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를 보면 흑백 세상이 컬러가 됩니다”
“위를 보면 흑백 세상이 컬러가 됩니다”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4.10.2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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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라이브러리] 동화작가 정진호

소통라이브러리는 우리 사회의 소통문화를 새롭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자유롭게 협력하는 코너로,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의 이종혁 교수(연구원 장종원)와 함께 진행합니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소통문화를 창출하고 이끌어가는 숨겨진 인물들이 인터뷰의 주인공입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동화 속 주인공을 꿈꾼다. 그 어떤 모험과 역경에도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경험하지 못한 설렘을 가져다준다. 일상의 빠듯함을 아는 순간, 우리는 동화와 멀어진다. 한 고개 넘어가면 또 다른 고개가 나오는 삶을 살아내기에 급급하다. 앞을 보느라 곁을 못 보는 현실. 그런 어른들에게 동화작가 정진호 씨가 말을 건넨다. “위를 봐요!” 

▲ 동화작가 정진호. 사진:성혜련 기자

[더피알=강미혜 기자]  책 <위를 봐요!>는 건축학도에서 동화작가로 인생진로를 튼 정진호 씨의 작품이다. 몸이 아파 항상 혼자 떨어져 세상을 내려 보던 ‘수지’와 앞만 보며 가다 위를 올려다 본 한 아이의 ‘작은 소통’을 그려냈다. 사소한 생각에서 시작된 행동이 누군가의 삶과 마음, 그리고 세상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따뜻한 이야기다.

책은 작가의 기억과 전공이 결합된 독특한 시점으로 독자와 마주한다. “어렸을 때 화상을 입어 몇 년 간 병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어요. 휠체어 탄 아이와 목발을 짚은 친구와 함께 병원을 놀이터 삼았죠. 지금도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스치면 그 시절이 어렴풋 떠오르곤 해요.” 몸이 불편한 아이가 동화 속 주인공이 된 이유다.

평면의 그림은 사람의 정면이 아니다. 건축기법을 적용, 건물 위에서 길거리를 내려다보는 각도로 머리 위에 시선이 꽂히게 했다. “일반 사람이 건축평면도를 보면 그 안에 그려진 사람이 까만 개미 같다고들 해요. 건축을 공부하는 제 눈엔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은 개미라고 보는 게 신기했어요.” 그 관점에서 출발했다. 세상을 위에서 아래로 바라 볼 수밖에 없는 아이에겐 사람이 개미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 책 <위를 봐요>는 사소한 생각에서 시작된 행동이 누군가의 삶과 마음, 그리고 세상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로, 건축학도였던 작가는 그림에 건축기법을 적용했다. 이미지 제공 : 현암사(은나팔)
<위를 봐요!>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조금은 특별한 동화인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어렸을 때 병원 신세를 많이 져서 병원에 있는 아픈 분들의 마음을 잘 알아요. 장애인에 대한 관심도 많고요. 몸이 불편한 수지를 향해 한 아이가 고개를 들어 얼굴을 마주하고, 이윽고 바닥에 누워 온전히 자신의 몸을 다 보여줍니다. 네가 본 사람, 세상의 진짜 모습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거죠. 아이의 행동을 이상하게 바라보던 이들도 하나둘씩 동참해 여러 사람이 수지를 위해 바닥에 드러눕는 순간, 흑백의 세상은 컬러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게 작은 노력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배려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원래부터 동화에 관심이 많았던 건가요.

아이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동화책을 주로 읽었습니다. 다친 오른손을 대신해 왼손으로 그림을 그렸고요. 아팠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자라면서 쭉 취미가 된 거죠. 처음 동화를 썼던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해요. 이후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틈틈이 글을 써왔습니다.

건축학도에서 동화작가로 변신하셨습니다. 언뜻 봐도 건축과 동화는 교집합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진로를 바꿔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요.

어떻게 보면 막 결정한 거예요.(웃음) 사실 건축도 그랬습니다. 고등학교 때 수학이 좋아 무작정 이과를 선택했고, 어떤 전공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건축가이신 작은아버지께서 저술이나 그림 등 예술분야에서도 활동하시는 걸 보고 저거(건축) 하면 재밌겠다 싶어서 건축과를 지망했어요. 불쑥 선택한 진로였지만 대학 2~3학년 때까진 정말 건축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다 군대를 제대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제가 있던 부대는 정말 극소수 인원이 24시간 한 곳을 지켜야 하는 외로운 곳이었는데요, 쉬는 시간 할 수 있는 일이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것밖에 없어서 무작정 글을 썼습니다. 제대할 때쯤 되니 A4용지 500장 정도 되더라고요. 그러고 나니 정말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군대에서 철든 게 아니라, 글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거군요.(웃음) 그렇다고 해도 전공과 전혀 무관한 직업을 택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운 좋게도 제가 늘 바라던 건축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됐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 있으면서 건축이 제 길이 아니라는 점을 느꼈습니다. 건축은 수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긴 시간을 투자하고 협력해 나오는 결과물입니다. 과정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끼치는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어요.

당시 그런 작업의 제일 말단에서 일하면서 ‘개인으로는 이 일(건축)에서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없겠구나’ ‘내가 내 것을 크게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건축보다는 이야기를 만드는 길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됐습니다.

동화작가답게 지난해 선보인 졸업작품도 아주 특별했다고 들었습니다.

건축을 동화로 풀어냈습니다. 건축과 졸작(졸업작품)은 보통 도면과 모형으로 만들어지는데, 저는 모형 없이 동화의 장면을 도면화시켰어요. 처음엔 과 교수님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반대하셨어요. 모형 없인 작품이 안 될거라고. 그래도 지도교수님이 믿어주신 덕분에 마무리할 수 있었고 결과도 좋았습니다. 2등으로 졸업했으니까.(웃음)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던 작품이라 새롭다는 반응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론 졸작을 통해 건축과 그림 사이의 싸움이 화해될 수 있었다고 봐요. 부모님의 반대를 털어버릴 수 있었거든요. 동화작가로서 프리랜서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선 당연히 만류셨습니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사회적 시선에서 냉정하게 보면 비정규직인 거니까요. 그러던 와중에 제 졸작을 보시곤 1차로 (화가) 누그러지셨고, 올해 책이 나오면서 완전히 누그러지셨습니다.(웃음)

동화는 우리가 일상에서 웃고 울었던 사소한 기억들을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만큼 동화작가는 작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작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분들인 것 같아요. 그게 동화의 매력인 건가요.
 
동화는 하나의 메인스토리와 함께 수많은 서브스토리가 있어요. 저는 여러 번 읽어야 볼 수 있는 ‘장치’들을 곳곳에 숨겨놔요. 서브스토리 즉, 작은 이야기들을 발견하는 소소한 재미를 주기 위해서죠.

▲ 정진호 작가는 여러 본 볼수록 새로운 이야기가 발견되는 동화를 지향한다.
정 작가는 출간을 앞두고 있는 또 다른 동화를 통해 작은 스토리가 주는 재미를 직접 눈으로 보여줬다. 그가 일러스트레이터로 참여한 책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투명 나무숲. 어느 날 한 나무가 색을 바꾸니 주변 나무들도 따라 색을 바꾸고, 그러면서 숲 전체가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노란 나무숲이 되면 바나나가 열리고, 주황 나무숲에선 호박이, 핑크 나무숲으로 변신하면 사탕이 열리면서 종국엔 바다 속 세상이 펼쳐지는 동화다운 엉뚱한 상상이 녹아 있다.

그 과정에서 정 작가는 시간의 흐름, 공간의 변화, 숲속 생명체의 반응과 움직임 등 다양한 서브스토리를 그림으로 표현해 메인스토리 곳곳에 깨알같이 심어 놨다. 여러 번 봐야 볼 수 있는 스토리들이다.

“보통 어른들은 동화라고 하면 슥 훑어보면서 ‘귀엽네’ 정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제 책을 두 번, 세 번, 네 번… 가급적 여러 번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열 번 정도 읽으면 그 안에 숨겨진 내용이 다 발견되니까요.(웃음)”


실제로 보면서 설명을 들으니 동화 속에 숨겨 놓은 장치들이 정말 많네요. 어른인 제가 봐도 재미있고요. 이런 걸 담기 위해선 사물이나 현상을 보는 눈이 굉장히 섬세해야 할 듯싶습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평소 스쳐지나가기 쉬운 걸 캐치해서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부분들을 관찰하고 그림을 풀어내는 데엔 건축공부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훈련시키는 수업이 많거든요. 그런 점에서 건축과 동화는 별개라고 생각치 않아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다 담고 있으니까요.

빠르게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게 되는 대목입니다. 작은 것에 주목하는 시선의 변화, 약자를 배려하는 태도의 전환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동화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일깨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 하셔야 할 텐데, 어떤 계획들을 갖고 계신가요.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이 일을 해 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국은 그림이나 글로써 프리랜서가 살기 어려운 환경이잖아요. 간혹 저처럼 프리랜서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목표가 뭐냐고 물어봐요. 그러면 이렇게 얘기하죠. 하루하루 살아남는 거라고.(웃음)
 
한국에서도 작은 이야기들을 하면서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일단은 생존을 해야 더 할 말이 있는 거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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