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샐러리맨은 왜 ‘미생’에 열광하는가?
대한민국 샐러리맨은 왜 ‘미생’에 열광하는가?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11.0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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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승승장구, ‘이것이 진정한 직장 라이프’

[더피알=문용필 기자] 케이블 채널 tvN의 금토드라마 <미생>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직장인의 애환과 일상을 그린 평범한 소재에다 이른바 ‘톱스타’로 불리는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지만,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8시 30분이 되면 상당수의 시청자들을 TV앞으로 불러모으며 ‘미생 마니아’들을 양산하고 있다.

<미생>은 지난 2012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됐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인기만화가 윤태호 작가의 작품으로 당시에도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윤 작가는 현재 오상식 과장(이성민 분)의 과거를 그린 특별 5부작을 연재중이다.

▲ 드라마 <미생> 포스터. (사진제공:tvn)

원래 ‘미생(未生)’은 ‘집이나 대마가 완전히 살아있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 바둑 용어다. 경우에 따라 살수도, 죽을수도 있는 상황인 것. 촉망받는 바둑 유망주였던 주인공 장그래(임시완 분)의 과거, 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가도에 서있는 이땅의 수많은 샐러리맨들을 상징하는 제목으로 풀이할 수 있다.

<미생>은 현재 무서운 시청률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시청률 조사 전문기관인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방송된 1화의 평균 시청률은 1.6%에 불과했지만 조금씩 상승곡선을 그리더니 5화는 4.6%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두 자릿수 시청률을 쉽게 기록하는 공중파 방송사의 인기드라마와 비교하면 미미해보일 수도 있지만 케이블 TV의 경우, 3%의 시청률을 ‘마의 고지’로 보는 것을 감안하면 두드러진 상승세다. 그리고 조만간 5%의 벽을 넘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미생>의 인기는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자 게시판을 보면 체감할 수 있다. ‘미생을 볼 수 있어 금요일이 좋아요’ ‘보고 또 보고...왜 이런걸까요’ ‘옆에 끼고 살아가고픈 드라마’ ‘사람을 설레게 하는 드라마’ 등의 찬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시청자는 ‘30년을 후퇴한 한국 드라마를 다시 돌려 놓은 작품’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원작만화 역시 새롭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지난달 21일 “(17일) 금요일 저녁 첫 방영이 나간 이후 토요일~월요일 오전까지의 일 평균 판매량이 550여권에 달하는 등 매우 높은 판매량을 보였다”고 밝혔다.

또한 “방송 전 한달 간 일평균 판매량이 30~40권 가량이었던 데 비하면 15배 상승한 수치”라며 “판매 단가가 5만원 이상인 박스세트임을 감안할 때 무척 폭발적인 판매량”이라고 평가했다. 또다른 인터넷 서점 ‘예스24’도 “11월 1주 종합 베스트 셀러 순위에서 <미생>의 원작 웹툰 완간 세트가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보고 또 보고...왜 이런걸까요’…미생 마니아 속출

<미생>의 가장 큰 인기비결은 무엇보다 직장인의 삶을 사실처럼 그려내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데에 있다.

지난 1980년대 방송됐던 <TV손자병법> 이후 방송가에는 수많은 샐러리맨, 혹은 전문직 드라마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특정 인물이나 관계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들이 대다수였던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시청자들이 대리만족을 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는 있지만 극중 인물과 동화되기는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사무실은 하나의 무대장치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생>은 업무방식과 회사내 권력관계와 사내 소통방식 등 실제 직장생활에서 흔히 겪는 사례들과 그 이면에 감춰진 애환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정밀하게 캐치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배우들의 모습이 바로 시청자들의 모습인 셈이다. 주연 뿐만 아니라 조연들의 스토리도 간과하지 않고 그려내는 것이 <미생>의 또다른 특징이다.

▲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사진:tvn 방송화면 캡쳐)

이와 관련,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직장인들의 생활과 취업준비생의 심리를 리얼하게 그려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여기에 공감하고 감정이입을 한다”며 “극 중 인물들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인 것같이 느껴지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에 사는 30대 초반의 여성 직장인 박민영 씨는 “드라마라고 해서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내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미생) 매력”이라고 했다.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박 씨는 “드라마 속 (워킹맘의) 딸아이 그림에 엄마는 얼굴이 없고, 아빠는 소파에 자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더라”며 “결혼을 하면 (내 아이도)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결혼한 친구들도 (그 장면이) 와 닿는다고 하더라. 맞벌이 부부와 워킹맘의 일상이 현실적으로 묘사된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오히려 너무 리얼해서 생기는 ‘부작용’도 있다. 박 씨는 “한편으로는 가슴 한 켠이 씁쓸해지는 감정도 느낀다”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보는 드라마에서 조차 너무 현실적인 모습이 그려져서 지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미생>의 리얼리티를 뒷받침 하는 요소 중 하나는 ‘깨알같은’ 디테일함이다. 낡은 사무실 슬리퍼나 텅텅 비어있는 인턴사원의 서류꽂이, 신입사원을 혼내는 대리가 담배를 손가락으로 탁탁 털어내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원작만화에서 오 과장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충혈된 눈도 드라마에서 멋지게 재현됐다.

물론, 이같은 리얼리티와 디테일은 배우들의 남다른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MBC 드라마 <골든타임>에서 실제 외과의를 방불케하는 명품연기로 호평을 받았던 이성민은 삶에 찌든 40대 샐러리맨을 멋지게 연기해내고 있다.

임시완과 강소라(안영이 분)도 신입사원의 애환과 감정을 디테일한 선으로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작과 거의 동일한 싱크로율을 보이는 김대명(김동식 대리 역) 등 조연들의 좋은 연기도 호평을 받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주된 특징인 러브라인과 막장코드를 배제했다는 점도 인기에 한 몫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만화를 드라마한 작품의 경우, 원작에 러브라인이 없더라도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미생>은 원작의 취지 그대로 직장인의 삶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정형화된 드라마 공식에 피로감을 느끼던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로 다가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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