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의료진 파견, ‘정부 불신 해소’가 우선이다
에볼라 의료진 파견, ‘정부 불신 해소’가 우선이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10.2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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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불안감 그대로…충분한 소통 과정 거쳤나

[더피알=문용필 기자]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전세계적인 공포가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발병지역인 서아프리카에 의료진을 파견하기로 했다. 20일 오후에는 관계부처들이 모여 파견규모와 장소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 지난 8월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모니터에 등장한 에볼라 발생국 여행주의 문구 ⓒ뉴시스

이번 파견은 에볼라 대응에 대한 ‘국제적인 공조’ 차원이라는 것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설명이다. 또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에볼라 사태 진화에 적극 동참해 인도적 책임을 실행하는 한편, 감염병 위기에 대한 대응체계를 경험하고 공유함으로써 차후에도 이런 상황의 발생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료진 파견에 대한 정부의 명분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비단 발병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직 이를 예방할만한 마땅한 백신이 마련돼 있지 않고, 치료제로 ‘지맵’이라는 약이 개발돼 있지만 실험단계에 있는 데다가 수량 조차도 미미한 수준이다. ‘에볼라 차단’을 위한 범세계적인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파견된 의료진에 대한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뒤에 ‘의료진 파견’을 결정했는지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자칫 국민들 사이에서 ‘에볼라 공포’를 더욱 확산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의료진 파견이 성급한 발표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는 대목이다.

물론 복지부는 “의료진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철저한 교육 및 준비를 거쳐 파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조차도 감염되는 사례가 있을 정도로 에볼라는 무서운 바이러스다. 국내 의료진이 아직 에볼라 치료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로 의료계에서는 ‘의료진 파견’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재갑 한림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20일 SBS 라디오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 “의료진을 세계 각국에서 보내는 것은 당연히 맞다”면서도 “우리나라에서 그만한 준비가 잘 돼있는가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는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보건 관련 시민단체인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이날 논평을 통해 “만에 하나 불행하게도 한국 의료진이 감염됐을 때 한국으로 안전하게 후송할 수 있을까”라며 “금방 생각해도 에어 앰뷸런스와 같은 기초적인 대비도 없으니 장담할 수 없다. 혹 귀국 후 방역과 치료가 필요하면 그럴 역량은 되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SNS를 비롯한 온라인 상에도 의료진 파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초동대처 미숙이 지적된 세월호 참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고가 발생한지 6개월이 넘었지만 현재까지도 아직 10명이 실종상태다.

지난 8월 입국한 에볼라 발병국인 라이베리아 인의 소재를 며칠째 파악하지 못해 일부 국민들을 에볼라 공포에 떨게한 것도 정부를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최근에는 부산 ITU 전권회의 참가국 중 에볼라 발병국 6개국이 포함돼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른바 ‘부산 에볼라’ 공포가 확산되기도 했다. 다행이라고 표현해야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라이베리아와 기니, 시에라리온 등 3개국은 대표단은 불참을 선언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의료진을 파견한다고 하니 국민들이 불안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 지난 16일 부산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열린 'itu 전권회의 에볼라 대응 모의훈련' ⓒ뉴시스

‘절차’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다. 정부의 이번 방침은 지난 16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밀라노 아셈(ASEM)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여러 나라로 확산되는 에볼라 바이러스 대응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 데 이어 보건 인력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것. 그리고 복지부는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의료진 파견에 대한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의료계 사이에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이같은 방침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더라도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충분한 여론수렴과 내부검토 과정을 거쳤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복지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실행안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자원자 유무를 묻는 질문에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하겠다”면서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릴 기회를 별도로 갖겠다”고 답했다. 파견 규모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오늘 중 어차피 브리핑이 있기 때문에 그때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쳤다 해도 ‘에볼라 공포’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을 감안해 이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복지부가 파견방침을 발표하고 그 다음에 관계부처 회의가 진행된 것도 절차가 뒤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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