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8-16 10:43 (화)
“인문학은 슬로우푸드…조급함 경계해야”
“인문학은 슬로우푸드…조급함 경계해야”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10.21 16: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문학경영②] 인문학 관심 크지만 잘된 접목 사례 드물어

[더피알=문용필 기자] 최근 기업 신입사원 공채 트렌드도 ‘인문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뜩이나 ‘스펙쌓기’로 분주한 취업준비생들이 이제는 인문학적 소양까지 갖춰야 대기업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관련기사: 재계 부는 인문학 바람, ‘유행’ 넘어서려면)

삼성과 현대차, SK, LG, 포스코, GS, CJ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올 하반기 공채를 실시하면서 평가에 한국사 문항을 포함하거나 한국사 관련 자격증 소지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했다.

▲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올 하반기 공채를 실시하면서 평가에 한국사 문항을 포함하거나 한국사 관련 자격증 소지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했다. 사진은 지난 12일 삼성그룹 공채 직무적성검사를 마치고 고사장을 나서는 수험생들 ⓒ뉴시스

이에 대해 장문석 영남대 사학과 교수는 “어차피 테크니컬한 스킬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이는 앞으로도 재교육이 필요하지만, 특정 개인이 가진 가치나 국가관은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라며 “(기업들이) 그런 부분을 비중 있게 보겠다는 추세는 굉장히 환영할만한 일이다. 앞으로도 역사관이나 국가를 바라보는 건강한 시각을 측정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심층적으로 개발됐으면 좋겠다”고 긍정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기업들의 인문학 행보에는 비교적 쏠쏠한 홍보효과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홍보계 한 관계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업들이 인본주의적인 경영을 한다는 인상을 소비자들에게 주어 기업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김일철 동의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마음속에서 일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인문학적인 방법들을 기업 이미지 제고에 활용하면 분명 효과는 있을 것”이라며 “보다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인문학의 진정성에 다가갈 수 있는 방향으로 활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문학에 대한 여러 분야의 관심, 재조명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문제는 강연이나 채용전형, 혹은 인문학에대한 메세나(Mecenat) 등을 제외하면 인문학을 접목한 기업 활동이 우리나라에서는 일반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두산그룹의 기업슬로건 ‘사람이 미래다’나 인간중심철학이 묻어나는 삼성생명의 ‘생명의다리’ 캠페인처럼 인문학적 코드가 반영돼 구체적인 결과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문학적 철학이 반영된 제품이나 마케팅 활동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재계에 부는 인문학 열풍이 단지 트렌드에 그치지 않겠느냐는 우려 섞인 시선들이 나타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 김근배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이야기한 것처럼 ‘왜’라는 고민을 항상 해보고 (기업 활동에) 인문학을 접목해야 하는데 기업들이 그러는 것 같진 않다”며 “언론에서 이렇게 (인문학 열풍이라고) 하니까 바람에 휘날리듯 하는 그런 인문학이 오래 지속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일철 교수는 “요즘 기업들 (인문학 접목)이나 인문학 강좌를 보면 자꾸 고전을 그대로 끌고 온다. (고전을 쓴) 그분들이 살았을 때의 환경과 지금 우리가 사는 환경을 대비하면서 (인문학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가치만 끌어다가 오늘날에 붙이려고 하니 안 되는 것이다. 인문학에 대한 오해”라고 말했다.

유행? 혁신? 인문학을 둘러싼 오해

해외에서는 기업 활동, 혹은 경영에 인문학을 실질적으로 접목하려는 노력들이 보다 활발하게 일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애플이다.

애플의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생전 “기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철학은 애플의 DNA에 내재돼 있다. 가슴을 울리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문학과 결합된 기술”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리고 잡스의 이같은 철학은 아이폰 등 심플한 디자인을 가진 애플의 제품에 녹아있다는 평가다. 이런 잡스의 생각과 행동이 우리나라에 대중인문학 열풍을 불어넣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 “가슴을 울리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문학과 결합된 기술”이라는 명언을 남긴 애플의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 ⓒ뉴시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 ‘인문학이 경영을 바꾼다’에 따르면 IBM은 미래전망을 위해 자연과학, 공학자는 물론 인문학자가 포함된 전담부서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야후는 심리학과 문화인류학 등의 인문학자로 구성된 팀을 통해 네티즌들이 어떤 광고에 반응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인텔은 지난 2010년 미래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기술의 발전방향 및 인간과의 소통방식 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상호작용 및 경험 연구소(Interaction&Experience Research)’를 설립했는데 문화인류학 박사인 제네비브 벨 소장의 주도하에 구성된 4개 팀에는 엔지니어와 소프트웨어 전문가, 하드웨어 전문가 등은 물론, 인류학자, 심리학자, SF 소설작가까지 다양한 인력이 포진했다.

국내에서도 인문학과 기술을 결합한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는 전자기술기업이 운영하는 조직임에도 인문학 전공자들이 상당수 배치돼 있다. 다양한 분야의 가치와 지식을 융합하고 인문학적 아이디어를 반영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인문학적인 접근은 전 세계적인 추세로 기업 활동에 있어 하나의 필수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기술 중심’에서 ‘사람중심’으로 바뀌어야 소비자들이 반응한다는 것을 기업들이 감지하고 있는 셈이다.

김근배 교수는 “19세기에 동도서기(東道西器·동양의 정신을 유지하되 서양 기술을 받아들이자는 의미)를 외쳤을 때를 되새겨야 한다. 그때는 (학문이) 전부 인문학이었는데 왜 서양의 과학기술을 배우자고 했을까. 그리고 왜 지금은 이와 반대로 갈까”라고 물으며, “과거 과학과 기술이 정신문제까지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해결이 안 된다는 자각 하에 인문학을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인수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 있었다면 획일화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획일화된 사고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방향으로 인문학이 미션을 해줘야 한다”며 “기업들이 위기를 돌파하려면 새로운 기업가 정신을 논의하고 그것을 교육해야한다. 그것이 되지 않으면 우리 기업의 앞날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비즈니스 환경이 ‘획일화’로는 풀리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치와 생명 회복 전제돼야  

기업들이 향후 인문학에 접근한 시도를 하려면 어떠한 측면을 고려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시간’과 ‘인내’를 강조한다.

장문석 교수는 “인문학이라는 것은 일종의 슬로우 푸드와 유사하다고 본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장 교수는 “인문학적인 다양한 연구결과가 생산되는 과정 자체도 시간이 필요하고 그런 것이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숙성되는 기간도 상당히 필요하다”며 “그런 부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문학을 통해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는 조급함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일철 교수는 “오늘날 인문학이나, CSR, 공헌활동 같은 말이 나오는 근본에는 산업혁명 이후 분업하면서 말살된 가치나 생명을 회복하려는 운동이 바탕에 있는데 (일부 기업들은) 그것을 모르고 마케팅의 한 테크닉으로 인문학을 불러들인다”며 “가치와 생명의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인수 교수는 “(인문학이) 비즈니스에 승차를 하려면 철학이 도입돼야 한다. 인간다움과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관에 대한 질문이 경영전반에 흘러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른바 ‘인문학 열풍’이 하나의 단기적 트렌드나 미풍으로 스쳐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기업들의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