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11-26 17:57 (목)
재계 부는 인문학 바람, ‘유행’ 넘어서려면
재계 부는 인문학 바람, ‘유행’ 넘어서려면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10.20 14: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문학경영①] ‘혁신 소스’로 각광…너도나도 인문학 대열

[더피알=문용필 기자] 인문학 열풍이 거세다. 인문학을 테마로 한 서적들이 서점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지역 도서관에서부터 백화점 문화센터에 이르기까지 인문학 강좌들이 줄줄이 큰 인기다. 무한 경쟁 시대에서 잊고 지낸 자아 성찰과 삶의 방향성을 찾기 위한 니즈들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트렌드에 민감한 재계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인문학을 접목한 기업 활동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기업들의 ‘인문학적 움직임’은 과연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는 것일까. 이른바 ‘인문학 마케팅’의 허와 실을 짚어본다.

인문학(人文學)은 일반적으로 ‘사람에 대한 학문’ 혹은 ‘삶에 대한 학문’으로 정의된다. 어학, 문학, 철학, 사학 등의 학문들이 범주에 포함된다. 경영학이나 과학, 공학, 정치학 등에 비해 실용적인 측면이 적다는 인식 때문에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던 학문이기도 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학자가 되지 못한다면 취업이 쉽지 않은 전공이라는 편견 때문. 즉,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게 되면서 실용성이 다소 떨어져 보이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멀어져 버린 것이다.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면 ‘천덕꾸러기’였던 인문학은 최근 들어 마치 ‘백조가 된 미운오리새끼’처럼 화려하게 부활했다.

서고나 연구실, 혹은 강단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았던 인문학자들이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가 하면 역사와 문화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역사강사들이 배경지식을 설명하는 코너, 혹은 영상을 별도로 준비하기도 한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지난 4월 인문학대중화사업에 작년 대비 2배 이상으로 늘어난 총 60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일철 동의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후기 정보사회에 들어오면서 인성이 몰락되고 해체되고 부재됐기 때문에 인성을 회복해보자는 그런 노력의 차원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복원되는 것”이라고 바라봤다.

우리사회에 부는 이른바 ‘인문학 열풍’을 타고 가장 보편적인 ‘이익집단’으로 상징되는 기업들조차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름 있는 기업들은 앞다퉈 인문학 강좌를 개최하고 인문학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이제 역사 등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이 필수요건처럼 돼버렸다.

이처럼 기업들 사이에서 ‘인문학 바람’이 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기업들이 또다른 원동력을 찾기 위해 인문학에 시선을 돌린 것이라는 의견들을 내놓고 있다.

장문석 영남대 사학과 교수는 “최근엔 혁신이 사회적인 키워드인데 혁신의 아이디어를 끌어낼 수 있는 소스는 굉장히 한정돼 있다. 그런 면에서 인문학이 혁신적 아이디어를 이끌어낼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원천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며 “(어찌 보면) 인문학이 마지막 원천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인수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회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세상을 보면 현상만 보이게 돼 있지만 (기업에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지나치게 사회과학적인 지식이 일반화 됐구나. 이 지식으로는 기업이 환경을 헤쳐 나가기에 부적절하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인문학을 노크하게 된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재계 CEO들도 인문학 삼매경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2011년 발간한 보고서 ‘인문학이 경영을 바꾼다’에 따르면 국내 CEO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97.8%가 인문학적 소양이 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채용할 의사가 있다는 답변도 82.7%에 달했다.

해당 보고서가 작성된 시점이 3년 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 ‘인문학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전부터 이미 상당수 기업경영자들이 기업활동에 인문학을 접목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인문학이 접목된 기업 활동을 CEO가 직접 주도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가장 좋은 예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4년 전 경영일선에 전면 나서면서 인문학과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활동 확대를 지시했다는 것이 신세계 측의 설명이다.

정 부회장은 “고객제일은 단순히 고객을 친절하게 편히 모시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의 핵심이 ‘사람’이라는 것”이라며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의 품성에 밑바탕을 둔 인문학적 소양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 지난 4월 열린 신세계 ‘지식향연’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에 나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사진제공:신세계그룹)

그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신세계는지난 3월 인문학 전파에 매년 2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올해를 인문학 전파의 원년으로 삼고,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전국 10개 대학에서 1만2000여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식향연을 진행했다.

참가 대학생 중 보다 깊이 있는 인문학 공부를 원하는 이에게는 ‘인문학 청년 영웅’에 도전할 기회를 부여했는데, 최종 선발된 20여명의 청년 영웅에게는 인문학의 중심지를 직접 방문하는 그랜드 투어 기회 제공, 신세계 입사 지원시 가점 부여, 소정의 장학금 지급 등의 혜택이 주어졌다.

이에 더해 정 부회장은 지난 4월 연세대에서 열린 첫 번째 지식향연에 직접 강연자로 나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했다. 단연 신선한 행보였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사색하지 않고 검색하는 우리가 당면하게 될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기회도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며 “‘왜’가 없는 ‘어떻게’에 집중하며 쏠려가던 우리를 회복시켜줄 힘이 인문학”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최고경영진이 인문학을 경영에 접목시키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경영회의에서 “역사관이 뚜렷한 직원이 자신과 회사를, 나아가 국가를 사랑할 수 있다”며 “뚜렷한 역사관을 갖고 차를 판다면 이는 곧 대한민국의 문화도 같이 파는 것이고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의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세계 고객들에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를 적극 알릴 수 있도록 직원들의 역사교육을 철저히 시행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역사콘서트’라는 이름의 인문학강연을 실시한 바 있다.

SK C&C는 정철길 사장이 취임한 2011년부터 임원 및 팀장의 인문학적 지식과 교양함양을 위해 인문학 사내세미나를 진행해왔다. 지난해에는 창의와 소통의 인문학 토크콘서트인 ‘행복콘서트’를 개최했는데, 정 사장은 직접 ‘CEO가 들려주는 오페라의 유령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첫 강연을 진행했다.

CEO를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연들도 늘어나고 있다. 부경대학교는 ‘CEO행복 인문학 콘서트’를 진행했으며, 한국해양대도 CEO와 전문직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CEO인문학 아카데미’를 열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2012년 인문학 저서를 통해 통찰력을 키우고 이를 경영활동에 접목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CEO독서아카데미’를 개최했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