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식스 대란’, 예견된 사건과 정해진 사과
‘아식스 대란’, 예견된 사건과 정해진 사과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11.0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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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단통법 문제, 정부·국회는 책임 없을까

[더피알=문용필 기자] 용기에 물을 가득 채워 끓이면 언젠가 넘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민심도 마찬가지다. 특정 사안이나 정책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선가 분명히 문제로 터져나온다.

이 관점에서 지난 2일 새벽 발생한 ‘아이폰6 대란’을 해석할 수 있다. 출고가가 78만 9800원인 아이폰6 16G 모델이 일부 대리점 및 인터넷을 통해 10만원에서 20만원대의 가격에 판매되는 일이 발생했다. 누적돼 온 소비자 불만이 기형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관련기사: 단통법 시행 한 달, 오죽하면 ‘반란’이 일어났을까)

▲ 지난달 22일 ‘단통법 대폭 보완 및 단말기 가격 거품 제거, 통신비 획기적 인하 촉구’ 공동기자회견에서 펼쳐진 퍼포먼스 ⓒ뉴시스

지원금의 차별 지급 금지와 과다 지급 제한 등을 골자로 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즉 단통법이 지난달 1일 시행된 이후 처음 벌어진 ‘휴대폰 대란’이었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을 주고 휴대폰을 구매하는 ‘호갱’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법이지만 결국 법 시행 이전과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통법 시행 이후 각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정책이 급격하게 얼어붙으면서 휴대폰 구입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일선 휴대폰 판매점의 상당수가 ‘파리가 날리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단통법 이후 달라진 풍경 이모저모)

실제 단통법 시행 이후 방송통신위원회 홈페이지의 ‘단말기보조금 소통마당’ 게시판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단통법을 성토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소비자 뿐만 아니라 판매자들의 불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결국, ‘아이폰6 대란’은 불법을 감수하고서라도 고객을 유치하겠다는 판매점의 절박함과 조금이라도 더 싼 가격에 휴대폰을 구입하겠다는 소비자들의 니즈가 만들어낸 해프닝인 셈이다. 그리고 이는 단통법의 허와 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이 돼버렸다.

이통3사  “혼란 끼친 점 죄송”

이동통신 3사는 5일 공식 사과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SK텔레콤은 “이통시장 선도사업자로서 이러한 상황변화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고 일부 판매점 등에서 발생한 편법 영업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많은 이용자들께 불편과 혼란을 끼친 점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KT는 “일부 유통점이 경쟁 대응과정에서 시장 혼탁에 동조했다. 이는 당사로서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LG유플러스도 “일부 휴대폰 유통점에서 본사의 뜻과 지침에 상반되게 시장을 혼탁케 하고 고객에게 혼란과 불편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 3사는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에 나설 뜻을 밝혔다. SK텔레콤은 “재발될 경우 엄정한 내부조사를 통해 사내 관련자는 물론 관련 유통망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으며, KT는 “불법영업에 관련된 유통점에 전산정지, 단말공급 중단 등 강력한 조치를 즉각 취하겠다”고 밝혔다. LG유플러스도 “방통위의 사실조사에 적극 협력하고 조사결과 위법사항이 있을 시에는 관련자에 대해 엄중히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 지난달 17일 이통3사 및 휴대전화 제조사 사장단과의 단통법 관련 간담회에 참석한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과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뉴시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아이폰6 대란’은 이통사들만 탓할 수도 없는 문제다.

물론 이통사들이 대리점을 관리·감독해야 할 책임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단통법을 탄생시킨 주역들은 정부와 국회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단통법으로 인해 끓어오른 민심이 법 시행 한 달 만에 폭발해버린 상황에서 이들에게도 분명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정부의 사과가 전혀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법의 취지가 국민에게 이해되지 못하고 피부로 느끼지 못한 데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시행과정을 철저히 점검하고 추이를 지켜보면서 문제가 있으면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를 이끄는 최성준 위원장이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발언은 ‘사과’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최 위원장은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 ‘아이폰6 대란’과 관련해 “사실조사를 해서 그 결과에 따라 이동통신사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고 판매점에 대해서도 직접 과태료를 부과하게 된다”며 “이동통신사의 임원에 대해 책임을 가려 가지고 형사고발까지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 위원장은 “단말기 유통법에 긍정적인 효과들이 조금 나타나게 돼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에 이런 일이 벌어짐으로 인해 활성화되고자 하는 이동통신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됐다”며 “이번 사태에 대한 엄정한 조치를 취함으로 인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단통법 민심’은 부글부글 끓어넘치는데...

단통법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엄정한 법 집행’ 의사가 더욱 두드러진 대목이다. 이날 인터뷰에서 최 위원장은 단통법의 순기능을 역설했지만 소비자 혼란에 대한 별다른 사과는 없었다. 그저 “이런 법 위반 행정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매우 참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만 말했다.

이에 앞서 최 위원장은 지난달 17일 각 이통사와 휴대폰 제조사 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용자와 유통점이 느끼는 고통을 분담하려는 노력을 이통사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단통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이통사와 제조사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이를 두고 정부가 사실상 이통사들을 향해 보조금 상향조정을 압박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관치 경제’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입법주체’인 국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국회 역시 정부를 대상으로 질타의 목소리만 전할 뿐 별다른 사과는 없었다. 의석수가 5석에 불과한 정의당만이 지난달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채 법안을 통과시킨 잘못을 인정한다”고 했을 뿐이다. 이쯤되면 국회는 정부를, 정부는 이통사를 때리는 ‘먹이사슬’의 완성이다.

정부도 하루빨리 단통법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가시적이고 명확한 보완책을 내놓아야 한다. 휴대폰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호갱’이 아닌 ‘고객’으로 대접받기 위해선 현재의 단통법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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