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부재의 검은 고통, ‘성인 왕따’
소통 부재의 검은 고통, ‘성인 왕따’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08.0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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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만연한 집단 따돌림…‘직따’ 인식 개선·방지 장치 미흡

[더피알=문용필 기자] 최근 군(軍) 내부에서 발생한 일련의 안타까운 사건들이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 6월 강원도 동부전선 GOP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과 28사단에서 발생한 윤 일병 사망 사건이 그것이다.

5명의 젊은 병사가 아까운 목숨을 잃은 GOP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은 전역을 불과 3개월 여 밖에 앞두지 않은 ‘말년 병장’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움을 안겨줬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범인은 순찰일지에 자신을 놀리는 그림이 늘어난 것을 보고 학창시절, 그리고 입대 후 따돌림과 놀림을 당했던 기억이 떠올라 그런 참극을 저지르고 말았다.

동료 병사들을 살해하거나 중상을 입힌 것은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마땅한 행동이었지만, 이 사건은 이른바 조직 내 ‘왕따’의 심각성을 재차 일깨우는 뼈아픈 계기가 됐다.

지난 4월 발생했지만 최근에서야 그 진상이 드러난 ‘윤 일병 사망사건’은 군대 내 집단폭행으로 인해 발생한 참극이었다. 뿐만 아니라 윤 일병이 사망하기 전에는 가래침을 핥아먹게 하거나 치약을 먹이는 등 집단적인 가혹행위와 폭행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집단 따돌림 현상은 비단 학교나 군대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 내 따돌림도 꽤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학교 따돌림이나 군대 따돌림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사안이지만 사내 따돌림의 경우,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개선을 위한 인식 확산이 절실해 보인다.

이와 관련, 정신과 전문의인 안주연 메디웰병원장은 “학교는 하다못해 휴학이나 전학을 할 수 있지만, 직장은 생계와 관계 돼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 것 같다”며 “(피해자가) 가장이거나 1인 가구인 경우에는 (회사를) 그만두기 더욱 어려울 수 있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절망감이 더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직장 내 따돌림, 즉 직따는 빈번하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직장인 9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사내 왕따 여부를 묻는 질문에 29.1%가 ‘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사람인은 2012년에도 2975명을 대상으로 사내 따돌림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는데 응답자의 45%가 현재 재직 중인 직장에 왕따 문제가 있다고 했다. 직장 내 왕따 문제에 대해 61.3%는 ‘우려하거나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바라봤다. 직장인들 스스로도 사내 따돌림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직장인 30%, “왕따 경험 있다”

그러나 정부와 각 지방교육청, 일선 학교에 이르기까지 왕따 방지를 위한 대책마련이 비교적 광범위하게 수립돼 있는 학교 따돌림과는 달리, 사내 따돌림 문제는 별다른 제도나 방지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사람인의 지난해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내 따돌림이 있는 회사 중 왕따를 막기 위한 규제 및 예방 프로그램, 담당기관 등을 운영하는 곳은 6.5%에 불과했다.

사내 왕따 현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서유정 박사(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는 “(피해자는) 따돌림을 다 받아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시간이 지난 후 다른 (따돌림) 타깃이 들어오게 되면 피해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 외에는 딱히 출구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따돌림에 대한 현황조사도 잘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문제 해결의 한계를 지적했다.

사내 왕따 유형 (복수응답)  *출처:2013 사람인 설문
눈치가 없고 답답한 성격을 가진 사람 34.4%

말로만 일을 하는 사람

30.8%
업무능력이 너무 떨어지는 사람 30.1%
조직에 어울리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 24.6%
조직(팀)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 22.1%

물론, 사내 따돌림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별로 사원들의 고민해결을 위한 상담부서나 근로복지공단 등에서 마련한 근로자지원프로그램(EAP)등이 있다.

그러나 전적으로 사내 따돌림 문제만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마저도 일부 기업들에 국한돼 있어 따돌림에 시달리는 상당수의 근로자들은 그저 참아 넘기거나 어쩔 수 없이 퇴사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여기에는 성인, 혹은 사회인인 만큼 자신의 문제는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풍토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조성은 박사는 “최근 기업들이 문제가 있는 직원들이 스스로의 태도와 행동을 변하게 하는 코칭 프로그램을 많이 도입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그런데 이는 왕따 문제를 ‘사람의 문제’로만 보는 것”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사내 따돌림은 학교 따돌림과 기본적인 맥락은 같지만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서유정 박사는 “아무래도 성인들이기 때문에 (학교 따돌림에 비해) 신체적인 폭력이나 행위들은 적은 편이지만, 누가 가해자인지 딱 짚어내기 힘든 행동으로 따돌린다”며 “학교 왕따는 선생님들이 가담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사내 따돌림은 학교의 선생님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 관리직들, (더 나아가) 조직 전체가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심각성을 언급했다.

조직 전체가 가해자 될 수 있어

또한 서 박사는 “피해자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한 의도가 있는 한 모든 행동이 다 따돌림이 될 수 있다”며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다른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피해자가 괴롭힘을 당한다고 느끼는 모든 종류의 부정적인 행동들이 다 여기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노무법인 참터 대구지사의 정유진 노무사는 사내 따돌림의 유형을 크게 3가지로 정리했다. 새롭게 회사에 들어온 직원에 대해 기존 직원들이 텃세를 부르는 ‘텃세형’과 강자의 말에 복종하며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권력형’, 그리고 직장 내 약자를 짓밟는 ‘약자형’이 그것이다.

서유정 박사가 지난해 신재한 교육부 연구사와 함께 발표한 보고서 ‘학교 따돌림과 직장 따돌림의 연관성 분석과 따돌림 방지 방안 연구’에서는 사내 따돌림에 대한 구체적인 목격담을 찾아볼 수 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한 피해자는 결혼식을 앞두고 근무변경을 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식사시간에 피해자 혼자 일하도록 남겨두고 동료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하지 않은 이야기를 마치 피해자가 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다니기도 했다.

해외유학을 마치고 온 또 다른 피해자의 경우, 동료들이 그를 제외하고 식사를 하러가는가 하면 대화에 끼워주지도 않고 업무를 제때 넘겨주지 않아 상사의 질책을 자주 듣도록 했다. 결국 이 피해자는 괴롭힘을 버티지 못하고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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