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난안전통신망의 명과 암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의 명과 암
  • 최연진 한국일보 산업부 기자 (thepr@the-pr.co.kr)
  • 승인 2014.09.03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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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시스템 일원화로 의사소통 개선, 반복되는 재해 막을 수 있을까?

[더피알] 정부의 오랜 과제였던 국민의 생명이 달려 있는 국가 재난안전통신망이 지난 7월 말 전격 결정됐다.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이란 자연재해, 대형사고 등 비상시 경찰이나 소방관 등 공무원들이 무전기를 통해 하나의 통신망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구조 작업 등을 신속하게 하기 위한 필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 도입이 필요한 이유는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각 지역 소방관이나 경찰관들이 하나의 통일된 기술 방식의 통신 시스템이 아닌 서로 다른 통신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대형 재난 재해로 공무원들이 한 군데 모였을 때 무전기들을 들고 있지만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한다. 재난 영화처럼 서로 무전을 주고받으며 영웅적인 구출 활동을 벌이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 (자료사진) 남창호 소방방재청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장마철 호우피해방지를 지시하고 있다. ⓒ뉴시스

실제로 이런 사례가 있다.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때 각 공무원들이 서로 다른 통신 방식의 무전기를 사용하면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 당시 정차한 전동차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마주 오는 전동차에 직접 교신으로 이를 알릴 방법이 없어서 스쳐 지나간 전동차에 불이 옮겨 붙으며 오히려 그 전동차에서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이에 당시 정부에서 국가 재난안전통신망의 필요성이 대두돼 본격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정부는 기술 방식을 결정하지 못해 무려 11년간 논란만 되풀이했다. 즉, 지난 11년 동안 여전히 재난 재해 구조활동에 동원된 공무원들이 서로 일원화된 통신을 하지 못했다는 소리다.

11년간의 논란, 세월호 참사로 종지부

정부가 11년 간 논란만 되풀이한 이유는 기술방식을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가 재난안전통신망으로 유력하게 검토한 기술은 테트라 방식이다.

테트라는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T)가 재난 때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무선 통신 시스템으로, 미국 모토로라에서 관련 장비와 무전기 등을 공급하고 있다. 그래서 감사원 등에서는 테트라 도입 시 모토로라에 기술 종속 우려가 있고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 의혹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렇다고 테트라를 대체할 마땅한 대안 기술도 없다 보니 11년 간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상황이 급반전한 것은 세월호 참사 때문이었다.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11년째 진전 없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사업을 조속히 결론내겠다”고 발표하면서 11년간 탁상공론만 되풀이 한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의 기술 방식이 두 달 만에 전격적으로 결론이 났다.

정부가 결정한 방식은 재난안전용 LTE(PS-LTE)다. 쉽게 말해, LTE를 재난 발생시 통신용 무선망으로 쓰겠다는 얘기다. 미래창조과학부가 테트라를 제치고 LTE를 선정한 이유는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앞선 통신 기술이라는 점 때문이다.

즉, 사고 현장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실시간 전송하며 구조 체계를 가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테트라는 지난 5월 기획재정부가 실시한 타당성심사에서 오래된 기술이므로 대용량 데이터 전송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 (자료사진) 생물테러 발생에 대비한 모의훈련 모습.

이에 따라 미래부는 LTE 방식으로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하면서 전용 통신망을 따로 설치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건물 내부나 지하 등 일부 지역은 기존 이동통신업체들의 LTE 이동통신망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전체 전용망을 설치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 정부의 셈법이다. 미래부에 따르면 그래도 비용이 최대 5조원 가량 소요될 전망이다.

이동통신업체들이 전국에 깔아 놓은 LTE 통신망이 있는데도 새로 전용망을 설치해야 하는 이유는 보안 때문이다. 재난안전통신망이 단순 재해 구조에만 쓰이는 게 아니라 경찰들의 범인추적 등 비상 통신망으로도 활용된다. 이를 전용망을 통해 보안을 강화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도청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은 재난안전통신망을 전용망으로 사용한다.

여기에 또 다른 이유는 비상 상황에서 안정적인 통신을 위해서다. 크리스마스 등 기념일에 통화량이 폭주하면 더러 휴대폰이 불통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하물며 재난 현장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기존 이동통신망을 재난안전통신망으로 함께 사용하면 정작 구조활동에 필요한 통신을 하기 힘들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필수 불가결하게 재난안전통신망은 전용망을 설치해야 한다.

LTE 방식 채택, 문제는 현실화

하지만 여기에 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별도 단말기, 즉 전용 무전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존 스마트폰으로 비상 통신을 하기는 힘들다. 재난안전통신망에 쓰이는 무전기는 비상 상황에서 기지국이 파괴되어도 무전기 자체가 기지국 역할을 하며 통신이 돼야 한다. 현재 테트라 방식의 무전기는 이게 가능하다.

이런 기능을 가진 전용 단말기를 따로 개발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전 세계에서 LTE망으로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한 나라가 없다보니 단말기 또한 새로 개발해야 한다.

그런데 단말기를 만들려면 이를 지원하는 통신용 반도체가 필요한데, 이를 독점 공급하다시피하는 퀄컴에서는 재난안전통신망용 통신칩을 만들 계획이 없다. 이유는 아직 세계 표준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기술 규격이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LTE로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하려면 우선 세계 표준에 해당하는 기술 규격을 전 세계에서 먼저 정하고, 여기 맞춰 퀄컴이 통신칩을 개발하면 이를 가져다가 제조사들이 무전기와 기지국 장비 등을 만들어야 한다.

즉, 우리만 기술 방식을 LTE로 정했다고 해서 뚝딱 뚝딱 재난안전통신망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미국은 장차 LTE 방식으로 가겠다면서도 여전히 테트라를 변형한 앱코25방식을 재난안전통신망으로 채택했으며 유럽 중국 등은 테트라 방식을 쓰고 있다.

끝으로 또 한 가지 문제는, 11년간 정부가 탁상공론을 되풀이 하는 동안 서울 경기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울산 등 주요 광역시 경찰들과 일부 지역 소방서들은 자체적으로 테트라 방식을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미 설치해 놓은 테트라망을 포기하고 LTE망으로 대체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결국 비싼 세금을 들여 두 번 작업하는 중복 투자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사업 진행을 맡은 안전행정부는 우선 테트라망을 사용하지 않는 지역부터 LTE로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하고 테트라를 사용하는 지역은 제일 나중에 2017년까지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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