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군락지, 금융저널리즘 탐방기
황금 군락지, 금융저널리즘 탐방기
  • 김성해 대구대 교수 (admin@the-pr.co.kr)
  • 승인 2014.08.25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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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해의 뉴스 생태계 따라잡기] 경제저널리즘의 나홀로 성장, 배경은?

[더피알=김성해] 국내에 대나무가 처음 들어와 재배된 시기는 고려 초기로 알려진다. 대나무는 아열대성 식물로 늘 푸르고 곧게 자라는 특징이 있어 올곧은 선비정신을 상징한다. 철쭉이나 소나무, 억새처럼 주로 무리를 이루는데 그 중에서도 전라도 담양의 죽녹원(竹綠苑)은 단연 으뜸이다. 2003년 조성된 이 대나무 군락지의 규모는 약 31만m²로 산책로 길이는 2.4km에 달한다. 웬만한 폭풍우에도 크게 휘둘리지 않고 사계절 아무 때나 변함이 없다.

불경기를 모를 뿐더러 위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한 군락지라는 점에서 금융저널리즘 역시 이와 닮았다. 금융은 좁게 봤을 때 경제 영역 중에서도 돈을 다루는 과학에 속한다. 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해 화폐를 공급하고 이자율을 결정하거나, 기업이 채권이나 주식을 발행해 자금 관리를 하는 것이 금융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봤을 때 금융은 정부의 경제정책, 기업의 비즈니스, 개인의 투자 및 소비활동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경제저널리즘 혹은 비즈니스저널리즘으로도 불린다. 실제, 이 군락을 대표하는 주요 언론사의 명칭은 파이낸셜타임즈(Financial Times), 야후 파이낸스(Yahoo Finance), 포춘(Fortune), 머니(Money),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 이코노미스트(Economist) 등으로 다양하다.

금융저널리즘은 뉴스생태계가 처음 조성될 때부터 노른자위에 터를 잡았다. 세계 3대 경제지로 알려진 일본의 니혼게자이신문은 메이지유신 직후인 1876년 처음 발행됐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와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 또한 1888년과 1889년에 각각 첫 선을 보였다.

미국의 언론학자 제임스 케리(James Carey)가 말한 것처럼 주간지였던 신문이 일간지로 바뀐 것 또한 곡물시장과 주식시장 등이 매일 개장된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독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데 있어서도 시장은 최적의 장소였다.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뉴스의 상당 부분이 정부, 국회, 기업체 등 출입처에서 나오는 것처럼 시장은 언제나 새로운 정보가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금융뉴스는 일기예보나 스포츠 중계처럼 사실관계(Fact) 중심의 뉴스면서도 해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사실과 의견이 자연스럽게 겹쳐진 영역이었다. 가령, 곡물이나 석유 또는 주식 가격이 오르거나 내린 것 자체도 뉴스지만 왜 오르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전망하는 것도 뉴스에 속했다.

위기를 성장의 활력소로

주식시장은 자본주의 꽃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과 영국의 항구 도시를 중심으로 개설된 곡물 및 상품시장에서 출발했던 이 군락지는 19세기 이래 자본주의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팽창했다. 주요 독자층은 경제적으로 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었으며 이들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 현안 못지않게 경제적 이해관계에도 밝았다.

경제전문 잡지인 포브스(Forbes), 포춘(Fortune)과 비즈니스위크(Business Week) 등은 이런 배경에서 1920년대를 전후해 등장했다. 1929년의 대공황과 뒤이은 세계대전의 여파로 잠깐 주춤했던 금융저널리즘은 1945년 종전과 더불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전후 평화와 더불어 유럽 경제가 살아나면서 월스트리트저널, 포춘 및 비즈니스위크의 독자 규모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위기를 성장의 활력소로 활용한 것 역시 이 군락의 특징이다.

전후 부흥기를 누렸던 국제사회는 1970년 초반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 달러만이 현금처럼 사용되는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미국은 무역적자를 통해 달러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하고 달러가 축적됨에 따라 그 가치는 떨어지는 트리핀(Robert Triffin)의 딜레마가 현실화 됐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국가들은 무역대금으로 달러가 아닌 금(gold)을 요구했고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원유 값을 비롯해 국제 소비재 물가는 폭등했고 무역적자에 직면한 각국은 서둘러 보호주의를 내세웠다.

국제무역이 크게 위축되면서 전 세계는 경기후퇴에 직면했다. 미국 달러의 추가 하락을 방지하기 위한 고금리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달러 부채가 많았던 남미 국가들 또한 대규모로 파산했다. 그간 국내 상황에만 익숙해 있던 뉴스 소비자들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한 보다 ‘분석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을 원했다. 머니(Money)와 실비아 포터의 자산관리(Sylvia Porter's Personal Finance)와 같은 투자전문 잡지를 비롯해 뉴욕타임스에서 비즈니스데이(Business Day)를 별도 섹션으로 발행하기 시작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냉전이 끝나고 경제를 둘러싼 국가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지속적으로 확장되던 이 군락은 1990년대 중반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또 한 번 도약했다. 뉴욕 시장을 역임했던 마이클 블룸버그가 1982년 설립한 블룸버그통신은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이었다.

경쟁사인 영국의 로이터통신과 미국의 다우존스통신 등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블룸버그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계기로 세계적인 금융뉴스 전문 매체로 부상했다. 1994년 멕시코 페소화 위기 때부터 조짐이 있었던 통화위기가 아시아를 비롯해 러시아와 남미 등으로 다시 확산되면서 전례가 없던 정보 수요가 몰린 덕분이었다.

1991년 걸프전을 계기로 미국의 CNN 방송이 국제적 방송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글로벌 시장에 미치는 블룸버그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많은 금융기관을 비롯해 정부 관련 부처는 월 100만 원 이상의 고가에도 불구하고 전용 단말기 구입을 서둘렀다.

금융매체가 갖는 경쟁력의 명암

디지털 혁명을 통해 뉴스생태계는 급변하고 있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증가로 인해 이 군락의 성장세는 지속되고 있다. 2014년 현재 금융저널리즘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뉴스생태계의 약 20%에 달한다.

야후파이낸스(Yahoo Finance), 구글파이낸스(Google Finance), 비즈니스인사이더(Business Insider), 마켓와치(Market Watch), 더스트리트(The Street) 등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신흥 매체도 꾸준히 증가한다. 언론계 전반이 위기를 겪고 있는 국내에서도 머니투데이, 이데일리, 이코노미21, 머니위크와 토마토뉴스 등이 금융전문 매체는 오히려 늘고 있다.

금융뉴스는 그 자체가 돈이다. 정부의 경제정책 홍보와 기업의 투자설명회 및 CEO의 인터뷰조차 뉴스로 받아들여진다. 주식시장과 외환시장 및 부동산 시장에서 쏟아지는 정보는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는 이상 안정적인 뉴스 공급원이 된다. 정부의 금융정책, 기업의 실적 및 국제시장의 동향을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획득하는가에 따라 천문학적인 수익이 결정되기 때문에 뉴스콘텐츠를 비싸게 팔아도 구독자가 줄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 이코노미스트와 파이낸셜뉴스 등이 디지털 뉴스유료화에 일찍부터 성공한 이유가 있다.

물론 이 군락 또한 음지가 있다. 정부와 기업 등에서 얻은 내부자 정보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언론사로 인해 이해관계의 충돌이 많다. 월가의 투자은행은 물론 해당 언론사가 속한 모기업 또는 거대 광고주의 부당거래 및 부정을 제대로 고발하지 못하는 문제 역시 심각하다. 황금의 군락지가 더 번창할 지, 신뢰 상실로 쇠퇴할 지, 아니면 자정작용을 통해 지속적으로 뉴스생태계를 이끌어 갈지 관심 있게 살펴볼 일이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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