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마저 트래픽을 위한 ‘미끼’로
죽음마저 트래픽을 위한 ‘미끼’로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4.11.10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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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언론의 도 넘는 낚시질,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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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피알=강미혜 기자] 지난 9월말 멕시코 게레로주 이괄라시에서 실종된 대학생 43명이 갱단에 의해 살해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 제목들이다. ‘멕시코 실종 대학생 43명 살해’라는 키워드를 공통적으로 언급하면서 약간의 ‘변형’을 줬다.

놀라운 건 5개 기사 모두 한 언론사에서 내보냈다는 점이다. 내용은 별반 다를 게 없는, 한 마디로 전형적인 ‘기사 낚시질’이다.

▲ ‘멕시코 실종 대학생 43명 살해’라는 키워드를 공통적으로 언급하면서 비슷한 기사를 양산하고 있는 언론기사들. 사진은 포털사이트 화면 캡처.

언론의 무분별한 기사경쟁이 ‘죽음’마저도 검색어 낚시에 활용하는 ‘추태’로 이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이 무분별하게 살해됐다는 소식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건이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 할지라도 반인륜적 행태는 국제사회에서 비난받아야 할 마땅한 일. 그런데 한국 언론은 트래픽을 끌어올리기 위한 자극적 소재로 이용하고 있다.

언론의 기사낚시는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이슈다. 문제제기만 있고 해결방안은 없는 공허한 울림의 연속이다. 언론계 역시 원론적으론 자성을 부르짖지만, 누구 하나 나서 개선하려는 노력은 없다.

많은 언론계 인사들은 인터넷매체를 중심으로 무분별한 기사 낚시가 횡행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보면 이른바 ‘주류언론’이라고 불리는 매체들도 낚시질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실정이다.

최근 ‘음주운전’ 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노홍철 씨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최초 보도가 나간 직후 너나 할 것 없이 대다수 매체에서 ‘노홍철 음주운전’ 기사를 쏟아내기 급급했다. 독자 관점에서 ‘왜’나 ‘어떻게’에 대한 내용은 없었고, ‘음주운전을 했다’는 사실만 반복적으로 양산됐다. 이어 나중에서야 음주운전을 하게 된 원인과 측정거부 경과 등을 일제히 보도하는 천편일률적 행태를 보였다.

이 과정에서 한 경제신문은 검색어 낚시를 위한 극단의 몰염치를 드러내기도 했다.

‘노홍철 공식입장 노홍철 음주운전 적발 디스패치 노홍철 무한도전 하차 벤츠 스마트 포투 노홍철 하차 반대 서명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노홍철 공식입장 노홍철 음주운전 적발 디스패치 노홍철 무한도전 하차 벤츠 스마트 포투 노홍철 하차 반대 서명....노홍철 굳이 하차해야하나?" "노홍철 공식입장 노홍철 음주운전 적발 디스패치 노홍철 무한도전 하차 벤츠 스마트 포투 노홍철 하차 반대 서명....노홍철 있어야 잼있는데" "노홍철 공식입장 노홍철 음주운전 적발 디스패치 노홍철 무한도전 하차 벤츠 스마트 포투 노홍철 하차 반대 서명....극과 극 반응이네" "노홍철 공식입장 노홍철 음주운전 적발 디스패치 노홍철 무한도전 하차 벤츠 스마트 포투 노홍철 하차 반대 서명....길 하차한지 얼마나 됐다고"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이 그것.

이 매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장을 기사 말미에 붙인 것은 포털사이트 상에서 검색어 노출도를 높이기 위한 ‘꼼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된 시각이다.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양식이나 독자에 대한 예의마저 망각한 처사다.    

▲ 한 경제신문은 ‘노홍철 음주운전’ 사건과 관련, 검색어 노출을 높이기 위해 기사 내용에 관련 키워드를 무분별하게 넣었다. 사진은 해당 기사 일부 화면 캡처.

언론계 한 중견기자는 최근 <더피알>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언론의 현주소를 이렇게 진단했다.

“언론이 점점 더 자극적·선정적 기사를 앞세워 그걸 무기로 광고를 끌어오기에 급급하다. 언론으로서의 균형감각, 중립자세를 견지하며 차분히 담론하는 문화가 상실됐다. 변질된 언론문화 속에서 누구도 벗어날 마음도, 자신도, 능력도 없는 듯해 안타깝다.” 그러면서 자정 외엔 현실적으로 뾰족한 해결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기레기’ 외침 6개월, 언론계는 얼마나 달라졌나)

한 언론학자는 <더피알> 칼럼을 통해 “언론은 진실을 찾아가는 고도의 지적 작업이다.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무수한 취재원을 인터뷰하고, 또 온갖 루머와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야 한다. 냉철한 분석력, 효과적인 인터뷰 기술, 본질을 꼬집어내는 통찰력과 자료수집 및 요약능력이 요구된다. 출입처에서 나눠주는 보도자료를 뉴스로 내보내는 것은 이런 전문성과 무관하다”고 언론계 자성과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언론계 신화가 된 ‘워터게이트 사건’)

죽음마저도 트래픽을 끌어올리는 ‘미끼’로 활용하는 한국 언론의 현실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고도의 지적 작업’은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일까?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역할 해야 할 언론이 공해(公害)로 변질된 현실을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보아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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