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는 가구가 아닙니다. 생활입니다”
“가구는 가구가 아닙니다. 생활입니다”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4.07.2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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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라이브러리] ‘아이네클라이네’ 이상록·신하루 디자이너

소통라이브러리는 우리 사회의 소통문화를 새롭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자유롭게 협력하는 코너로, 이종혁 광운대 교수와 함께 진행합니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소통문화를 창출하고 이끌어가는 숨겨진 인물들이 인터뷰의 주인공입니다.

[더피알=강미혜 기자] 90년대 중반 등장한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는 광고 카피는 침대의 통념을 깨뜨리며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4년, ‘가구는 가구가 아닙니다. 생활입니다’는 말이 어울릴 법한 작은 브랜드가 주목 받고 있다. 주문가구를 제작하는 ‘아이네클라이네’다. 사용자의 손길이 닿을수록 생활의 이야기가 묻어나는 가구를 지향하고 있다. 서울 홍은동에 위치한 작은 공방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네클라이네의 이상록·신하루 디자이너를 만났다. 

▲ 아이네클라이네 공방 앞에 있는 신하루(왼쪽), 이상록 디자이너.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든 나무 미닫이문을 열어젖히니 오묘한 냄새가 먼저 코끝에 다가선다. 가구에 바르는 천연오일 냄새다. 나무를 밀고 자르는 살벌한(?) 작업 도구들이 눈에 띄는 가운데 나무 특유의 따뜻함이 공방을 채운다. 이상록씨가 34년간 살아온 집 아래 주차장을 고쳐 지난 2009년 꾸려진 공간이다.

작은 브랜드 아이네클라이네는 이름부터 작다. 독일어인 아이네클라이네(eine kleine)는 ‘a little(작은)’이란 뜻이다. 일본 유학 시절 작지만 나름의 아이덴티티를 지켜나가는 가구 브랜드들에 영감을 얻은 이상록씨가 좋아하는 일본 소설의 제목에서 이름을 따서 지었다. 이후 1년쯤 지나 목공에 꽂혀 다니던 직장을 접은 신하루씨가 합류했고, 두 젊은 목수에 의해 5년간 작고 천천히 움직이지만 단단하고 깊이 있는 감성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아이네클라이네는 어떤 가구로 표현될 수 있을까요?
이상록 누군가의 공간에 스며들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배경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쌓여 추억이 되는 그런 가구. 디자인 콘셉트랄까 공식 같은 것도 없어요. 굳이 얘기하자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길들여질 수 있는 소재, 질리지 않는 스타일 정도? 나머지 디테일한 부분은 디자인을 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직관적·감각적인 면이 많이 반영됩니다. 가령 책상다리를 좀 더 얇고 기울어지게 만들어 공간에 긴장감을 주면 좋겠다는 식의 느낌들을 살려내는 거죠.
신하루 혹자는 아이네클라이네에서 북유럽 느낌이 난다고, 다른 한편에선 일본 스타일 같다고도 하는데요. 저희는 그냥 아이네클라이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고정된 틀을 염두에 두고 만들진 않으니까요. 물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해석은 각자의 몫이지만…. 여행으로 비유하자면 아이네클라이네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차를 타고 비행기로 이동하는 여행에 비해 훨씬 느리고 불편할 수 있지만 천천히 풍광을 즐기는 그만의 매력이 또 있잖아요.(웃음)

▲ 아이네클라이네 가구. (사진제공 : 아이네클라이네)

당연히 수작업이겠네요.

이상록 네. 수공예라 기성가구에 비해 가격이 비싸긴 합니다만,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수정이 쉬워요. 주문자(고객)의 작은 요구도 빨리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요. 품이 많이 드는 대신 생산 효율성에 구애받지 않고 멋진 가구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큽니다. 다만 수작업이 아이네클라이네 자체를 상징한다고는 볼 수 없어요. 가구를 만드는 방법의 차이인 거죠.

제작공정은 주로 어떻게 이뤄지나요?
이상록 100% 주문 제작입니다. 재고가 없어요. 매뉴얼화된 수치도 없고요. 주문이 들어오면 고객이 원하는 부분을 반영해 디자인을 제안하고, 답변에 따라 수정·보완을 거쳐 다시 제안합니다. 실제 만드는 과정 못지않게 사전 커뮤니케이션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요. 샘플이 완성되면 또 피드백을 받고요. 물론 고객 의견이라고 해서 100% 다 반영되진 않아요. 가구 제작자로서의 경험과 판단에 따른 설득 작업을 거칩니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고객 요구와 제작자의 감각을 조율해 나가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보통 3주에서 6주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저희가 가구를 제작한다고 해서 결코 저희만의 생각으로 이뤄지진 않아요.

A에서부터 Z까지 모든 일을 두 사람이 하기엔 일손이 부족할 것 같은데.
이상록 할 수 있을 만큼만 해서 괜찮아요. 종일 바쁠 때도 있지만 저희 호흡을 갖고 조절하면서 하니까요.
신하루 상록씨는 생활패턴 자체가 워낙 규칙적이에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 일찍부터 공방에 내려와요. 그리고 열심히 작업하고 해가 지면 집에 가는. 전형적인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할까요?(웃음)

▲ 작업 중인 이상록 디자이너.
손으로 하는 작업들이 최신 트렌드를 쫓아 하루가 멀다하고 빠르게 바뀌는 지금 시대와는 분명 다른 행보인데요. 디자이너의 성향 자체가 여유과(科)라 그런 건지, 아니면 치열한 가구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차별화 전략인 것인지.
이상록 개인적 성향도 그렇지만(웃음) 현실적 상황도 고려한 선택이었어요. 욕심껏 해보자니 가격경쟁에서 밀리고, 공장제작을 하자니 퀄리티 보장이 안됐거든요. 이래저래 난감하던 차에 본질로 돌아가 ‘좋은 가구를 만들고 싶다’에서부터 다시 출발했어요. 우리만의 특징을 살려 고객을 만족시킬 방법이 어떤 것일까 고민했죠. 작은 규모에서 잘 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다보니 주문제작을 생각하게 됐고, 주문제작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지금까지 기술과 디테일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아이네클라이네는 이런 스타일이다 하고 콕 집어서 얘길 안하시니 듣는 입장에서 어쩐지 추상적인 느낌이에요.
이상록
생활공간에 딱 맞게, 사용자가 애착을 갖는 가구를 만들자는 것 외에 특정 짓기가 참 애매해요. 그래서 눈으로 보여줄 만한 선례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에 지난해 한 매거진과 손잡고 ‘작업대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작업대는 심플한 형태지만 온전히 작업(일)을 하기 위한 것인 만큼 사람에 따라 요구되는 지점이 명확히 달라요. 스타일리스트, 캘리그래퍼, 요리전문가 등 다양한 업에 종사하는 분들을 위해 같은 작업대지만 결코 같지 않게 제작했습니다. 아이네클라이네는 그런 차이를 만드는 회사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테이블 하나라도 아이네클라이네가 만든 것이라면 사용자를 위한 배려, 디자이너의 생각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좋은 선입견’을 가졌으면 해요.

▲ 신하루 디자이너.
고객들에 좋은 선입견을 갖도록 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5년간의 여정, 돌이켜보니 어떤 것 같으세요?

신하루 쉬운 일이 없지마는 사실 이 바닥이 굉장히 힘들어요. 그런데도 5년을 버틸 수 있었다는 점에 참 감사하면서도 스스로 자랑스럽습니다. 요즘은 롤모델이라며 저희를 찾아오는 젊은 친구들도 부쩍 많아졌어요. 나름 성심성의껏 저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조언이랄까 컨설팅이랄까 뭐 그런 것도 하고 있고요.(웃음)
이상록 5년 전엔 나름 ‘젊은 목수’라고 불렸는데… 지금은 ‘젊은’은 빼야겠죠?(웃음) 그래도 요즘 들어 저희가 하는 일이 점점 더 의미 있게 다가와요. 가구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고 나무먼지 마시는 시간 자체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지금도 주문량이 적을 땐 대표로서 회사 경영을 걱정하지만(웃음) 한 번도 가구를 돈과 바꾼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규모를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회사가 커지면 시간에 쫓겨 좋은 가구를 만들고 싶다는 본질을 놓칠 수 있으니까. 계속해서 이 작은 공방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돈만 허락된다면 좋겠어요. 그거면 만족해요.

앞으로의 비전은.
이상록 자꾸 바뀌긴 하지만,(웃음) 우선은 책임감 있게 결과물(가구)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앞으로는 사회적으로도 좀 더 소통하려고 해요. 가구 만드는 일이 100이라면 그 중 5에서 10 정도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고객과 소통하지만 가구를 통해 고객이 아닌 누군가의 삶에도 관여할 수 있다면 이 일을 하는 즐거움이 훨씬 커질 것 같아요.
신하루 여기 와서 상록씨에게 많이 배우면서 한편으론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특유의 감성과 아이덴티티가 있는 가구 브랜드가 많아요. 하지만 국내 가구시장은 아직까지 작은 브랜드가 뿌리내리기엔 문화가 척박해요. 이런 상황에서 아이네클라이네가 긍정적인 스터디케이스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목표 달성을 위한 책임감이 막중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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