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파파” 프란치스코 교황의 4박5일이 남긴 것
“비바파파” 프란치스코 교황의 4박5일이 남긴 것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08.1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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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환기…낮은 리더십으로 국민 ‘힐링’
▲ 4박 5일간의 방한일정을 마치고 18일 출국한 프란치스코 교황 ⓒ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더피알=문용필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 5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18일 한국을 떠났다. 팔십에 가까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방한 기간 내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 낸 교황은 소탈한 면모와 약자를 배려하는 ‘낮은 리더십’을 선보이며 왜 자신이 ‘거리의 교황’이라고 불리는지 증명했다.

이같은 모습으로 인해 교황은 카톨릭 신자는 물론 비(非)신자들에게도 신드롬에 가까운 찬사를 이끌어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당분간 우리 사회에 작지 않은 잔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각은 이 때문이다.

우선 국내 카톨릭계는 교황 방한으로 인해 큰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지난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당시 103인의 순교자가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데 이어 124인이 시복(諡福)되면서 한국 카톨릭의 위상도 한층 더 올라가게 됐다.

시복미사를 교황이 직접 주례하고 로마 교황청이 아닌 한국에서 진행된 것은 이례적. 무엇보다 교황이 보여준 소탈한 면모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카톨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한층 더 올라갔다. 실제로 교황 방한 중 SNS 상에는 카톨릭으로의 개종, 혹은 입교를 고민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상당수였다.

세월호 유족 향해“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교황의 방한은 여야의 특별법 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차츰 잊혀져 가던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들과 해외 관심을 환기시키는 역할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번 방한 내내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입국 당일인  지난 14일 서울공항에서 맞이한 세월호 유족에게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데 이어, 다음날 대전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앞서 유족들과 생존자들을 면담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16일 광화문에서 열린 순교자 124위 시복식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은 유족들을 발견하고는 차에서 내려 이들의 손을 잡았다.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 중이던 김영오 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한편, 김 씨가 건넨 편지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며 2000리 도보순례에 나섰던 이호진 씨에게는 17일 세례를 내렸다. 교황이 직접 한국인에게 세례를 내린 것은 지난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이후 25년만의 일이다.

미처 만나지 못한 실종자 10인의 가족에게는 친필사인이 담긴 한글 편지와 묵주를 선물했다. 이 편지에서 교황은 실종자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이들이 하루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단순한 종교 지도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 교황의 이같은 행보는 세월호 특별법 관련 난항을 거듭하는 여야 정치권 및 정부에 적잖은 압박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 충북 음성군 꽃동네를 방문해 장애인 오미현 씨에게 입맞춤으로 축복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프란치스코 교황 특유의 ‘낮은 리더십’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교황은 바쁜 일정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자신을 환영하는 시민들을 따뜻하게 맞았다. 아이들과 장애인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축복을 내려주는 모습에서는 자상한 할아버지의 면모가 엿보였으며, 세월호 유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적극 배려하는 행보도 보였다. 설교하기보다는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과정 속에서 보는 이를 울컥울컥하게 만드는 장면들도 많았다.

2014년 대한민국이 교황에 빠져든 이유는…

교황은 특급호텔을 마다하고 교황청 대사관 내 숙소에서 머무르고 의전용 차량으로 익숙한 대형세단 방탄차 대신 준중형 승용차를 타면서 특유의 청빈함을 실천하기도 했다. 각국 국가원수가 방한할 때 으레 마련되는 정치인, 재계 인사들과의 만찬자리도 없었다.

권위적인 리더십, 그리고 ‘전시성 봉사’에 익숙한 우리 국민들에게는 생경하면서도 한편에선 절실히 바라오던 모습들이었다. 이를 두고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교황의 리더십을 본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언론들은 연일 ‘프란치스코 따라잡기’에 나섰고, 모처럼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기분좋은 보도들이 쏟아졌다. 방한 기간 내내 교황의 인기는 여느 톱스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하늘을 찔렀다. 그가 가는 곳마다 ‘비바 파파(Viva Papa, 교황 만세)’를 연호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교황의 행보는 세월호 참사와 잇따른 군 사망사건, 정치권의 계속되는 정쟁 등 ‘우울하고 답답한 뉴스에 지쳐있던 국민들에게 잔잔한 마음의 감동을 안겼다.

팔순에 가까운 ’할아버지 성직자‘가 머물다 간 4박5일은 우리 국민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선사한 거대한 ‘힐링캠프’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이는 이번 방한에서 무엇보다도 교황이 남긴 가장 큰 의미이자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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