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들이 만들 더 나은 세상”
“곰들이 만들 더 나은 세상”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4.11.2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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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탐방②] 직원 80%가 발달장애인인 회사 ‘베어베터’

[편집자주] 사회 문제 해결, 지역 통합, 일자리 창출…. 사회적기업이 관심을 둘 만한 사회적 가치는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이제 막 사회적기업을 향한 레이스에 들어선 이들과 이미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한 관록의 기업, 인원은 적으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는 곳 등 각 기업이 처한 상황 또한 다르다. 서로 닮은 듯, 또 다른 듯한 사회적기업 세 곳을 만나봤다.

① 한국형 사회적기업 탄생하려면?
② “쓰지 않을 거야, 커피도 인생도”- 내일의 커피

③ “곰들이 만들 더 나은 세상” - 베어베터
④ “게임만 했을 뿐인데 나무 48만그루가” - 트리플래닛


▲ 이진희 베어베터 대표.
[더피알=안선혜 기자] “이 친구들은 거의 대학에 가지 못합니다. 아주 소수만이 대학의 문턱을 넘습니다. 그렇다고 대학이 이들의 인생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이 친구들이 어려움을 겪는 건 사회성 부족이기에 대학에 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죠. 가장 심각한 건 성인기가 되었을 때 일할 곳이 없다는 겁니다.”

이진희 베어베터 대표가 발달장애인(지적·자폐성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기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지적장애인 고용률은 14.3%,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1%에도 미치지 못하는 0.6%다. 장애인 평균 고용률이 36% 선인 걸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저조한 편이다. 장애인 고용에서도 일종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이들 발달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자 지난 2012년 6월 베어베터는 문을 열었다. 네이버에서 직장 선후배 사이로 인연을 맺은 이진희·김정호 대표가 함께 운영 중이다. 네이버 창업 멤버이자 전 한게임 대표로 있던 김정호 대표가 자본을 대고 큼직한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한편, 내부적으로 세세하게 결정할 일들은 이진희 대표의 권한에 맡긴다.

이 대표는 사실 자폐성장애인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발달장애인의 고용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베어베터를 설립하기 전에도 2년 간 한국자폐사랑협회에서 재능기부 형식으로 운영위원직을 맡는 등 자폐인들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김 대표가 베어베터 사업에 흔쾌히 나서준 것 역시 네이버 재직 시절부터 이 대표의 사정과 뜻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동료에서 사회적기업 파트너로

처음에는 5명의 발달장애인과 함께 시작했으나, 2년여가 지난 지금 베어베터는 발달장애인 근무 인력만 80명이다. 회사 전체 인원은 100여명이니, 전체 고용 인원의 80% 가량이 장애인으로 채워졌다고 보면 된다.

이곳 직원들의 월급은 종일반인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했을 때 법정 최저임금 수준인 107만원가량이다. 현재 전체 장애인의 월 평균 소득은 142만원이지만 지적장애인은 54만원(주당 39시간 기준), 자폐성장애인은 38만원(35시간 기준)에 불과하다. 물론 발달장애인이 종일 근무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 이들의 체력, 끈기, 집중력 등을 고려해 오전/오후 4시간씩 나누어 근무하는 조가 활성화되어 있다.

베어베터가 제공하는 사업영역은 인쇄, 커피, 제과, 화훼 이렇게 총 4가지다. 다만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거래가 아닌 기업이 주요 고객이다. 일종의 B2B(기업 대 기업 간 거래)기업이다.

각 사업영역을 뜯어보면, 인쇄는 명함·달력·교육용 자료 등을 제작해 배달까지 책임지고, 커피와 제과 부문은 건물 내 카페 운영을 대행하기도 하고, 직원 복리후생용 원두·쿠키·빵 등을 직접 납품하기도 한다. 꽃은 전문 플로리스트의 손길로 다듬어져 발달장애인의 손으로 건네받는다. 사업별로 인쇄 오퍼레이터, 디자이너, 개발기능사 등 전문 직원이 고용돼 작업을 총괄하고, 세분화시킨 각 작업 과정을 발달장애인들이 담당하는 형태다.

▲ 베어베터에서 제작한 쿠키.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해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베어베터가 마련한 돌파구는 연계고용을 통한 감면 효과다.

일반 기업들은 장애인을 전체 직원의 2.7% 비율로 고용해야할 의무가 있다. 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일종의 벌금인 고용부담금을 내야한다. 베어베터와 같은 장애인표준사업장과 연계고용 계약을 맺은 기업들에게는 이 부담금을 일정 부분 감면해 준다. 각 기업이 장애인사업장과 거래함으로써 장애인 고용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도급계약을 맺은 사업장의 매출 대비 장애인 고용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감면 정도는 더 커지는데, 거래금액의 절반까지 최대 감면이 가능하다.

“기업은 우리가 얼마를 거래하면 얼마를 감면받는다는 예측가능성이 생기면 잘 움직여요. 우리의 목표는 이익이 아니라 고용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 감면 로직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고용을 최대화할 수 있는 나름의 고용 로직을 만들고, 기업에게는 감면을 예측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 겁니다.”

연계고용 계약으로 ‘반값 할인’

연계고용 제도를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와 함께 제품의 품질 또한 이 대표가 크게 신경 쓰는 부분이다. “회사의 캐릭터라든가 브랜드라든가 이런 것 전부가 그냥 봐서는 여기가 장애인이 다니는 회사란 걸 모르죠. 높은 수준의 제품 퀄리티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제품을 제조하는 설비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최고 수준의 해상도를 보유한 출력기를 비롯해 발달장애인들의 안전을 고려한 설비들을 들여 놓았다. 가령 칼날에 손이 베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앞면 뚜껑을 닫아야지만 작동하는 절단기와 같은 것들이다.

이곳 베어베터에서 사용하는 정감 가는 곰 캐릭터는 디자인회사 조앤코(JOH & Co.)에서 재능기부 형태로 만들어줬다. 조앤코는 네이버에서 디자인 총책임자였던 조수용 대표가 세운 회사로, 조 대표는 네이버의 초록색 검색창을 디자인한 사람이다.

▲ 베어베터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다.
현재 베어베터가 보유한 클라이언트들은 네이버 관련사들을 비롯해 대림산업, 다음카카오, IBM, 이베이 등이 있다. 월 매출은 1억5000만원 가량으로 올해 연매출 2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곰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BEAR MAKES THE WORLD BETTER)’는 뜻의 베어베터는 발달장애인 고용이라는 회사의 미션을 유지하면서 이들 발달장애인들이 정년퇴직할 때까지 고용할 수 있는 회사를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사업도 발굴해 내야하고 아직 감당해야할 과제들이 많이 남았다.

이 대표는 올해 3월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고, 얼마 전 교과서에 사회적기업에 대해 어떤 내용을 넣어야 할지 논의하는 회의에 초대받아 갔다. 그곳에서 사회적기업에 대한 재미있는 오해 한 가지를 발견했다.

“현재 교과서의 어떤 챕터에서 사회적기업이 다뤄지고 있는지 물어봤더니 진로탐색 과목 창업 파트라고 하더라고요. 창업할 때 사회적기업 지원금을 받으면 유리하다는 내용이었어요. 사회적 목적을 추구해야 한다는 게 주요 포커스가 아니라 창업의 한 형태로 사회적기업이 소개되고 있는 점이 어이없고 안타까웠습니다.”

순수한 곰(발달장애인)들에 대한 이 회사 대표들의 애정은 직원들의 유니폼에서도 드러난다. 발달장애인들이 배달할 때 착용하는 가방과 외투를 모두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제품으로 구입한 것. 아무 제품이나 살 수 있었지만, 행여나 이들이 나가 무시라도 당할까 좋은 옷과 가방을 입혀 보낸다.

영어단어 베어(bear)는 명사로는 ‘곰’이나, 동사로는 ‘어려움을 견디다, 품다, 낳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들이 부딪힐 차별적 시선과 사회적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길, 또 이들의 시도가 낳을 더 좋은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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