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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 향한 거인의 메시지
‘기레기’ 향한 거인의 메시지
  • 더피알 (thepr@the-pr.co.kr)
  • 승인 2014.09.22 15: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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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해의 뉴스생태계 따라잡기] 월터 리프먼의 언론 원칙과 철학

[더피알=김성해] 물은 낮은 데로 흐른다. 꽃은 말하지 않아도 벌과 나비가 모인다. 생동감 있고 번창하는 생태계는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나훈아의 ‘잡초’란 노래에 나오는 것처럼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은 쇠락의 징후다. 미래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약 2만개 이상에 달하는 직업군은 역사적으로 끝없이 부침했다.

뉴스생태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8세기 종이신문을 통해 처음 탄생한 직후 20세기 초반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기 이전까지 이 생태계는 불모지에 가까웠다. 뉴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언론인은 없었다. 여행자의 얘기나, 주식이나 곡물시장의 소식을 전하는 일에 고학력의 우수 인재는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맞아 글로벌 최고의 인재는 여전히 이 생태계로 몰려든다. 종이신문이 아니라 구글, 야후, 허핑턴포스트, 바이스와 같은 새로운 매체에 둥지를 트는 게 다를 뿐이다.

인재가 몰려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명성을 얻을 수 있고, 주변에 영향을 끼치고 자부심을 느끼며, 먹고 사는 데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금전적 보상과 직업적 안정성은 누구나 원한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뉴스생태계는 이런 조건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부 시대를 읽은 또 야심가 정도만 겨우 그 가치를 알았다.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은 그 중의 한 명으로 단연 군계일학이다.

시대를 읽은 야심가,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으로

그는 1889년 넉넉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명문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 철학을 공부했고, 프랑스와 독일어 등 몇 개의 언어를 능숙하게 다뤘다. 탁월한 성적으로 3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약관 20대 중반에 <뉴 리퍼브릭(New Republic)>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현역 대위로 복무하는 동안 국제평화회의 미국 협상팀에 참가했고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의 참모로 일했다. 당시에는 희귀했던 특파원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에 깊숙이 개입했고, 무려 35년 간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와 뉴스위크(News Week) 등에 ‘오늘과 내일(Today & Tomorrow)’이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격동기 동안 아이젠하워, 케네디와 닉슨 대통령 등의 자문위원이었고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이었다. 퓰리처상은 두 번이나 수상했고 ‘자유의 메달’이라는 명예훈장도 받았다. 평생 동안 26권의 책을 집필했고 지금도 하버드대학에는 그의 이름을 딴 ‘월터 리프먼 하우스’가 있다. 그러나 그를 거인으로 만든 것은 이러한 명성이나 화려한 경력만은 아니었다.

정식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적은 없지만 학계에 끼친 그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고정관념(Stereotype)이란 개념을 통해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는 상식을 심리학으로 끌어들였다. 인간은 실체와는 무관한 ‘유사 사건(Pseudo Event)’에 휘둘리며 이를 근거로 판단하고 행동을 한다는 것도 그를 통해 알려졌다.

정부나 기업에서 국민의 관심을 돌리거나 우호적 또는 적대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을 연출하는 것도 여기서 출발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과 소비에트연방 중심의 사회주의 진영이 국지전과 심리전 등을 통해 경쟁하는 상황을 일컫는 ‘냉전(Cold War)’라는 개념도 그의 작품이다. 언론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922년 그는 <여론(Public Opinion)>이라는 책을 발표한다. 1919년 파리강화조약의 경험,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독일 나치즘과 제2차 세계대전 등을 보도하면서 얻은 통찰을 통해 민주주의가 가진 한계를 비판한 작품이다.

▲ 월터 리프먼.

일상의 생계에 얽매인 일반 국민에게 있어 대외정책은 너무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을 뿐더러 주어지는 정보에 따라 휘둘린다. 국민은 연극이 시작된 뒤에 입장해서 극이 끝나기 전에 나가는 관객이다. 정책담당자들과 국민을 중재하는 언론은 사실관계만 보여줄 뿐 진실을 보여주지 못한다. 언론은 깜깜한 밤의 탐조등과 같은 것으로 언론이 비추는 대상과 방향에 따라 여론은 조작될 수 있다. 언론학과 정치학의 고전으로 알려진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물론 그의 통찰이 반드시 옳지는 않았다.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현명하지 못했고 실수를 했으며 또 잘못된 정책을 미리 막지도 못했다. 뉴스와 진실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뉴스를 통해 진실을 발굴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여론에서 보듯 국민은 그렇게 무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언론은 특정한 방향으로 생각을 하도록 만들지는 못하지만 주목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의제설정이론(Agenda Set­ting Theory)’이 발전했다. 정부와 기업 등 권력 집단이 언론을 통해 전쟁과 같은 중요한 대외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동의 생산(Manufacture of Consent)’이 공감대를 얻은 것도 그의 공로다.

완벽하지도 않았고 또 실수가 없지도 않았지만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다른 관점을 존중하고자 했으며, 평화와 공존을 옹호했다는 점 또한 거인의 풍모였다.

2014 대한민국 언론계에 필요한 또다른 ‘거인’

1961년 이미 칠순의 나이를 넘어선 그는 소련의 후르시초프 수상과 인터뷰를 단행했다. 미국 내 공산주의자 색출을 위한 광기였던 매카시즘(McCarthyism)의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시점이었다. 공존을 위해서는 상대의 관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또한 미국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과도한 개입을 자제해야 하며, 대외정책은 진정한 국가이익에 대한 성찰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로부터 명예훈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닉슨 정부의 베트남 참전을 가장 강력하게 비판한 것도 이러한 신념과 무관하지 않았다. 언론인은 권력과 지나치게 유착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했고 그 자신 또한 평생 공직을 맡지 않았다.

2014년 한국 사회에서 언론은 미운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최근 한 일간지의 설문조사를 보면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평균 10%에 불과했다. 현업에 있는 기자들을 만나면 신입기자의 수준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된다는 말을 한다. 과도한 업무량, 낮은 자존감, 기레기로 대접받는 현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럼에도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양심적이고, 전문적이며, 충성의 대상을 국민으로 아는 언론인의 존재는 깨끗한 물과 공기와 같다. 한국 뉴스생태계의 복원을 이끌어 갈 거인은 없는 것일까?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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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폐간 2022-04-07 11:58:12
신문방송학과가 기레기 양성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