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을 거야, 커피도 인생도”
“쓰지 않을 거야, 커피도 인생도”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4.11.20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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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탐방①] 아프리카 난민이 내리는 스페셜티 ‘내일의 커피’

[편집자주] 사회 문제 해결, 지역 통합, 일자리 창출…. 사회적기업이 관심을 둘 만한 사회적 가치는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이제 막 사회적기업을 향한 레이스에 들어선 이들과 이미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한 관록의 기업, 인원은 적으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는 곳 등 각 기업이 처한 상황 또한 다르다. 서로 닮은 듯, 또 다른 듯한 사회적기업 세 곳을 만나봤다.

① 한국형 사회적기업 탄생하려면?
② “쓰지 않을 거야, 커피도 인생도”- 내일의 커피
③ “곰들이 만들 더 나은 세상” - 베어베터
④ “게임만 했을 뿐인데 나무 48만그루가” - 트리플래닛

[더피알=안선혜 기자] ‘내일의 커피’는 이제 막 출발을 시작한 사회적기업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인증은 받지 않은 사회적기업 후보생이다.

▲ 문준석 대표(오른쪽)와 킴 완다 프란신.
다문화시대 난민 고용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자 시작한 카페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에 선정되면서 비즈니스를 구체화시키고 소셜펀딩까지 받아 탄생하게 됐다.

카페의 콘셉트는 원두산지로 유명한 아프리카인들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다. 아프리카하면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곤 하는 기아, 가난, 전쟁과 같은 편견을 벗어나 어떤 좋은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커피라는 아이템에 꽂히게 된 경우다.

내일의 커피를 연 문준석 대표는 5~6년 전부터 난민가정의 아이들이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회적기업 설립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건 단순히 물질적 후원만으로는 난민 가정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취업난이 심각한 요즘 같은 때에 조선족, 중국인처럼 아시아권도 아닌 아프리카 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한정적이었던 것. 이들은 주로 안산 등지에 거주하면서 공장 야간 근무를 비롯해 막노동을 뛰거나, 엄마들의 경우 전단지를 돌리는 등 일용직을 전전한다.

난민들의 직업학교

문 대표가 카페라는 아이템을 선택한 것도 이들이 어디에서든지 일자리 찾기가 비교적 수월한 업종이 서비스 분야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고용된 난민들은 2년에 걸쳐 근무하면서 바리스타 트레이닝을 받는다. 난민들에겐 일종의 직업학교인 셈이다. 인턴, 수습, 주니어 바리스타, 시니어 바리스타 이렇게 총 4단계 체계도 갖추었다. 급여 수준은 주니어 바리스타 기준 시급 8000원.

현재 이 카페에서 근무하고 있는 1호 바리스타는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에서 온 킴 완다 프란신 씨다. 프란신은 현재 수습 단계로, 10시에 출근해서 4시 반에 퇴근한다. 집이 안산인 프란신은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딸을 둔 두 아이의 엄마다. 4시 반에 퇴근하는 이유도 아이들의 공부방이 파하는 6시까지는 안산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 문준석 대표(오른쪽)와 킴 완다 프란신이 키친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문 대표가 봉사활동을 할 때부터 인연을 쌓아온 프란신은 이곳에서 근무하기 전에는 다른 난민들과 마찬가지로 아파트에 전단지 돌리는 일을 했다.

지난 2004년 민주콩고와 르완다의 전쟁 때 남편이 먼저 한국에 입국하고 이어 프란신도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전단지 돌리기가 그의 생업이었지만, 모국에서는 나름 대학을 나와 마케팅 관련 직종에서 근무했었다.

문 대표가 내일의 커피를 준비한 기간은 총 1년으로, 지난해 여름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그때부터 반년 정도 커피를 배우면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지난해 9월 신나는조합에서 진행한 우수 비즈니스 모델 선발대회에 뽑힌 것을 시작으로, 서울시의 사회적 경제 아이디어 대회 ‘위키서울’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아이디어 검증 기간을 거쳤다.

올해 2월 진행한 위키서울 팝업카페는 반응이 상당히 좋았는데, 덕분에 용기를 얻고 정식 오픈까지 단행할 수 있었다. 현재는 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멘토링을 받고 있다. 교육기간은 1년으로, 내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목표는 아프리카 난민들을 위한 직업학교로서의 역할·구조를 잘 만드는 것이다. “스타벅스, 폴바셋 같은 곳에서 아프리카 바리스타 분들이 한 분씩 계시는 게 자연스러워 지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이에요. 우리가 100호점, 1000호점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곳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더 좋은 조건의 카페에서 일한다든지 어느 서비스 업종에나 취업할 수 있다든지 하는 선례들을 만들어내려 해요.”

무엇이든 첫 출발은 어려운 법. 카페 부지 선정부터 비용문제까지 창업자가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난민 고용 계약의 시범 사례가 없다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이다. 참고할만한 케이스가 없다보니 4대 보험 가입부터 정규직으로 고용 시 어떤 고용 계약을 맺어야하는지 등을 노무사와 하나하나 같이 찾고 있다.

‘도와주세요’ 되지 않기 위해

내일의 커피가 추구하는 맛은 쓰지 않은 커피다. 한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커피 맛은 원두를 불에 세게 볶은 다크로스팅이나, 원두 종류별 고유의 향과 맛을 그대로 느끼려면 세지 않고 약하게 볶아야 한다. 내일의 커피에서 보유한 원두 자체도 상당히 다양하다.

케냐나 콜롬비아, 과테말라처럼 흔히 알려진 커피도 있지만, 에디오피아 로미타샤, 르완다 소부와 같은 레어템(희귀 아이템)도 존재한다. 르완다 소부같은 경우는 아프리카에 출입하는 공정무역 업체를 통해 들여온다. 원래 무역업체는 한 번 원두를 들여오면 톤 단위로 판매하지만, 내일의 커피 취지를 말했더니 다른 원두를 가져오면서 조금씩 끼워(?) 가져와 주고 있다.

▲ 테라스에서 들여다 본 내일의 커피 실내 모습.

‘내일의 커피’라는 이름은 일반 카페에서 남는 원두를 소진하기 위해 약간의 할인을 붙여 판매하는 ‘오늘의 커피’ 메뉴에서 아이디어를 따 왔다. 일반 쓴 커피와는 다른 맛을 지녔다는 의미에서 내일의 커피이자, 내가 마신 커피 한 잔이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에게 내일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두 가지 함축적 뜻이 담겨 있다.

내일의 커피 캐치프레이즈 역시 ‘쓰지 않을 거야. 커피도 인생도’이다. 아프리카인이 한국에 와서 말도 안 통하고 막막하고 인생이 쓰다 느낄 때 이 사람들에게 내일의 희망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이다.

“NGO(비정부기구)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도와주세요. 후원금 내주세요’예요. 하지만 사회적기업은 우리가 갖고 있는 서비스나 재화를 정당한 가격을 받고 판매를 해야 합니다. ‘도와주세요’가 아닌 오는 소비자분들이 자기가 낸 비용만큼의 만족감을 얻어가는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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