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이 한 일을 모두가 알게 하라
오른손이 한 일을 모두가 알게 하라
  • 조성미 기자 (dazzling@the-pr.co.kr)
  • 승인 2014.10.2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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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힘 덕분에…곳곳으로 전파되는 새로운 나눔문화 ‘착한 릴레이’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Pay It Forward, 2000)>의 주인공 트레버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오라는 선생님의 말에 ‘사랑나누기’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3명을 돕고 그 3명이 또 다시 3명을 돕는 나눔이 계속되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서로를 도와주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적 상상력이 2014년에 비로소 현실이 됐다.

[더피알=조성미 기자] 지난 여름 세계적으로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 열풍이 불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ALS(일명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얼음물을 뒤집어쓰거나, 100달러를 ALS협회에 기부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캠페인에 동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는 김에 도전과 기부를 두 가지를 다 하겠다고 밝혀 나눔의 마음을 배가시켰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24시간 안에 인증영상을 올리고 다음 주자 세 명을 지목하는 형태로 이뤄짐에 따라 세계 곳곳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관련기사 :  ‘대박 헬스컴’ 결정지은 핵심포인트)

▲ 루게릭병 환우를 위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 열품에 국내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동참했다. (왼쪽부터) 남정열 광양소방서장과 구기현 상명대 총장, 골프선수 장하나.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이들이 대거 동참함에 따라 여러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캠페인의 취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놀이’처럼 요란스럽고 장난스러운 행동이 눈살을 찌푸린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이에 더해 최초 이 캠페인을 시작한 미국에서는 모금된 금액이 환우들을 위해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착한 릴레이 열풍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차가운 도전’이 뿌린 희망 씨앗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타인을 위해 기꺼이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기부에도 참여하는 ‘착한 일’이 릴레이로 확산됐다는 점은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공익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실제 이러한 착한 일 릴레이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도록 꾸준히 이어가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한 누리꾼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사회공헌 서비스 ‘희망해’를 통해 루게릭 환자를 위한 모금 활동을 제안했다. 이 누리꾼은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단순히 얼음물 샤워가 아니라 루게릭병에 관심을 갖고, 루게릭 환우들의 고통을 이해하며 그들을 돕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며 아이스 버킷 챌린지 이벤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희망의 불씨가 돼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 열풍 이후 페이스북 상에서는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감사 릴레이’도 진행됐다. SNS를 통해 짧은 편지나 일기처럼 고마웠던 일을 이야기하고 감사의 대상을 태그하는 형식으로, 3일 동안 하루에 3가지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또 감사 릴레이를 이어갈 두 명 이상을 지목하는 형식이다.

이런 손쉬운 방법 때문에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요란함에 수줍어하던 이들도 쉽게 동참했다. 지인의 추천으로 감사 릴레이에 동참했다는 20대의 한 여성 직장인은 “교회 지인에게 감사 릴레이를 지목받아 미션을 수행했다”며 “감사 기도에 익숙한 이들을 중심으로 교회 커뮤니티 내에서 이 릴레이가 퍼져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최근엔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방식을 차용, 잠에서 깬 모습으로 셀카를 찍어 SNS에 올리고 3명을 지목하거나 기부금을 내는 ‘웨이크업콜(#WakeUpCall)’ 캠페인이 미국을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캠페인을 통해 모인 기부금은 유니세프를 통해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된다. (관련기사: ‘웨이크업콜’, 제2의 아이스 버킷 챌린지 될까?)


물질적 베풂? 감정적 나눔!

온라인상에서의 착한 릴레이가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우리 주변에서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활동도 있다. 바로 ‘미리내운동’이다.

미리내운동은 100여년 전 이탈리아의 남부지방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남의 몫까지 미리 계산하는 일종의 커피 기부 운동인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 맡겨 놓은 커피)’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 해외에서 유행하고 있는 서스펜디드 커피를 한국식으로 변형해 한 잔의 커피가 밥 한 끼로 재해석된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음식 값을 ‘미리낸다’는 뜻의 미리내는 순우리말로 ‘은하수’를 뜻한다. 작은 나눔의 실천으로 반짝이는 별이 되자는 미리내운동은 자발적인 참여와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준호 미리내운동본부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는 선배가 후배 밥을 사주는 것이 너무나 흔한 일이고, 또 해병대는 군복만 봐도 밥을 먹여줄 정도로 밥 사주는 문화가 퍼져 있는데 이 대상을 ‘누구나’로 확대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미리내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업종 제한이 없다. 일반 음식점에서 미리 계산된 밥을 먹는 것은 물론 이제는 떡집, 제과점, 카페 등 먹는 것을 넘어 속옷이나 비누, 사진관, 동물용품점, 목욕탕 등 그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 미리내 운동에 참여하는 가게에는 로고 ‘파랑별이’가 그려진 현판과 알림판, 쿠폰, 쿠폰박스 등의 물품이 제공된다(왼쪽). 9월 기준 전국으로 퍼져나간 미리내 가게 현황(사진출처: 미리내운동본부 홈페이지 및 블로그)

또 업주가 미리내운동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만 밝히면 현판과 필요 물품을 제공하는 형태로 참여도 쉬워 전국적으로 지난 9월 기준 310여개의 가게가 참여하고 있다.

김준호 대표는 “미리내운동은 중앙사무국에서 어떤 활동을 하기 보다는 여기에 참여하는 사장님들을 중심으로 주변 상인들로 번져나가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100호점이 열리기까지 걸린 시간보다 200호점이 개설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짧고, 또 300호점까지의 시간이 더욱 단축되는 등 그 확산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미리내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개성에 따라 소소한 재미가 더해지기도 한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자소서 쓰느라 지친 취준생, 먹고 가세요’ ‘OO과 선배가 후배에게 쏜다’ ‘빨간옷 입은 분만 드세요’처럼 특정인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좋아하는 학생에게 고백하기 어려워, 먹을 거 남기고 마음을 전한 경우도 있고 ‘솔로인 사람만 먹어라’라는 메시지와 함께 밥값을 미리내두니 ‘먹고 나서 여자친구 생길 것 같아요’ 같은 화답이 돌아오는 재미있는 사례도 있었다”고 소개한다.

이런 이유로 미리내운동은 단순히 소외된 이웃에게 베푼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힘든 시기를 마주할 수 있고 이럴 때 사람들이 서로에게 위로가 됨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누구일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것은 결국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오는 날도 있다는 인생사를 담고 있다.

이렇게 소소한 나눔 실천으로 항상 마음은 있지만 행하기 부담스러웠던 이들도 거스름돈을 안 받고 다른 이를 위한 음식값으로 미리내두거나, 하나 더 구입하는 것으로 쉽게 실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생활 속에서 나눔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김 대표는 “미리내운동은 구호단체처럼 소외된 이웃을 돕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지만, 운동에 참여하는 사장님들이 지역에 어려운 이들을 발굴하고 스스로 도울 방법을 찾아간다”며 “사소하게 고마움을 느끼고 그래서 또 다른 이에게 선행을 베풂으로써 나눔의 감정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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