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사게 하는 마케팅 비밀
‘불편함’을 사게 하는 마케팅 비밀
  • 김지헌 세종대 교수 (admin@the-pr.co.kr)
  • 승인 2014.10.16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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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헌의 브랜딩 인사이트] ‘어떻게’ 아닌 ‘왜’를 담다


[더피알=김지헌] 얼마 전 브래들리 타임피스(Bradley Timepiece)라는 손목시계를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했다. 혁신적인 제품을 보면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싶어 하는 성격 탓에 구매를 결정하긴 했지만, 멀쩡히 잘 굴러가는 손목시계를 5개나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약 30만원 하는 시계를 호기심에 산다는 것이 조금은 망설여지기도 했다. 이제는 SNS 입소문을 통해 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시계지만 아직도 주변에 이 시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브래들리 타임피스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보는 시계가 아니라 만지는 시계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적용했다.

MIT의 한국인 유학생 김형수 씨는 수업시간에 옆자리에 앉아있던 시각장애인 학우가 자신에게 몇 시인지 물어보았던 에피소드에 영감을 얻어 이 시계를 개발했다. 당시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계는 소리로 시간을 알려줬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에 김 씨는 보거나 듣는 시계가 아닌 만지는 시계를 개발했다.

▲ 만지는 시계 ‘브래들리 타임피스’.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구슬로 돼 있어 보는 것은 물론 촉각으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제공: 이원코리아)

자석의 원리를 이용한 두 개의 구슬이 시침과 분침의 역할을 해 구슬 위치를 손으로 만져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 현재 이 시계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런던디자인 박물관의 올해의 디자인 상 후보로도 올랐다고 한다.

한 달 이상 사용해 본 소비자로서 제품에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케팅 관점에서 이 브랜드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분석해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브래들리 타임피스의 성공 비결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브랜드 콘셉트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자세한 내용은 더피알 5월호 ‘브랜드전략 핵심은 ‘공감 가치’ ’ 참조). 이 시계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what)을 어떻게(how)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왜(why) 만들었는지를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기 때문이다.

▲ 만지는 시계 ‘브래들리 타임피스’ (사진제공: 이원코리아)
“시각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김형수 씨의 인터뷰 내용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만약 구슬의 원리와 독특한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커뮤니케이션을 했다면 지금과 같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실 시각장애인이 아닌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 볼 때 이 시계의 디자인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스타일이 보기 좋은 것을 의미한다면, 디자인은 보기 좋으면서 사용하기에도 편해야 한다. 브랜드 디자인 회사 조앤코(JOH&CO.)의 조수용 대표는 “디자인이란 좋다 나쁘다는 없다. 맞느냐 틀리냐만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사용편리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시계의 디자인은 오히려 틀렸을지도 모른다. 눈으로 봐서 시간을 알기 매우 불편하고 만져서도 정확한 시간을 아는 데는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시계의 디자인을 질책하지 않는다.

이는 모두가 함께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왜(WHY)’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진 힘이다. 내가 조금 희생해서 모두가 사용할 수 있다면 이 정도 불편함은 감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브랜드네이밍에 담긴 가치와 철학

둘째, 브랜드네이밍 전략이 탁월했다. 좋은 이름은 그 기업과 브랜드의 가치를 충분히 담고 있어야 한다. 먼저 이 시계를 만든 기업의 이름 즉, 기업브랜드(cor­porate brand)인 ‘EONE’은 ‘모두’를 의미하는 ‘에브리원(EVERYONE)’을 줄여서 만든 것이다. 기업이 추구하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 즉 유니버셜 디자인의 철학적 가치를 잘 담고 있다.

▲ 전쟁에서 두 눈을 잃고 패럴올림픽 수영종목에 참여해 우승한 브래들리 스나이더 (사진제공: 이원코리아)
브래들리 타임피스라는 제품 브랜드(product brand)의 이름도 매우 잘 지었다. ‘브래들리’라는 이름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두 눈을 잃고도 포기하지 않고 패럴올림픽 수영종목에 참여해 우승한 ‘브래들리 스나이더’의 이름을 땄다. 그의 도전정신은 이 시계에 긍정적 브랜드연상들을 불어넣는 차별적 브랜드 개성(brand personality)이 될 수 있다. 또한 ‘보다’라는 의미를 지닌 ‘와치(WATCH)’라는 단어 대신 ‘타임피스(Time­piece)’라는 용어를 쓴 것도 이 시계가 지닌 차별적 가치를 잘 담고 있다.

셋째, 호기심 충족의 가치(epistemic value)를 가지고 있다. 미국 에모리대학의 잭디시 세스(Jagdish Sheth) 교수는 ‘우리는 왜 구매하는가(Why we buy what we buy?)’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사람들은 호기심(cu­riosity)을 자극하거나, 신비롭고 참신함(novelty)을 가졌으며, 지식(knowledge)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에 매력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적어도 필자가 이 시계를 구매한 이유이다. 새로운 것을 직접 만져보고 싶은 욕구를 충분히 자극했다.

그 밖에도 이 시계는 일반 대중이 사업에 투자 참여하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방법으로 투자비를 조성해 만들어졌다. 이는 모두에게 기회를 준다는 기업의 철학과 일치할 뿐 아니라 투자에 참여한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브랜드 구매와 자발적 홍보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판단된다.

개인적으로는 EONE의 두 번째 제품 아니, 작품이 기대된다.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해 줄까?


김지헌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KAIST 경영대학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KT마케팅연구소와 CJ제일제당에서 브랜드전략 컨설팅 업무를 담당했다. 소비자심리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여 IMM, IJRM, AJSP 등 국내외 유명학술지에 논문들을 게재, 우수 논문상 및 강의 우수상을 수상했다.
(www.facebook.com/jih­ern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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