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가 통하지 않는 시대, 서태지마저 벗었다
신비주의가 통하지 않는 시대, 서태지마저 벗었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10.1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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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10년만의 예능출연…‘투트랙 전략’ 의미

[더피알=문용필 기자] 지난 9일 방송된 KBS <해피투게더3>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게스트는 ‘문화대통령’ 서태지. 무려 10년의 예능프로그램 출연이라고 한다.

이날 서태지는 새로 발표되는 음반과 ‘16살 연하’ 배우 이은성과의 결혼, 득녀 등 자신을 둘러싼 개인적 이야기를 비교적 진솔하게 들려줬다. 얼마 전 태어난 딸의 사진도 공개됐다.

▲ 지난 9일 방송된 kbs '해피투게더3'에 출연한 서태지(사진:kbs 방송화면 캡쳐)

서태지는 연예계에 ‘신비주의’라는 말을 정착시킨 장본인이다. 1992년 서태지와아이들로 데뷔해 가요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그는 앨범활동이 끝나면 다음 앨범 준비를 위해 ‘잠수를 타는’ 행보로 일관했다.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을 제외하고는 한창 잘 나갈 때 방송활동이나 광고들을 통해 지속적인 활동을 펼쳤던 이전 선배가수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솔로로 나선 이후에도 컴백 특집 프로그램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방송에 나타나지 않았다. 배우 이지아와의 결혼과 이혼도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을 만큼 서태지의 사생활은 대중들에게 비밀 그 자체였다.

그랬던 서태지가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한 것은 ‘파격’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만한 사건이었다. 이미 방송 이전부터 서태지의 ‘해피투게더’ 출연은 큰 이슈가 됐다.

기존 포맷에는 없었던 MC 유재석과의 ‘1:1 토크’ 시간이 마련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너무 서태지에 맞춰준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서태지가 신비주의를 완전히 탈피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평가다.

그러나 서태지가 방송에서 스스로 자신의 사생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제는 대중들 앞에서 좀 더 편안해지고자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팬이 아닌 일반 대중들과도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도 엿보인다. 이번 앨범에서 ‘아이돌 스타’ 아이유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음악적 색채가 거의 겹치지 않는 데다가 배우로도 활동하면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아이유에게 자신이 만든 곡을 통째로 부르게 하고 이를 자신의 앨범에 수록한 것은 이례적인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서태지는 다른 가수들에게 거의 곡을 주지않는 뮤지션으로도 유명하다.

이른바 ‘신비주의’를 벗고 대중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간 대표적인 케이스는 기타리스트 김태원이다. 3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록밴드 ‘부활’을 이끌며 ‘비와 당신의 이야기’ ‘희야’ ‘사랑할수록’ ‘네버엔딩스토리’ 등의 히트곡을 만들어낸 김태원은 록커에 걸맞는 카리스마를 선보인 기타리스트였다. 한국의 3대 기타리스트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다가선 기타리스트 김태원 ⓒ뉴시스

그러나 김태원은 KBS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을 통해 ‘국민할매’라는 수식어까지 얻으며 친근한 이미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몇 년전 핫초코 CF에서 자신을 긴머리 아가씨로 착각한 남자에게 툭 던진 “혼자왔냐”는 멘트는 그 해 시청자들에게 최고 웃음을 선사한 광고카피 중 하나였다.

가수 김종서와 김경호도 ‘록커’의 카리스마를 벗어나 의외의 모습을 보여줬다. 서태지의 절친이자 1980년대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록 보컬리스트로 활동해온 김종서는 예능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지난 2008년 SBS 드라마 <행복합니다>에도 출연했다. 아울러 로커 김경호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새침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긴 마찬가지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 <마스터 셰프 코리아>에서 날카로운 심사평으로 참가자들을 긴장시켰던 요리연구가 강레오는 tvN <삼촌로망스>와 SBS <오마이베이비>를 통해 차갑고 냉철한 이미지를 친근하게 변화시켰다. 또 냉철한 파이터와 로맨틱 가이라는 두 가지 매력을 지닌 격투기 선수 추성훈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딸바보’의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켰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자신을 감싼 신비주의를 벗어나 진솔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들의 행보는 기존에 보유한 인기에 시너지 효과를 더하는 경우가 많다. 친근한 이미지가 대중들과의 더욱 가까운 소통을 이끌어낸 까닭이다. 이들을 잘 모르던 사람들까지도 새롭게 팬이 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신비주의 해체’가 역효과를 낳는 부분도 있다. 자칫 고유의 매력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존 이미지를 좋아하던 팬들에게는 자신의 우상이 하루아침에 ‘동네 형’ 혹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이 불만일 수도 있다. 예능을 통해 신비주의를 벗었던 일부 스타들이 본업에 충실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보인다.

그러나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스타의 다양한 이미지를 주관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충분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 검색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를 네티즌 수사대가 인터넷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다. 아무리 ‘과도한 포장’도 금새 벗겨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연예인이 SNS에 실수 한번만 해도 이를 다룬 기사들이 다음날 수십, 수백개씩 쏟아지는 시대다.

그래서 오히려 진솔한 모습과 무대에서의 카리스마를 동시에 보여주는 ‘투트랙 전략’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대중과의 솔직하고 담백한 커뮤니케이션은 이제 ‘롱런’의 필수조건이다. ‘스타’는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만들어내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막 신비주의 베일을 한꺼풀 걷어낸 서태지의 모습에서 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90년대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부터 20여년 간 그의 노래를 들어왔던 ‘서태지 세대’의 입장에서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태지형, 이제는 TV에서도 자주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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