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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작동 위한 ‘레드팀’ 필요하다”[전문가 좌담 上] 리더십 부재 시대, 무엇이 문제인가

4월 16일 이후로 대한민국의 시계가 고장이 났다. 300여명을 잃은 상실은 분노로 돌변했고, 지금도 사회 곳곳에 강한 여진으로 남았다. 상처를 치유하고 무너진 축대를 일으켜 세울 리더십의 부재. 현실의 절박감은 이제 리더를 향한 강한 목마름으로 표출되고 있다. 목소리를 높인다. 고장 난 시계를 고쳐달라고. 더 이상 시간 속에 갇혀있지 말자고. 그리고 묻는다. 과연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인가.

<더피알>은 리더십을 갈망하는 우리사회 현주소를 진단하고, 의미와 대안을 모색하는 전문가 좌담을 개최했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서희태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가 자리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진행·정리 강미혜 기자 / 사진·성혜련 기자 

   
▲ 좌담회 참석자. (왼쪽부터) 서희태 지휘자,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지난 여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영화 <명량>의 선풍적 인기를 ‘이순신 리더십’의 갈망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건 리더십이 부재하다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는데요.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유민영 대표(이하 유)  압축성장의 시대,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왔던 한 시대가 저물면서 표출되는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과거 우리사회엔 ‘어른들’이 계셨습니다. 설사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분이 말씀하시면 듣고 존중하는, 그리고 내 생각이 잘못되었는지 돌아보게 하는 그런 어른들. 그런데 지금은 시대적으로나 인물적으로나 그런 어른들이 없어요.

낡은 질서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질서가 들어서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는 묘한 상황입니다. 과도기 속 권태 같은 무언가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어요. 동시에 새로운 언어, 새로운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목말라합니다. 이런 사회적인 복잡함이 리더십의 갈망으로 연결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 前 에델만 코리아 대표 / 저서 <쿨하게 사과하라>(정재승 공저)

김호 대표(이하 김)  얼마 전 한국지사로 부임한 외국계 기업 CEO의 코칭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경영 스타일이 질문을 통해 집요할 정도로 많이 듣고, 그로부터 문제점을 발견해 솔루션을 찾더군요. 그런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회사 내부만 해도 재무, 홍보, 법무 등 수많은 부서가 있습니다. 리더는 그들 전체의 이야기를 듣고 어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캐치해 개선시켜 나가는 존재입니다. 잘 들으려면 무엇보다 질문을 잘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말 잘하는 리더는 많지만, 잘 듣는 리더는 적어요. 공감과 경청의 리더십을 바라는데 그런 소양을 갖춘 리더가 부족하니까 찾게 되는 겁니다.

서희태 지휘자(이하 서)  저는 지휘자니깐 지휘로 리더십 얘기를 해볼게요. 흔히들 지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좋은 귀’라고 하는데, 그 보다는 ‘열린 귀’가 더 중요합니다. 잘못된 점을 딱 집어내서 고치도록 하는 게 과연 좋은 리더일까요. 과거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지휘공부 할 때 제 스승께선 연주 중에 틀린 소리가 나더라도 절대 그쪽을 바라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가뜩이나 위축된 연주자가 끝까지 제 역할을 못해낼 수도 있다고요.

즉 리더라면 좋은 귀는 기본이고, 여러 소리를 아우를 수 있는 열린 귀를 갖는 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사회에 리더십이 부재하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요. 과연 리더십이 정말 부재한 걸까요? 좋은 리더십은 참 많고, 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리더들이 있습니다. 다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소리를 내기 때문에 하나의 화음으로 어우러지지 못하고 파열음이 생기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리더십에 정답은 없다”
변화하는 사회와 보폭을 같이하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국민 3명 중 1명이 관람했을 정도로 각광받는 이순신의 리더십이 답이 될 수 있을까요.  

   
▲ 서희태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 / 리더십 강사 / 저서 <클래식경영 콘서트>, <오케스트라처럼 경영하라> 外

  리더십에 어떻게 정답이 있을 수가 있나요? 내가 속한 사회가 다르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성품이 다르고, 성별과 나이, 생각들이 다 다른데 어떻게 이순신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리더십을 논할 수 있을까요? 실제 따뜻한 마음을 갖는 배려의 리더십이 있는 반면, 다른 사람의 경우 배려는 좀 부족해도 정말 정도(正道)를 걷는 리더십을, 또 어떤 이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주어진 것 이상의 결과물을 끌어내는 리더십을 각각 발휘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리더십은 천차만별이고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악기들도 각자 개성대로 소리를 내야 하모니가 됩니다. 트럼펫을 첼로처럼, 팀파니도 첼로처럼 연주하라고 하면 절대 오케스트라가 될 수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하나의 기준과 선을 그어놓고 리더십마저도 거기에 끼워 맞추려고 해요. 사회가 중용을 강조하기보다 평균만 이야기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자꾸 트러블이 생기는 겁니다.

  리더십은 사람의 지문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 선생의 말씀처럼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한동안 거스 히딩크가 리더십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홍명보, 이순신 등으로 스포트라이트가 옮겨지게 됐는데요. 리더십도 뭔가 유행이라고 하면 한쪽으로 확 쏠리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각자 지문이 다르듯이 리더십의 스타일도 제각각이라 자기에게 맞는 리더십을 찾아 확고히 하는 주관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디언스(청중)와 포지션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이전의 리더십은 ‘트러스트 미(Trust me·나를 믿어달라)’였습니다. 청중은 (리더를) 따라가기만 하면 됐지요. 그런데 지금의 청중은 ‘쇼미(Show me·나에게 보여달라)’라고 얘길 합니다. 완전히 바뀐 거죠. 이런 상황에서 어떤 리더십이 적절하고 설득력이 있을까요?

둘째 ‘나를 따라와라’ ‘내가 따라갈게’라고 하는 리더와 청중 사이에는 ‘함께 무엇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라는 내용이 존재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아직 훈련되지 못한 측면이 있는 듯합니다.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획일성과 집단성, 적대성을 뛰어 넘어 창의성과 다양성이 자리 잡게 하려면 어떤 리더가 어떻게 역할을 해야 할까요?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히 못 찾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싶습니다.

리더십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인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지금과 같은 수평적 시대엔 특히 경청과 공감의 능력이 중시되는데요. 리더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 혹은 덕목이라면 어떤 게 있습니까. 
 

   
▲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 /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 前 청와대 춘추관장

  최근 한 기업의 가치컨설팅을 하던 중 기업문화를 진단한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이 회사에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협력해서 일하는 사람이 없다’였습니다. 외국 언론사들을 보면 ‘레드팀(Red Team)’이란 게 있습니다. 이 팀은 기획회의나 취재, 편집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다가 기사 출고 시점에 등장해서 문제점이나 오류의 가능성, 보완할 점 등을 조목조목 제시합니다. 한 마디로 조직 내에서 ‘악마의 대변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거죠.

마찬가지로 우리사회, 기업, 정부에도 레드팀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생각들이 자유롭게 오가면서 충돌하는 지점에서 한 단계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하는… 그렇게 해야 새로운 대안이 제출되고 합의, 조화, 전진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데, 지금은 그 과정과 노력들이 부족합니다. 들어주는 사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반대하는 사람, 협력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 기반 위에서 조화를 이루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상당수 기업들이 오너의 잘못된 판단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곤 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오너가 자기 말 외엔 안 듣기 때문이에요. 앞서 지휘자, 즉 리더는 좋은 귀, 열린 귀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잘 들어야만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제대로 밸런싱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지금 우리사회 리더들에게서 보이는 리더십의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귀를 열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다보니 (소리를) 듣는 것 이상으로 지휘자의 중요한 역할이 단원들로 하여금 서로의 소리를 잘 듣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간혹 리더가 구성원들 이야기를 듣고 조화를 이루는 걸 잘못 생각해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듣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줄일 건 줄이고 키울 건 키우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 리더의 역할인데 말이죠. 인기주의에 영합해서 그 결단을 못 내리는 리더가 있기도 하고요.
 

   
▲ (자료사진) 영화 <명량>의 열풍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8월 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극장을 찾아 영화를 관람했다.

“명량의 역설을 기억해야”
리더십이 진짜 빛을 발하는 순간은 위기가 닥쳤을 때입니다. 지금 우리사회가 리더십을 갈망하는 것도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적 대형쇼크가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위기시 리더는 평상시와 달리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보시는지.

  좋은 리더십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것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청이 필요하다고 위기 상황에서도 남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결코 좋은 리더가 아닙니다. 위기시 너무 민주적인 리더십은 좋지 않아요.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문제점을 가급적 빨리 고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합니다.

  오케스트라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사회와 똑같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는데 지휘자가 어영부영하면 그 즉시 단원들에게서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옵니다. 또 훌륭한 지휘자가 항상 정도(正道)만을 이야기해도 단원들은 싫어합니다.

당장 그 요구에 맞춰 해나가기가 힘이 드니까요. 얼마 전 어느 칼럼을 봤더니 지휘자에는 세 부류가 있다고 합니다. 절대음감이 있는 지휘자, 절대음감이 없는 지휘자, 절~~~대 음감이 없는 지휘자. 아이러니하게도 단원들이 함께 투표하는 오디션에서 세 번째인 절~~~대 음감이 없는 지휘자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왜일까요? 단원들과의 조화를 위해서? 아닙니다. 실력이 있다하더라도 너무 깐깐하면 불편해들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사회가 딱 그렇습니다. 아주 뛰어난 사람이 바른 길로 끌어주면 좋지만, 그게 개개인으로 봐선 굉장히 불편한 일이지요. 결국 잘못된 것이 있어도 ‘나의 불편’을 감수하기 싫어 눈 감고 대충대충 해오던 것이 세월호라는 엄청난 문제로 극대화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리더십의 딜레마라고 볼 수 있을 듯해요. 절대성을 가진 사람(리더)이 끌어주길 바라는 마음과 수평적 관계에서 협력해 최선의 결과를 얻고자 하는 마음, 그 사이의 딜레마인거죠. 명량의 리더십이 각광받지만 명량의 역설도 분명 있습니다. 절대적 존재, 절대적 권력에 대한 기대가 갖는 위험성은 큽니다. 훌륭한 분들이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좀 더 평평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을 예로 들면, 그는 권력의 한계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하고 무엇을 하려거든 무엇을 못하는가를 명확히 알라고 강조하곤 했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평평함을 유지하려 한 것이지요. 과연 명량의 이순신이 우리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 대목에서 저는 굉장히 비관적이라고 봅니다. 그보다는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평평하게 할 건 평평하게 만들어서,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들을 정확히 구분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룰을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리더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짊어지라고, 그리고 해결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권력자들도 자신이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 무리한 것들을 시도하고 있고요. 위기 시 벌어지는 이런 악순환이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계속>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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