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노트와 펜, 스마트폰만 있으면 詩가 뚝딱
줄노트와 펜, 스마트폰만 있으면 詩가 뚝딱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4.10.17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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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디지털 ‘문학살롱’ 운영하는 이환천 씨

최근 하상욱, 최대호 등 이른바 ‘SNS 시인’이 각광을 받고 있는 가운데, 페이스북을 무대로 활동하는 또 다른 재야의 고수가 있다. 그는 경상도 사투리가 가미된 다소 거칠고 투박한 말투로 기존 SNS 시인들이 넘보지 못했던 수위를 넘나든다. 때론 욕설이, 때론 성인용 멘트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유기견, 국경일과 같은 사회적 이슈를 툭 건드리기도 한다.

얽매임 없이 자유분방한 시를 즐기는 듯하나, 형식은 또 굉장히 정제돼 있다. 세 글자 혹은 네 글자로 음수율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 그의 시의 포인트. 복고풍의 B급 정서 가득한 손수 그린 그림은 보너스다. 노트에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쓴 아날로그 냄새 물씬 풍기는 시를 디지털 ‘문학살롱’에 실어나르는 남자, 이환천 씨다.


처먹지 / 말던가
말하지 / 말던가
이러나 / 저러나
니입이 / 문제다

- 詩 다이어트-


[더피알=안선혜 기자] 정확하게 3음절로 딱딱 끊어지는 운율에 거침없는 돌직구, 억양 센 경상도 사투리, 웃음과 임팩트를 동시에 전달하는 이환천 씨만의 특징이다. 어투 자체는 거칠지만 그의 시는 실상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 이 시만 하더라도 여자들이 입에 달고 사는 다이어트 해야 한다는 말과, 이 말이 늘상 먹으면서 이뤄진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포착해 마지막 행을 읽는 순간 무릎을 치게 만든다.

여러 시에서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부산에서 나고 자라 그곳에서 초·중·고·대학을 비롯해 직장생활까지 한 순도 100% 부산 토박이란다. 올해로 스물아홉을 맞이한 이환천 씨는 얼마 전부터 호주에 가 있다. 제약회사 영업직으로 2년가량 근무하다 돌연 사표를 던지고 20대의 마지막을 타문화 체험으로 불태우고(?) 있다. 

▲ 이환천 씨가 무단도용에 대한본인의 기분을 반영해 그린 캐릭터.

매주 금요일마다 시를 업데이트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단 ‘이환천의 문학살롱’이다. 시를 쓰기 시작한 지는 좀 더 오래됐지만,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은 지난 5월부터 시작했다. 스스로를 ‘문인’이라 칭하고 프로필 사진은 직접 그린 자신의 캐리커처로 대신했는데, 그가 체대 출신이라는 점이 관전 포인트다.

간혹 올리는 다른 그림들도 프로페셔널하지는 않지만 제법 펜 좀 잡아본 솜씨다. 21세기에 살롱을 고수하고 그림 또한 복고풍에 B급 정서 가득하다는 면에서 그의 페이지는 콘셉트를 나름대로 일관되게 가져간다.

시 또한 줄 노트에 손으로 직접 쓰는 걸 고수한다. 글자 하나하나 또박또박 써서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시의 내용은 가볍더라도 ‘나는 이만큼 진지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변이다.

손글씨 SNS 시라는 유사한 콘셉트로 먼저 유명해진 최대호 씨가 주로 젊은 대학생들 정서에 맞는 반전시를 짓는다면 이환천은 어덜트(adult) 버전의 반전시를 쓴다. 공개적인 SNS에서 다소 꺼려질 법도 하지만 ‘내 얘기는 아니다’라며 은근슬쩍 빠져나가는 나름의 관록이 돋보인다.

간혹 틀리곤 하는 맞춤법에 대해서도 그는 당당함으로 일관한다. 일단 독자들로부터 맞춤법에 대한 지적이 들어오면 새로 수정해서 오류가 없는 새 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피드백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 가령 ‘거슬리내’라고 잘못 표기한 데 대해 지적이 들어오면 ‘내’에 X표시를 하고 ‘네’로 수정하는 식이다. 자신이 저지른 오류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셈. 그림으로도 이런 맞춤법의 오류를 희화화시켜 표현하기도 한다.

‘일기 쓰고 엔터만 잘 쳐도 시가 된다’는 그의 말마따나 독자들에게도 쉽고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게 그의 시의 묘미다. 책이 팔리지 않고 시가 죽었다는 시대에 SNS를 통해 시 쓰고 그림 그리는 ‘자칭 문인’ 이환천 씨와 이메일로 인터뷰 했다. 

▲ 이환천 씨가 페이스북에 게시한 시들.

문학살롱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시라고 말하기 우습지만 학창시절부터 가끔씩 친구들을 재밌게 해줄 목적으로 써서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러던 것이 차츰 쌓이고 친구들 반응도 그리 나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잉여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찰나에 ‘이환천의 문학살롱’을 만들어서 본격적으로 시를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개인 소장 목적으로 만들었으나, 누군가 봐주고 재미있어 해주길 기대하는 부분도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이환천 시의 포인트는.
제일 눈에 띄는 포인트는 아무래도 세 글자 내지 네 글자로 맞춰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내 나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라 하면 무엇보다도 현실에서 가장 공감할만한 부분들을 소재로 돌직구를 날리듯 솔직히 써내려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웃음이 나도록 하는 것이다. 의도대로 잘 되는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시의 소재들은 주로 어디서 찾나.
주로 일상생활이나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좋은 소재를 건져 올린다. 소재를 찾는 것이 제일 힘이 든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좋은 소재가 있으면 한번 꺼내보라고 부탁을 하면 이런 얘기 저런 얘기들을 많이 해준다. 거기서 더러운 내용을 거르고 민감한 내용을 제외시켜 제일 쓸 만한 소재로 글을 쓰곤 한다. 그렇게 써도 더럽고 민감한 글들이 많아 세상에 나오지 못한 시들이 많이 있다.

매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포스팅을 하고 있다. 나름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인 것 같다.
‘주간 이환천’이라고 매주 금요일엔 무조건 시를 올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가수 윤종신씨의 ‘월간 윤종신’이라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매월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존경에서부터 시작돼 나도 매주 시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해 시작했다. 나름대로 원칙을 정해놓고 쓰긴 하는데, 시간에 쫓겨 원하는 대로 잘 안 나올 때가 많아 목요일 저녁이나 금요일 아침에는 뇌를 쥐어짜기도 한다. 지금은 뇌를 너무 짜서 뇌에 물기가 없을 정도지만 그래도 짜내면 짜지는 맛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쉽게도 금요 포스팅 원칙은 이 인터뷰를 한 그 주에 바로 깨졌다. 환천씨 지못미…)

지난 광복절에 ‘오늘 뭐 까먹은 거 없어요?’란 시를 올려 광활한 자연을 찾아 놀러가는 젊은이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런데 그 시각 본인은 호주에 있었다는 게 함정인 것 같다.
활한 자연을 찾아서
잡한 이도실 떠나는
은이 들에게 물어요

세로로 첫 글자만 따서 읽으면 ‘광복젊’이 되는 애드립을 구사했다. 일침까지는 아니지만 광복절을 휴일이 아닌 기념일의 개념을 갖고 그 의미를 되새기자는 뜻에서 써본 것이다. 정작 그 시각 나는 호주에 있었지만 시를 쓰는 순간만큼은 순국선열에 대한 깊은 애도를 하고 광복절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 보았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란다.

특별히 호주를 찾은 이유라도?
어린 시절부터 초~중~고~대학까지 부산에서 지냈으며 직장도 부산, 모두가 흘러가는 대로 취업까지 무사히 마쳤다. 부모님께서 안도의 숨을 내쉬려던 찰나 돌연 사표를 던지고 회사라는 울타리를 나와 무작정 호주로 와버렸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온 것은 아니지만 29세에 이대로 나의 20대를 저물게 할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더 많이 보고 겪고 싶은 마음에 호주에 온 것 같다.

‘이환천의 문학살롱’이란 이름은 본인이 직접 지은 건가? 작명 센스가 돋보인다.
직접 지었다. ‘이환천의 문학살롱’ 다시 봐도 잘 지은 것 같다. 가볍디 가벼운 내용으로 시라는 숭고한 문학에 접근을 한 것이라 왠지 거창해 보이고 싶었다.

가끔 ‘소통의 시간’이란 타이틀을 달고 그림을 직접 그려 올리기도 한다. 왜 하는 것인지.
내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기도 하고, 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소통을 하고 싶어서 그림을 가끔 그려 올린다. 주로 패러디 개념으로 재미를 추구하면서 짧은 코멘트를 달아 내 생각을 나타내는 것인데 크게 의미는 없는 것 같다. 그림실력 뽐내기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다. 

▲ (좌) 유기견입양장려프로젝트 기획팀 새아띠의 의뢰로 지은 시 <흰둥이>가 지난 7월 진행된 유기견 관련 행사 현장에 전시돼 있는 모습. (우) 독자가 지적한 틀린 맞춤법을 이환천 씨가 수정해서 새로 올렸다.

손글씨를 고집하는 이유는? 쓰는 노트도 모두 동일하다.
‘시의 내용 자체는 가볍지만 나는 이만큼 진지하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왠지 손으로 글을 써서 올려야지 정성이 깃든 것 같고 나만의 작품이 된 느낌이 들어 손글씨를 고집하고 줄노트를 놓지 못하는 것 같다. 또 앉아서 종이에다 시를 쓰고 있으면 왠지 멋있질 않나. 다 자기만족이 아니겠는가.

인기의 척도를 무엇으로 가늠하나. 분명 초기보다 관심도가 높아졌을 것 같은데.
페이지의 ‘좋아요’가 높아지는 것이나 내 페이지가 아닌 다른 곳에서 내가 쓴 시를 보았을 때다. 하지만 인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다. 친구들이 온라인의 대스타가 됐니 어쩌니 놀리곤 하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나도 내가 부끄럽다. 그래도 확실히 문학살롱을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긴 하다. 호주에 거주하는 젊은 한국인들도 문학살롱의 존재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좋다. 사실 이런 관심을 받아 본적이 없어서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지만 조금 알아준다고 들떠서 나대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많이 봐서 최대한 겸손한 자세로 임하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다른 앞선 SNS 시인들이 있다. 이들과 유사한 콘셉트의 시를 짓고 있는데, 영향을 받은 부분은 없나.
SNS 시인들이 유명해지고 알려지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시를 쓰고 있던 터라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도 깜짝 놀랄 만큼 유사한 콘셉트로 시를 쓰는 분도 계셔서 놀라긴 했지만, 종이에 펜으로 글을 쓰는 것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이기에 누가 먼저 했다 늦게 했다 할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유기견 관련 시나 월드컵 응원 시 등을 보면 사회적 이슈에도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깊은 관심이라기보다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는 정도쯤의 관심이다. 유기견 시는 유기견 관련 행사를 진행하시는 분께 부탁을 받았다. 좋은 행사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흔쾌히 시를 써드린다고 했지만 사실 강아지를 한 번도 키워 본적이 없어 TV에서 하는 동물프로그램 중 유기견을 다룬 편을 다운로드 받아서 보고 ‘흰순이’라는 시를 쓰게 됐다. 월드컵 응원시는 체육 전공자로서 우리나라 대표팀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좋은 성적을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홍감독님’이라는 시를 쓰게 된 것이다. 가벼움에도 정도가 있는 것 같아 나름대로 그 수위를 조절 중이다. 앞으로도 모두가 공감할 만한 사회적 이슈라면 언제든지 소재로 활용해 시를 쓸 생각이다.

너무 무거운 질문이지만,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 이름에 문학이란 두 글자가 들어가 있어서 물어본다. 환천 씨가 정의하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본래의 정의는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도 비슷한 것 같다. 살아가기 위한, 사는데 필요한 글이 아닌, 글을 쓰거나 읽는 사람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즐길 수만 있다면 그 모든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살롱을 운영하면서 애로사항이 있다면.
딱히 없는 것 같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니 만큼 즐겁게 운영하고 싶다.

시 쓰길 잘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나로 인해 주위사람들이 모두 시인이 되어간다. 장난처럼 시 한편 슥 써서 메시지로 보내주곤 하는데 받아보면 기분이 좋다. 나처럼 시를 즐기는 사람이 또 생겼다는 생각에 시 쓰길 잘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시를 쓸 때 필요한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줄노트와 펜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만 있으면 재미있든 재미없든 시는 써지는 것 같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가장 가까운 계획이라 하면… 오프라인으로 문학살롱을 하고 싶다. 그 업종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온라인 소통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운영해 보고 싶다. 무엇보다도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시와 그림을 취미로 손에서 놓지 않고 문학살롱을 운영하는 멋진 늙은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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