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에 목마르니 함께 ‘밥술’을 뜬다
소통에 목마르니 함께 ‘밥술’을 뜬다
  • 조성미 기자 (dazzling@the-pr.co.kr)
  • 승인 2014.11.1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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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소통 문화 확산…개인화·대인관계 고립 등 우리사회 현주소 반영

[더피알=조성미 기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인간이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행위이다. 하지만 식사는 단순히 먹는다는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때문에 최근에는 ‘혼밥(혼자 밥 먹기)’, ‘소셜다이닝’ 등 밥과 인간관계를 연결 짓는 용어들이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단어로 등장하는 등 밥으로 소통의 의미를 읽어내는 다양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다양한 대인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소통과 공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재미있는 영상을 최근 선보였다.

영상 속 주인공 ‘피대리’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친구에게, 회사상사와 동료에게,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 밥 한번 먹어요”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 말을 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코가 길어진다. 그리고 지친 피대리의 퇴근 길, 버스 안의 사람들도 코가 길어져 있다. (아래 동영상 참고)

영상은 공개 일주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100만을 기록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인사처럼 건네지만 공허하게 떠도는 ‘함께 밥 먹자’는 말을 할 때마다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지는 ‘피녹효’ 대리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공감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이에 대해 현대차 측은 “대한민국 직장인이 가장 많이 하는 빈말 1위가 ‘밥 한번 먹자’”라며 “이를 소재로 한 영상을 통해 ‘밥 한번 함께 먹기 힘든 바쁜 현실이지만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도록 다가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무심결에 ‘밥 한 번 먹자’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박인기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밥을 먹는다는 것에는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상대와의 진한 일체감, 상대에 대한 강력한 대화지향태도를 느낄 수 있는 것으로,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밥이 곧 ‘공동체의 끈’이었다”며 “시대적 변화에 따라 그 형태가 좀 달라지긴 했지만, 사람들이 신뢰를 높이는 기초 과정으로 함께 밥을 먹고 사우나를 가거나 조직생활과 필수불가결한 회식문화처럼 밥에는 여전히 공동체적 의미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예부터 우리에게 식사시간은 어른과 아이, 모든 가족이 만나 기본적인 예절을 시작으로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교육의 장이었다. 하지만 급속하게 산업화가 이뤄짐에 따라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자연스레 가족 간의 대화도 줄어든 게 현실이다. 

세대 간 거리, 밥상에서 좁히다

실제로 동화약품이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20대~50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식사 시 소통 실태에 대해 진행한 조사결과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가정(52.8%, 523명)과 직장(50.7%, 497명)에서 식사 시 대화 시간이 10분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 중 식사 중 대화를 전혀 나누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도 가정에서 8.2%(81명), 직장에서 12.4%(122명)나 차지하는 등 식사 중 소통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 밥상에서의 소통을 강조한 동화약품 ‘맑은바람’ 캠페인 캘리그라피

이에 대해 동화약품 측은 “가족과의 식사 횟수는 청소년 약물 중독 사례 수와 반비례하고, 가족의 정서적인 결속과 자녀들의 지적 능력 향상 사이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 등에서 가족식사의 긍정적인 측면과 중요성을 인지했다”며 “밥상에서 가족의 관계 및 의미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만들고 밥상 위에서부터 참된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가족’ ‘식문화’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맑은바람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밥상 위에 부는 건강한 소통 바람)

한 발 더 나아가 밥상머리교육을 실천하는 대학도 생겨났다. 건양대학교가 이번 2학기부터 ‘밥상머리교육’이라는 교양과목을 신설한 것. 매주 수요일 3·4교시 식사를 하면서 수업이 진행되는 밥상머리교육은 단순히 식사예절뿐만 아니라, 매주 다른 주제로 여러 직종의 전문가를 초청해 다양한 각도의 인성교육을 진행한다.

이 강좌를 담당하고 있는 이병임 기초교양교육대학 교수는 “건양대학교는 정직과 상생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인격과 품격을 지닌 사회인 양성을 주요 교육목표로 하기에 강좌를 개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부터 밥상머리교육은 거창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예의나 책임감,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며 “초청연사도 큰 성공을 거둔 인물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자신의 일을 정직하게 해나가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이에 따라 필리핀에서 온 유치원영어교사인 아날린 타바다는 다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양지서당 유정인 훈장은 기본예절을, 소방관과 경찰관은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가운데 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것은 무엇보다도 건양대의 졸업생이자 수원 아름학교에서 장애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각장애인 이진석 선생이었다. 학생들은 그의 강의를 통해 장애인들은 무턱대고 도움을 주려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

이병임 교수는 “매 강좌 후 학생들에게 리포트를 받는데 출석률이나 과제 수행도도 매우 높은 편”이라며 “밥상머리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공감, 절제, 배려 등 진정성 있고 소통할 줄 아는 사회구성원으로 자라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건양대학교가 교양과목으로 개설한 ‘밥상머리교육’ 강의 모습과 행복나눔재단이 진행한 ‘써니-실버 행복한 밥상 프로젝트’

한편 SK의 경우 대학생 자원봉사단 써니와 실버세대가 함께하는 ‘써니-실버 행복한 밥상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이를 통해 음식을 매개로 할머니와 손자 손녀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 듯 세대 간 소통을 자연스럽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 활동의 주요 성과는 어르신들이 잘하고 가르쳐주고 싶은 음식을 정하면 학생들이 장을 봐 방문하고, 요리과정 하나하나를 배우고 질문하면서 세대 간 거리를 좁히는 데 있다. 덕분에 어르신들도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어르신을 대하기 어려웠던 20대 대학생들도 요리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자연스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써니-실버 행복한 밥상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려움을 겪는 무언가를 ‘도와드린다’는 봉사활동에서 벗어나, 어르신들이 잘 알고 할 수 있는 것을 대학생들이 ‘배운다’는 개념으로 전환, 행복한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밥을 먹는 행위로부터 소통을 이어가려는 움직임은 온라인상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SNS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세이자 인생의 낭비로까지 불리기도 한다. 특히 SNS 상의 인간관계는 피상적이라는 인식들이 있는 게 사실. 하지만 SNS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진짜 인간관계를 만들겠다고 도전한 이가 있다.

SNS가 밥 먹여줍니다!

<월간잉여>의 편집장이자 발행인인 최서윤 씨는 지난 8월 1일부터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1년 동안 하루 두 끼를 얻어먹는 ‘730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굶어 죽기야 하겠어?’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까이기도 했습니다. 페이스북 친구가 천 명이 넘은 시점에서, 낙관의 근거를 찾아보려 합니다. 온라인 관계가 현실의 온기로 옮겨질 수 있을지 실험해보기로 했습니다”라는 말로 도전을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페이스북 친구 누구든 그의 끼니를 해결해주면 되는 것으로, ‘SNS 친구들의 도움으로 연명이 가능한지에 대한 실험이므로 프로젝트 기간 동안에는 자비로 식사를 해결하지 않고 3일 연속(6끼 이상) 굶는 상황에 놓이면 프로젝트는 중단된다’고 밝혔다. 또한 프로젝트를 성공하면 함께 식사한 이들과 나눈 시간들을 담은 독자적인 기록물을 출판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이 프로젝트는 현재까지 순항 중인 것으로 보인다. 최서윤 편집장의 식사 스케줄이 담긴 730 프로젝트 구글문서에는 그가 출장이라고 명기해둔 10월 20일~11월 13일을 제외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한 8월 1일부터 11월 하순까지 점심과 저녁 스케줄이 거의 채워져 있는 상황이다.

이와 비슷한 프로젝트는 바다 건너 호주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호주에 사는 대학생 매트 컬리자(Matt Kulesza)는 지난 9월부터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는 ‘1000+ Coffees project’를 시작했다.

그는 SNS 관계가 온라인 속 가상관계에 불과한지, 아니면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실제적인 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3년 동안 1088명 모두와 커피 마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컬리자는 친구와 티타임을 갖는 사진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공개하고 있다. 10월 23일 기준으로 38명의 친구와 커피를 마셨다. 

▲ 페이스북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는 독특한 도전을 시작한 호주 매트 컬리자(matt kulesza)의 페이스북 화면과 소셜 다이닝 플랫폼 ‘집밥’에서 진행 중인 다양한 식사모임 알림.

따뜻한 ‘집밥’이 그리운 이들이 모인다

따뜻한 집밥이 그립고 또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픈 현대인들 사이에서 ‘소셜다이닝’이 확산되고 있다. 소셜 다이닝은 누군가의 집 혹은 레스토랑에서 사람들과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 것으로, 온라인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선 ‘음식을 통한 소통’, ‘소통과 교류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식사’라고 정의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의 소셜 다이닝은 집밥(www.zipbob.net)을 통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집밥은 진짜 집밥을 만들어 함께 먹기도 하고 식당에서 함께 먹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여서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하는 ‘모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고 공통의 관심사와 지친 일상을 나누고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한 갈증이 큰 만큼 집밥의 인기도 높다. 9월 기준으로 누적 참가자 2만명, 누적 모임 7000개를 돌파하며 전국 20개 도시에서 매주 300여개 모임이 이뤄지고 있다.

집밥을 통해 모임을 진행하고 있는 30대의 집밥지기 이미선 씨는 “나이들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도 줄고 또 만나는 사람도 한정적이다 보니 밥을 먹으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10년 넘게 혼자 살아오며 그저 혼자 밥 먹는 것이 싫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워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봄부터 10월까지 13번의 모임이 진행된 그의 집밥은 평소에 먹는 반찬에 메인 메뉴 한 가지를 더하는 상차림이다. 대부분 하루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찾아온 사람들은 진짜 집밥이 차려진 의외의 밥상에 놀라고, 이내 친구 집에 온 듯 편안해지고는 집에 가지 않겠다고 투정부리는 이들도 있다고.

이미선 씨는 “집밥을 먹으며 하는 이야기들은 자신의 고민부터 직장, 연애, 사회문제 이야기 그리고 다른 이의 험담까지 여느 또래 친구들의 모임과 다르지 않다”며 “집밥 모임을 1회성이 아닌 꾸준히 관계를 이어가는 모임으로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온·오프라인을 망라 곳곳에서 밥을 통해 소통을 이뤄가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것에 대해 박인기 교수는 “‘밥’이 소통이나 대화에 어떤 활성 효과를 불어넣는 힘은 크고 중요하다”며 “밥은 소통과 질의 깊이가 심화되는 소통의 중요한 통로로 언어 못지않은 소통의 기재라고 볼 수 있다”고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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