배우를 활용해 ‘동안 효과’를, sk-ii는 참신한 신인 배우를 통해 젊은 브랜드 이미지를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스킨케어 브랜드 SK-II는 일찌감치 주력 제품에 20대 모델들을 잇달아 발탁하며 젊고 신선한 이미지를 끌어오고 있다. SK-II는 2004년부터 배우 김희애, 2008년에는 배우 임수정을 모델로 삼아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하지만 2011년에는 ‘피테라 에센스’ 모델로 김수현·서지혜·이종석 등 떠오르는 스타 5인을 이례적으로 발탁했다. 이후 이연희, 이수인 등 20대 배우를 모델로 기용해 젊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20대 고객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올드’한 브랜드 이미지…다운에이징으로 ‘젊게’

에스티로더도 2012년 주력제품인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광고 모델로 20대 신인모델 송유정을 발탁해 화제를 모았다. 주름을 관리해주는 안티에이징 세럼에 갓 스무 살을 넘긴 모델을 발탁한 것은 파격적이란 평가다. 최근에는 신제품 ‘퓨어 칼라 엔비 샤인 립스틱’의 모델로 카라의 구하라를 발탁하며 젊은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

남영비비안은 지난 3월 란제리 브랜드 ‘비비안’의 로고를 17년 만에 교체하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새 로고는 무채색인 검은색과 흰색을 대비시켜 주목도를 높였다. 달과 여신 이미지를 넣었던 옛 로고와 달리 간결한 느낌을 강조해 자신감 넘치는 현대적 여성상을 표현했다.

세정의 여성복 브랜드 ‘올리비아 로렌’은 지난해 프리미엄 제품군인 ‘비비 올리비아’를 숍인숍(shop in shop) 형식으로 론칭했다. 주요 고객은 중년여성이지만 디자인, 핏 등은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브랜드 나이를 낮추고 기존 고객인 3040세대는 물론 함께 방문하는 딸들도 잠재고객으로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세정 홍보팀 관계자는 “브랜드는 고객과 같이 늙어간다. 올리비아 로렌은 내년이 론칭 10년째로 브랜드 이미지도 자연히 노쇠할 수밖에 없는데, 다운에이징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 인식을 개선하고 있다”며 “이미 확보된 3040 단골 고객들이 따님과 방문해 함께 쇼핑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젊음은 능력의 상징, 다운에이징 열풍 계속”

다운에이징 트렌드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다운(안티)에이징 시장은 가장 최근 집계된 2011년 기준으로 약 11조9000억원에 달한다.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민간 소비는 얼어붙었지만 다운에이징 시장만큼은 2007년 이후 연평균 10.1%의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고령화 시대를 맞아 젊은 소비 성향을 가진 고연령대 소비층이 늘면서 ‘다운에이징’ 시장도 더 확대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50대 인구의 비중은 13.7%를 넘어섰고, 가구주 연령이 50대인 가구의 소비지출 비중은 국내 전체 소비의 22.5%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최고경영자(CEO) 303명 중 84.5%가 ‘향후 다운에이징 트렌드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응답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상당수 식품회사들은 먹으면 피부 노화 예방을 돕는 ‘뷰티 푸드’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다운에이징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한국 여성이 안티에이징 화장품을 처음 쓰는 나이는 평균 31.76세로 조사됐는데 이 중 53%가 “자신의 피부노화 관리 시점이 늦었다”고 후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 신세계 미래정책연구소와 롯데백화점에서 내놓은 2014년 유통업계 트렌드와 전망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읽힌다. 이들은 올해 유통업계에서 동안 열풍이 계속되고 나이에 대한 경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백화점에서는 영캐주얼을 구매하는 40대 이상 고객이 급증하고 있으며 젊은층 중심의 온라인업계는 중장년층이 새로운 소비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다운에이징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여은아 교수는 “젊음이 아름다움과 건강을 대변하며 사회적 능력의 상징이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젊어보이고자 하는 욕구와 이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가 개선되면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성형, 화장품, 피부관리, 의복 소비패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여 교수는 또 “소셜미디어를 통한 연령별 정보교환 경계가 무너지면서 수평적 사고가 확산된 것도 젊은 라이프스타일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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