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독설과 희망, 고민이 공존한 ‘신해철의 노랫말’
세상을 향한 독설과 희망, 고민이 공존한 ‘신해철의 노랫말’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10.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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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로 대중과 소통했던 뮤지션을 기억하며

[더피알=문용필 기자] 신해철이 하늘로 떠났다. 불과 한 달 전만해도 트위터에 익살스러운 글을 남기며 팬들과 소통하던 사람이, 언제까지나 ‘마왕’으로 존재할 것만 같았던 사람이 그렇게 갑작스레 가버렸다. 그가 어린시절 병아리 ‘얄리’를 통해 죽음을 배웠듯, 그를 아끼던 사람들에게 ‘인생의 허망함’을 가르쳐준 채 말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그는 영면에 들어간다.

▲ 지난 27일 세상을 떠난 故 신해철의 빈소 ⓒ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에게 신해철은 특별한 기억이다. 그는 당대의 트렌드를 이끄는 ‘스타일 아이콘’이었다. 많은 소년들이 ‘Many guys are always turning your round’로 시작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그의 영어랩을 뜻도 모른 채 중얼거리거나 한쪽으로 곱게 가르마를 탄 그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했다.

‘위스키, 브랜디, 블루진, 하이힐’이나 ‘니체의 상처입은 분노’ 같은 가사들은 왠지 모르게 ‘있어’보였고 라디오 프로그램 ‘밤의 디스크쇼’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저음과 인문학적 소양이 깊게 배인 달변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꽃미남’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댄디했던 외모는 지금의 지드래곤 못지않게 사춘기 소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기자도 그의 ‘트렌디함’을 동경하는 소년 중 하나였다. 생애 최초로 용돈을 털어 구입한 첫 음반도 그의 솔로 2집 앨범 <myself>였다. 데크가 하나밖에 없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통해 듣고 또 들었다. 23년이 지난 지금도 전 곡의 가사를 토씨하나 빼놓지 않고 외울 수 있을 정도다.

솔로앨범부터 넥스트(N.EX.T)까지, 그의 음반은 굳이 미리 들어보지 않아도 꼭 사야하는 아이템이었다. 애절한 발라드부터 헤비메탈, 테크노,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자신만의 색채로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천재적인 음악성, 그리고 저음과 샤우팅을 오가는 팔색조 보컬은 그의 디스코그라피를 빛나게 만들었다.

‘누굴 위한 발전이며 누굴 위한 진보인가’

무엇보다 신해철의 음악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단지 있어보이는 단어만 나열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당시의 세태상과 사회적 모순을 꼬집곤 했다.

▲ 신해철은 날카로운 돌직구처럼 시대의 모순을 비판했다.(자료사진) ⓒ뉴시스

동시대의 라이벌이자 6촌동생이기도 한 서태지나 ‘무한궤도’라는 공통 분모를 안고있는 그룹 015B도 사회적인 문제점을 노래했지만, 이들이 비교적 우회적인 방향으로 이를 표현했다면 신해철의 메시지는 마치날카로운 돌직구와도 같았다.

무한경쟁 사회를 숨가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을 ‘아침엔 우유 한 잔, 점심엔 패스트푸드’로 상징하면서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이라는 표현으로 군중속의 고독을 노래했다. 획일화된 교육현실에 대해 ‘각본대로 짜여있는 뻔한 인생의 결론 향해 생각 없이 발걸음만 옮긴다’(껍질의 파괴)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으로 대표되는 대형참사에 대해서는 ‘아득한 옛날엔 TV는 없어도 살아갈 순 있었다. 그나마 그때는 천장이 무너져 죽어가진 않았다’고 꼬집으며 ‘누굴 위한 발전이며 누굴 위한 진보인가’(세계의 문 part.2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라고 일갈했다.

‘인격도, 신분도, 품위도, 지식도 이젠 돈만이 결정하고 말해주는거니’(Money)라며 물질만능주의를 꼬집는가 하면 ‘이젠 살아남는게 목적인 시대는 갔다.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인 시대가 왔다’(Age of no god)며 시대의 혼돈을 노래했다.

정쟁으로 가득한 정치판을 바라보며 ‘복잡한 여의도에서 둥그런 지붕 안에서 서로가 멱살을 잡고 하루종일 놀고들 있다’(아들아, 정치만은 하지마)고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슈퍼콘서트 ‘내일은 늦으리’의 테마송 ‘더 늦기전에’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자칫 잘난 척 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거나 어찌보면 사람들이 거북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메시지였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실험성과 그의 뛰어난 음악성은 이를 효과적이고도 유치하지 않게 전달하는 좋은 매개체가 됐다. 그리고 그가 당시 노래한 메시지와 비판들은 꽤나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그러나 그의 음악속에 단지 통렬한 비판만 담긴 것은 아니었다. 그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노래하는 뮤지션이기도 했다. 각종 사회현안들에 대해 보수논객들과 맞짱을 뜨던 ‘100분토론’에서의 모습이나 정치, 사회분야와 관련된 여러 발언 등을 통해 ‘독설가’의 이미지가 굳어진 신해철이지만 따뜻함이 묻어나는 곡들도 적지않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아버지와 나 part.1)며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초라해지는 이 땅의 가장들을 대변했고 동성동본 금혼법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면서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를 불렀다.

▲ 신해철은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노래하는 뮤지션이기도 했다.(자료사진) ⓒ뉴시스

절망의 늪에 빠진 이들에게 ‘먼훗날엔 반드시 넌 웃으며 말할거야. 지나간 일이라고’(Hope)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고, 꿈을 꾸는 이에게는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말라’(해에게서 소년에게)고 충고했다. ‘때로는 미쳐보는 것도 좋아’(아주 가끔은)라는 말로 ‘개성있는 삶’을 살아갈 것을 조언하기도 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동시대 청년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곡들도 적지 않았다. 그의 첫 음반 <무한궤도 1집>에 수록된 ‘우리앞에 생이 끝나갈 때’에서는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라고 자문하며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간다’고 노래했다.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면서도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변하지 않겠다’(길위에서)고 다짐했다.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간다’며 불안함을 내비치면서도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는다’(나에게 쓰는 편지)고 인생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훨씬 더 적을 그때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세월에 떠다니고 있을까’(50년후의 내모습)라며 노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노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과 작별했다. 소중한 사람을 향해 ‘다신 제발 아프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정작 자신은 ‘단 하나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명곡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에게 작별인사를 건넨다. 굿바이, ‘마왕’. 부디 평안히 영면하소서.

처음 아무런 선택도 없이 그저 왔을 뿐이니
이제 그 언제가 끝인지도 나의 것은 아니리
시간은 이렇게 조금씩 빨리 흐르지만
나의 시간들을 뒤돌아 보면 후회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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