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삼킨 국산 다윗들의 리브랜딩
골리앗 삼킨 국산 다윗들의 리브랜딩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4.10.27 1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외 본사 손에 쥐고 글로벌 시장 큰걸음…‘브랜드 포지셔닝’에 각별한 주의


[더피알=박형재 기자] MCM과 미스터피자 등 해외 유명 브랜드를 인수해 글로벌 업체로 성장해가는 국내 기업들의 활발한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탄탄한 브랜드 가치에 토종 기업들의 경영 노하우를 더해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이다. 해외브랜드를 수입했던 우리 기업들이 아예 해외 본사를 인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탁월한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세계적 골리앗을 삼킨 토종 다윗들의 도전을 살펴봤다.

머리가 꼬리를 삼킨 사례들

해태제과는 지난 7월 134년 전통의 이탈리아 젤라또 아이스크림 회사인 ‘빨라쪼 델 프레도’와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해태는 이번 빨라쪼 인수로 2020년까지 연매출 1000억원을 달성해 국내외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을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해태는 앞서 2008년부터 빨라쪼 국내법인을 운영하며 사업성을 검토해왔다.

‘디저트 본고장’인 유럽 브랜드를 사들인 경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롯데제과는 2008년 벨기에 초콜릿 브랜드 ‘길리안’을 인수했다. 롯데제과의 길리안 인수 이유는 프리미엄 초콜릿 라인을 확보하고 해외 시장의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서다. 길리안은 이탈리아 페레로 로셰, 스위스 린트와 함께 세계 3대 명품 초콜릿 회사로 손꼽힌다. 롯데제과는 ‘길리안’을 전면에 내세운 디저트카페도 준비 중이다.

▲ 이탈리아 젤라또 아이스크림 회사인 ‘빨라쪼 델 프레도’를 인수한 해태제과의 모델들이 로마 콜로세움 모형 앞에서 ‘빨라쪼’ 아이스크림을 선보이고 있다.

2012년에는 스무디킹 한국법인이 미국 본사를 인수, ‘꼬리가 머리를 삼킨’ 사례로 평가됐다. 스무디킹은 건강음료로 인식되면서 본고장인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큰 인기를 끌었고,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역인수에 성공했다.
 
국내 피자 브랜드로 알고 있는 미스터피자 역시 상표권 인수를 통해 가맹본사로 거듭난 사례다. MPK그룹 정우현 회장은 1990년 일본에서 미스터피자 브랜드를 들여와 국내 매장을 늘려 오다 2010년 일본 상표권까지 전격 인수했다.

패션업계 M&A 큰손 등극

유행에 민감하고 명품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패션·뷰티업계는 인수합병(M&A)이 특히 활발하다. 중국에서 국민 명품으로 통하는 MCM의 경우 태생은 독일이지만 현재 주인은 한국 기업이다. 국내 판권을 갖고 있던 성주그룹이 지난 2005년 아예 독일 본사를 통째로 사버렸기 때문이다.

성주그룹의 품에 안긴 뒤 MCM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인수 당시 600억원 규모였던 글로벌 매출은 지난해 5000억원으로 8배 이상 뛰었다. 성주그룹은 이 기세를 몰아 루이비통이나 구찌 등 글로벌 브랜드들을 넘어서겠다는 계획이다.

▲ 신원그룹이 2012년 인수한 이탈리아 브랜드 ‘로메오 산타마리아’ 가방.
신원그룹은 2012년 이탈리아 명품 피혁 브랜드인 ‘로메오 산타마리아’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샤론 스톤, 마돈나, 톰크루즈, 아놀드 슈워제네거 등 기존 산타마리아의 수많은 단골고객까지 흡수한 셈이다.

이랜드는 M&A로 사들인 해외 브랜드만 7개에 달한다. 이탈리아의 라리오(2010년)·만다리나 덕(2011년)·코치넬리(2012년)·K-SWISS(2013년) 등이 대표적이다. 신발, 잡화 등 기존에 보유하지 않았던 부문을 확충해 브랜드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011년 프랑스 향수 브랜드 ‘아닉구딸’을 인수했다. 화장품 사업에 비해 다소 취약했던 향수 부문을 보완,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한 것이다.

태진인터내셔널 역시 루이까또즈의 라이선스를 들여와 국내에서 제조·유통하다 2006년 프랑스 루이까또즈 본사를 인수했다.

이처럼 국내 기업이 해외브랜드를 잇따라 사들이는 이유는 사업성과 브랜드 이미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미 명품 반열에 오른 브랜드의 인지도를 활용하면 글로벌 시장에 쉽게 진출할 수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국내 브랜드로 미국, 유럽 등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을 뚫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며 “해외 브랜드를 통하면 역사와 인지도, 브랜드 충성도는 물론 유통망까지 흡수할 수 있어 거부감 없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이점은 브랜드 활성화까지 마케팅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규 브랜드를 론칭해 소비자에게 인식시키고 사업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기까진 오랜 시간과 마케팅 비용이 필요하다”면서 “이미 시장에서 인정받는 브랜드를 들여오면 그런 수고를 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 정체기에 들어간 기업이 M&A로 돌파구를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해태가 빨라쪼를 인수한 이유는 가맹사업 때문이다. 최근 해태는 매출 정체와 마케팅 부담 증가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태다. 이에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빨라쪼를 새 수익원으로 삼고 국내외에서 가맹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급 브랜드화 전략을 쓰기도 한다. 2012년 제일모직은 수천만원대 악어가죽 가방으로 유명한 콜롬보를 인수했다. 이미 매출 상위에 있는 구호, 르베이지 등 내셔널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만 명품 브랜드 보유 기업이라는 타이틀과 제품 포트폴리오 확장이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이밖에 해외 브랜드가 가진 우수한 기술력을 공유해 제품력 강화를 꾀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국내 판권을 운영하다 해외본사의 상표권과 사업권을 인수한 경우 국내시장에서 입증된 브랜드 관리의 노하우를 글로벌 시장에 적용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을 유리하게 전개할 수 있다.

Made in Korea는 없다?

반면 무분별하게 해외브랜드에만 매달리는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브랜드를 역인수해 좋은 성적을 내고 있으나 정작 자체 브랜드 개발에는 소홀한 것 아니냐는 아쉬운 목소리가 나온다.

해외브랜드 인수에는 수백억원의 비용이 드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인수=성공’ 공식이 성립하려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새로운 사업군을 구축하는 등의 확실한 전략이 있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 mcm의 국내 판권을 갖고 있던 성주그룹이 지난 2005년 독일 본사를 아예 인수해 성장세 이어가고 있다. mcm 모델들이 2014 가을/겨울 컬렉션 ‘디지털 솔저’를 공개하고 있다.

해외 브랜드 인수는 마케팅 과정에서 혼선을 부를 수 있으므로 ‘브랜드 포지셔닝’에도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MCM은 한국에선 ‘한국브랜드’, 외국에선 ‘독일브랜드’로 모습을 바꿔 정체성 논란이 일었다. 국내에서는 세계 시장을 개척한 한국 패션의 선봉장으로 칭송받지만, 중국 등 세계시장에서는 브랜드에 한국 이미지가 묻어나지 않게 독일 태생을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을 쓰는 것이다.

MCM 관계자는 “브랜드 마케팅 전략을 독일 브랜드로 가져가고 있다”며 “한국브랜드로 불리는 것은 이미지가 희석돼 조심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와 관련 PR업계 한 관계자는 “고급스런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론칭 초기에 해외 브랜드처럼 포지셔닝하는 브랜드도 있지만, 나중에는 국산 브랜드지만 장점이 있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투명하게 소통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헌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수합병을 통한 성장은 기업의 브랜드개발 역량을 저해시켜 장기적으로 볼 때 지속적인 성장을 오히려 방해할 수 있다. 20대 청년을 입양해서 키우는 데만 익숙해지면 정작 자식을 낳았을 때 어떻게 키워야할지 모르게 되는 셈”이라며 “브랜드 개발 과정에서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쌓인 노하우가 결국 100년의 브랜드 역사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