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 위를 디자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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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08.2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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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쿠킹스튜디오 ‘인리원’ 최석원 씨

[더피알=문용필 기자] 아직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지 않던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스파게티를 먹어보고는 그 강렬한 맛을 잊지 못한 소년이 있었다.

이후 전도유망한 미술학도를 거쳐 잘나가는 디자인 회사 대표로서의 인생을 살아오던 이 소년은 불혹을 넘긴 나이에 이탈리아 요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변신했다. 요리연구가이자 쿠킹스튜디오 인리원의 강사인 최석원 씨가 그 주인공이다

‘마셰코 5인방’의 의기투합

오디션, 혹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대세가 돼 버린 시대,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용감하게 도전장을 던진 이들 중 상당수는 프로그램 출연 이후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해 케이블 채널 올리브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마스터셰프코리아2>(이하 마셰코2)에 출연한 최석원 강사를 그 안에 포함시켜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당시 상당한 실력을 가진 무림의요리고수들을 제치고 톱4까지 올라 요리연구가라는 새로운 호칭을 얻게 됐을 뿐만 아니라, 마셰코2를 통해 인연을 맺은 이들과 함께 쿠킹스튜디오까지 열게 됐으니 말이다.

가랑비가 촉촉이 내리던 어느 여름날 서울 남현동 소재 인리원에서 만난 최 강사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마셰코2에서 미션을받아들고 긴장을 늦추지 못하거나 아일랜드(조리대)에서 전쟁을 치르듯 요리에 몰두하던 모습, 심사위원들의 혹독한 평가에 눈물 흘리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근황을 묻자 최 강사는 인리원 이야기부터 꺼냈다. “처음에 (인리원을) 설립했을 때는 불안감이많았어요. 3~4개월 지나니 기우였다는 것을 느끼게 됐죠. 이렇게 갑자기 (수강생들이) 많이 오실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고마운 일이죠.”

최 강사가 몸담고 있는 인리원은 그를 포함한 5인의 마셰코2 도전자들이 모여 만든 쿠킹스튜디오 겸 요리학원. 인리 한식 세계화 재단의 후원을 받아 지난 2월 설립됐다. 우승을 거머쥔 최강록 씨를 비롯해 윤리 씨, 김경민 씨, 김영준 씨 등 각기 다른 강점을 가진 강사들이 포진해 있다. 방송 오디션 혹은 서바이벌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의기투합해 뭔가를 하는 것은 드문 케이스다.

“워낙 (친)형이나 동생같이 잘 맞았어요. 제일 큰형인 윤리 형의 역할이 가장 컸죠. (윤리 형과) 막내(김영준)의 나이차가 20년 정도 인데 요즘 그만한 (젊은) 친구들은 자기주장이 세잖아요. 더구나 어느 정도 알려졌다면 더 그런데 영준이는 안 그래요. 윤리 형이 잘 이끌어주고 영준이가 잘 따라오니 중간에 있는 사람들도 같이 (가게 되죠). 더구나 (최)강록이는 1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하겠다고 했고, 저나 (김)경민이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꽤나 인기 있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이들이 레스토랑을 열었어도 제법 화제를 모았을 터. 그런데 왜 이들은 ‘쿠킹 스튜디오’를 열게 된 것일까. “레스토랑을 하면 어떻게 되든 평가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차라리 우리끼리 요리를 계속 연구하고 우리의 커뮤니티를 만들자고 해서 시작한 게 쿠킹스튜디오에요.”

인리원은 자격증 혹은 각종 시험을 목표로 하는 여타의 요리학원과는 달리 ‘취미로 하는 요리’를 지향한다. 순수하게 취미로 요리를 즐기려는 수강생들을 위한 공간인 것이다. 또한 강사별로 따로 클래스를 두지도 않는다. 인리원에 등록한 수강생들은 ‘마셰코 5인방’으로부터 골고루 요리를 배울 수 있다. 최 강사는 이탈리안 요리를 가르치고 있다.

디자이너에서 요리연구가로…달라진 인생궤도

원래 최 강사는 디자인 회사 대표라는 직함을 갖고 있었다. 요리연구가가 된 지금도 그 직함은 여전히 유효하다. 1주일을 요일 단위로 쪼개 요리강사와 회사 일을 병행하고 있는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큰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아마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에게 ‘그림은 최석원’이라고 하면 모두 인정할 거예요.”

대학시절 연극배우를 꿈꿨던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학창시절 오로지 그림에만 매달렸던 최 강사는 미대 졸업 후 10여년 간 미술학원에서 일했다. “나름 굉장히 유명한 강사였죠. 나중에 내 회사를 차리자고 해서 처음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차렸어요. 여기서 시작해서 인테리어 디자인에 필요한 소품을 만들기도 했죠. 지금도 그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탄탄대로를 걷던 사업은 이후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런 그에게 ‘마셰코 2’ 출전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 마셰코2 출연 당시 요리에 몰두하는 최석원 강사(위). 그가 마셰코2에서 처음 선보였던 요리인 새우 비스크 뇨끼 파스타 (사진 :올리브tv 방송화면 캡쳐)

첫 출연 당시 출전 동기를 묻는 강레오 셰프의 질문에 최 강사는 “디자인 회사를 하고 있는데 생각같이 잘 안됐다”며 “저희 아이는 저를 영웅같이 보는데 저는 점점 너무 약하고 아이 눈을 쳐다볼 수 있는 면목이 별로 없다”고 대답했다. 이어 “아빠는 약한 사람이 아니고 이렇게 도전하겠다는 것을 아이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눈물이 가득 고인 그에게 강 셰프는 마스터셰프의 앞치마를 건넸다. 첫 관문을 가뿐히 통과할 실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다른 미적 감각의 소유자인 그는 요리실력 뿐만 아니라 ‘플레이팅(음식담기)’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며 톱4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결승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는 “‘그때 이렇게 했으면 결승까지 갔을텐데’라는 생각을 지금도 계속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당시 톱4에게 주어진 미션은 ‘소중한 사람에게 감동을 전하는 순간을 상상해 영화와 어울리는 요리를 만드는 것’. 최 강사는 엔다이브(어린 배추를 닮은 서양채소)에 올린 4가지 맛의 소면을 내놓았다. 그러나 시간배분에 실패한 그는 장기인 플레이팅 솜씨를 제대로 하지 못한 ‘미완성 요리’를 제출해야 했다.

“그날 음식을 못 담을 뻔했어요. 플레이트를 다섯 개 정도 깔아놓고 나름 멋있게 하려고 했는데 (심사위원들이) 10초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뭐에 홀렸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는 플레이팅이고 뭐고 없었죠. 그때가 너무 후회돼요. 생각해보면 제가 자만했던 것 같아요.”

‘영화 속 식재료’를 재해석 하는 두 번째 미션에서 최 강사는 감자전 고추장찌개를 만들어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첫 미션의 실패를 만회하는 데는 실패했다. 결국 그는 거기서 도전을 중단해야 했다.

결승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최 강사의 인생궤적은 ‘마셰코2’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방송에 나가기 전에는 치열하게 싸우면서 오로지 회사만 이끌었어요. 그런데 (마셰코2) 출연 후에는 요리학원에서 정식 강사를 하고 있고 외부강의도 많이 나가죠. 만약 방송 출연 전에 제가 요리학원 강사로 취직하려고 했다면 (어떻게든) 할 수야 있었겠죠. 그런데 저를 인정해주지는 않았을 거예요. 반면 지금은 (마셰코2 출연으로) 제가 많이 혜택을 받죠. 똑같은 요리를 해도 예전보다 더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이어 최 강사는 “이전에는 처음 사람을 만나면 명함을 교환하고 인사를 하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지만 저를 많이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며 “하다못해 연락이 끊어진 지인들에게도 연락이 온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명(明)’이 있으면 ‘암(暗)’도 있는 법이다. “많이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도 있어요. 외롭기도 하고요. 마셰코2를 보신 분들은 저를 알아봐 주시는데 그럼 행복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일례로 (방송에) 나가기 전에는 가족들에게 요리를 많이 해줬는데 지금은 전혀 해주지 못해요. 할 시간도 없고요.”

“‘이탈리아 요리 하는 최석원’ 알리고 싶다”

스스로 ‘그림’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왔다는 최 강사지만 요리는 어린 시절부터 또다른 관심사였다고 한다. 그가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매 주말마다 꼭 요리를 해주던 아버지는 ‘소년 최석원’에게 잊지 못할 맛의 경험을 선사해줬다.

“아버지가 ‘자장면’이라며 사주셔서 스파게티를 처음 먹어봤는데 제게는 정말 큰 충격이었어요. 굉장히 어렸을 때로 기억해요. 제(요리)가 이탈리안 베이스를 못 버리는 이유가 아마도 처음 먹었던 스파게티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최 강사는 학창시절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경영하겠다는 꿈을 꾸며 ‘독학’에 나선다. 인터넷도 없고 이탈리아 요리를 접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서점에서 (요리)책을 보거나 AFKN같은 데서 하는 해외 요리프로그램을 봤어요. 우리나라 요리프로그램은 투명한 볼에 여러 가지 조미료를 동일하게 담잖아요. 그런데 해외 요리 프로그램은 (즉석에서) 뭘 따서 넣거나 뭘 빻기도 하고 제품이 그대로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그게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죠.”

이쯤 되자 최 강사가 처음 만든 요리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아버지가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이셨는데 김칫국에 돼지기름이 떠 있었죠. 그런데 그 맛을 잊지 못해요. 그걸 처음으로 만들어봤죠. 아마 초등학교 때였을 거예요. 저희 집안은 주방에 남자가 들어가는 게 당연했어요.(웃음)”

어린 시절 막연하게 가졌던 ‘레스토랑 오너’의 꿈은 어른이 돼서 이루게 됐다. 한정식당과 캐주얼 레스토랑 등을 경영하게 된 것. 그러나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최석원 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을 만나볼 수 있을까? ‘오너셰프’로서의 꿈을 묻자 그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쿠킹 스튜디오에 들어오시는 분들에게 요리를 대접하는 것도 굉장히 떨려요. 수업 때 만든 요리를 한번 드셔보시라고 말하고 나서 그 분들을 잘 못 보겠더라고요. 항상 돌아서 있어요. 보기보다 소심한 편이죠.”

하지만 그는 올해 인리원 멤버들과 함께 레스토랑을 오픈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어찌보면 소박하지만 커다란 꿈도 갖고 있다. 요리연구가 최석원은 이미 또 다른 ‘마스터 셰프’를 목표로 하는 인생길에 서 있다.

“‘마셰코 최석원’이 아니라 ‘이탈리아 요리를 하는 최석원’을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인리원도 좀 더 많이 알려서 우리나라에서 취미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독보적인 학원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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