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오 과장, 술은 마셔도 담배는 못 피운다?
<미생>오 과장, 술은 마셔도 담배는 못 피운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11.14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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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흡연, 방송심의규정 동일해도 적용은 ‘경중’ 차이

[더피알=문용필 기자] 샐러리맨의 애환을 담은 소재로 최근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tvN 드라마 <미생>을 보면 거의 매회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극중 오상식 과장(이성민 분)이 업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회사 옥상에 가서 담배를 꺼내는 모습인데요. 때로는 담배를 입에 물기도 합니다.

▲ 드라마 <미생>의 오상식 과장(이성민 분)이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무는 장면(사진:<미생>방송화면 캡쳐)

호기롭게 꺼내들었건만 오 과장이 담배에 불을 붙여 ‘흡연’을 하진 않습니다. 담배는 등장하지만 결코 대놓고 피우는 법이 없죠. 이는 다른 출연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술 앞에선 아주 당당합니다. 거래처 접대나 회사 동료들끼리 한 잔 하는 장면에선 여지 없이 술을 들이킵니다. 그것도 아주 ‘꽐라’가 될 때까지. 샐러리맨의 리얼리티가 그대로 묻어나는 장면이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술이나 담배나 몸에 해로운 건 마찬가진데, 왜 흡연은 등장하지 않고 음주장면만 고스란히 안방극장에 전달되는 것일까요? 꼭 <미생>이 아니어도 다른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 방송 프로그램에선 부득이 하게 흡연을 하는 장면이 나오더라도 모자이크 처리돼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KBS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은 과거 출연자의 흡연 모습을 여과 없이 노출했다가 방통심의위의 ‘의견제시’를 받았던 적도 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흡연과 음주는 똑같은 규정을 적용받습니다. 여느 방송사가 하루 방송을 시작할 때 준수한다고 시청자들에게 공지하는 것. 그렇습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난 1월 9일 개정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 28조에는 “방송은 건전한 시민정신과 생활의 조성에 힘써야 하며, 음란, 퇴폐, 마약, 음주, 흡연, 미신, 사행행위, 허례허식, 사치 및 낭비풍조 등의 내용을 다룰 때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제 45조 4항에는 “방송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흡연․음주하는 장면을 묘사하여서는 아니되며 내용전개상 불가피한 경우에도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즉, 규정상으로 보면 흡연과 음주는 동일선상에서 방송심의를 받는 셈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보죠. 이같은 규정에도 불구하고 왜 흡연장면은 음주장면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은 걸까요. 방송심의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측에 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더피알>과의 통화에서 “규정상에는 흡연과 음주에 대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똑같이 돼 있지만 이는 원칙적인 부분”이라며 “다만, 음주의 경우 일상적인 대화를 이끌어내는 장면으로 (방송에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규정상 (적용)은 똑같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방송사가 (자체)심의할 때 반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규정상의 차이는 아니지만 리얼리티를 어느 정도 살리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또다른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심의라는 것은 규제하고 있는 사안 내에서 끼워맞추기처럼 하는 것이 아니다”며 “흡연 자체를 금지하거나 특정장소에서만 할 수 있도록 돼가는 것이 현재의 사회분위기 아닌가. 그런데 음주는 그런 규제가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음란, 마약, 퇴폐와 음주, 흡연, 사치, 낭비풍조를 사회에서 같은 수위로 놓고 바라볼 수 있느냐”며 “음란과 마약, 퇴폐는 기본적으로 위법행위지만 사치와 낭비풍조는 상대적으로 가볍지 않겠느냐. 흡연과 음주도 그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실을 반영할 때 상대적으로 문제가 더욱 큰 항목에 대한 규제가 강력하다는 이야기겠죠.

하지만 음주장면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SBS 예능프로그램 <자기야-백년손님>의 경우엔 폭탄주 제조 및 음주장면을 방송했다가 방통심의위로부터 주의조치를 받은 바 있습니다.

흡연과 음주 차이는 방송광고에서 더욱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을 보면 주류광고의 경우 ‘지나친 음주분위기를 묘사하거나 음주행위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표현’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표현’ 등을 금지하는 등 상당부분 제약이 따르지만 어쨌든 방송을 통해 광고를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동 규정 제 43조에 따르면 ‘담배 및 흡연과 관련된 광고’는 아예 금지하고 있습니다.

자, 이만하면 흡연과 음주가 왜 방송에서 차별을 받는지 명확하게 이해가 되시겠죠? 만약 <미생>의 오 과장이 담배연기를 내뿜는 장면을 보고싶으시더라도 그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흡연과 음주 모두 건강에는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 독자 여러분도 언제나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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