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허리케인! 명예훼손 둘러싼 도전과 응전의 역사
또 허리케인! 명예훼손 둘러싼 도전과 응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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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1.2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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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해의 뉴스생태계 따라잡기] ‘산케이 사태’로 보는 언론자유의 의미

[더피알=김성해] 2005년 8월. 엄청난 폭우와 시속 225km에 달하는 강한 바람을 동반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덮쳤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와 알라바마의 주요 도시에서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 손실이 발생했고 그 중에서도 뉴올리언스의 피해는 심각했다. 무려 15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고 도시의 80% 이상이 물에 잠겼다. 폭풍의 신 또는 강력한 바람이라는 뜻을 가진 허리케인(Hurricane)의 위력을 톡톡히 보여줬다.

뉴스생태계에도 유사한 재앙이 있다. 반복해서 발생하고, 그 피해를 쉽게 측정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소멸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명예훼손 이야기다. 주로 공직자나 힘 있는 집단에 의해 제기되며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도를 못하게 하려는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목적으로 진행된다.
 

▲ 공직자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2014년 10월 18일. 대한민국 검찰이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타스이 지국장이 쓴 칼럼을 정식으로 기소한 것은 가장 최근의 파괴적인 사례의 하나일 따름이다. 뉴스생태계의 본질적인 위협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민족주의적 감정으로 접근할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문제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과 인쇄기의 보급이었다. 권력의 정점인 로마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성직자 계급의 지식독점이 무너졌다. 교회와 신부님을 통해서만 하나님 말씀을 전해 들었던 평범한 사람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해석하기 시작했다. “믿음만으로, 은혜만으로, 성서만으로”를 외치며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을 요구할 수 있었던 배경은 성서의 대량 보급과 무관하지 않았다.

개혁에 반(反)한 권력집단의 무기

모든 권력이 그렇듯 교황청은 출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을 택했다. 불온사상의 생산과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출판면허제가 실시됐고 금서(禁書)목록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식을 통해 다른 사상과 관점을 접한 시대의 변화는 막을 수 없었다.

1644년 영국인 존 밀턴(John Milton)은 「아레오카지티카」(Areopagitica)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면허제가 전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한편 “나에게 어떤 자유들보다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주장했다. “진리와 거짓이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라.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진리가 패배하는 일은 결단코 없다”는 말도 했다.

영국 의회는 ‘출판물 면허법’의 도입으로 맞섰고, 1662년 제정된 이 법은 무려 30년이 지난 1692년에야 폐지된다. 권력집단이 선택했던 또 다른 수단이 바로 ‘명예훼손’이었다.

1733년 2월 3일. <뉴욕 위클리 저널>의 발행인이었던 쟁거는 미국으로 새로 부임한 영국의 윌리엄 코스비 총독과 그 부하들을 비판하는 글을 게재했다. 정부 비방죄로 고소된 그는 1년 6개월 징역형을 살았지만 법원은 “해당 기사가 진실이면 무죄”라고 최종 판결했다.

1792년과 1843년 제정된 영국의 ‘폭스 명예훼손법’과 캐나다의 ‘캠벨 명예훼손법’ 또한 형사 관련 명예훼손의 경우 사실만 입증하면 언론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공직자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그 이후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1960년 3월 29일. <뉴욕타임스>는 미국 남부 지역의 흑인 탄압에 항의하고 민권운동을 지지하는 광고를 실었다. 당시 알라바마주 몽고메리시의 경찰국장이었던 설리반은 광고로 인해 경찰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직자의 명예훼손적인 허위의 언사는 실재적 악의(actual malice)를 갖고 보도하지 않는 한 언론의 자유는 보장된다”는 판결로 하급심을 뒤집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는 원칙을 적용한 결과였다.

당시 판결을 계기로 “명백한 허위이거나 실질적 고의성이 있을 경우에 한해서만 언론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 정부와 공직자는 공적인 관심사에 대한 언론의 비판에 대해 명예훼손을 제기할 수 없다는 점, 공직자의 경우 언론의 고의성을 직접 증명해야 한다는 점” 등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 언론의 자유를 먹고 자라는 뉴스생태계는 ‘명예훼손’이라는 허리케인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진은 명예훼손 관련 법적 분쟁을 보도한 언론기사들.

언론, 편한 사람 불편하게 힘든 사람 편하게


21세기 첨단 과학의 시대에도 인류는 태풍이나 허리케인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다. 언론의 자유를 먹고 자라는 뉴스생태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최근의 ‘박근혜-산케이’ 사건에서 보듯 역사적 판례를 통해 정립된 몇 가지 원칙에도 불구하고 불씨는 남아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공직자에 의한 명예훼손을 얼마나 인정할 것인가, 단순 의견을 표명한 경우에도 소송의 대상이 되는가, 또 외국 언론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가 등이 있다.

언론은 편하게 사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힘들게 사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공직자를 감시하고 그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는 것은 언론의 소명이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그들은 언론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있으며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재판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

‘뺨을 때리다’ 또는 ‘모욕을 주다’는 의미를 가진 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는 그 중에서도 가장 흔한 방법이다. 재판에서 승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법적 분쟁에 따른 돈과 시간 부담을 통해 공직자나 정책에 대한 비판은 물론 시민의 정치 참여를 억압하기 위한 전략적 소송 제기를 뜻한다.

1989년 <시카고 트리뷴> 신문을 상대로 시카고 주 정부가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시민은 명예훼손으로 소환당하는 두려움 없이 그들의 정부에 대하여 토론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 미국정부의 근본원칙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시 정부가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미국사법제도에서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판결한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현재 미국, 영국, 인도, 호주 등에서는 SLAPP에 해당할 경우 소송 자체에 대한 기각 내지는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부담시키거나, 또는 변호사를 징계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의견과 사실은 다르게 봐야 하는가 역시 뜨거운 감자다.

1974년. 인권변호사 엘머 거츠(Elmer Gertz)는 로버트 웰치(Robert Welch)사 소속의 <아메리카 오피니언> 잡지를 상대로 명예훼손을 제기했다. 공산주의자면서 많은 전과 기록이 있다는 일방적 주장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당시 판결을 맡았던 대법관 루이스 파월 2세(Lewis Powell Jr.)는 “수정헌법 제1조 하에서 틀린 의견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아니한다. 의견이 아무리 유해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시정을 위하여 법관이나 배심원의 양심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다른 의견과의 경쟁에 맡겨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1985년 ‘Ollman-Evans’ 판결 또한 의견과 사실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문제된 내용 중 특정한 언어의 통상적인 용법과 의미, 객관적으로 진실 혹은 허위라고 구분 지을 수 있는지 여부 및 보다 광범위한 문맥이나 배경에 대한 판단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논평과 의견의 우월적 지위 보장

논평과 의견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보장하는 것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법원은 논평의 전제로 삼은 사실이 주요 부분에 있어서 진실이거나 적어도 진실이라고 믿는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거나, 공익에 관계되어 있거나, 공공의 이해에 관한 것이거나 또는 일반 공중의 관심사일 경우 해당 논평으로 인해 타인의 명예가 훼손되더라도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결정했다. 다른 국가 소속의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국제적 소송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다.

1982년 9월.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던 레바논에서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 시민이 학살된다. 레바논 기독교 시민군이 벌인 만행이었지만 당시 국방장관이던 아리엘 샤론은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샤론의 연루설을 보도했지만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1984년 ‘샤론-타임지’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미국 법원은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점은 문제가 있지만 현실적인 악의가 없다는 점을 들어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1991년 영국 법원이 뉴욕에 본사를 둔 <인디아 어브로드 퍼브리케이션>을 상대로 낸 소송도 있다. 영국 재판에서 문제의 통신기사에 대한 명예훼손에서 승소한 바크찬은 뉴욕 법정에 이를 집행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뉴욕 법원은 진실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을 언론사에 지우는 곳에서 내린 판결을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 8월 18일 검찰에 출석한 가토 타쓰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으로 나오는 도중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산케이 사건 향한 국제사회 시선


1990년대 이후 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이러한 소송은 2014년의 박근혜-산케이 사건으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뉴스생태계를 괴롭혀온 명예훼손이라는 허리케인의 위력은 과거에 비해 어떠할까?국제사회의 일반적 추세는 다행히도 언론의 자유를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2000년 7월 국제언론자유수호단체인 ‘아티클 19’(Ar­ticle 19)은 “명예보호와 언론자유에 대한 원칙”을 공표했다. 명예훼손이 정당화 될 수 없는 사례로 공직자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나 공직자의 비리 또는 부패행위의 폭로를 막고자 할 때 국가나 종교적 상징, 국기와 같은 물전의 명예를 보호하고자 하는 경우 국가나 정부 자신의 명예를 보호하고자 하는 경우 사망자를 위해 소송을 하는 경우를 명시했다.

공개적 토론을 막고 비판을 억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형사상 처벌법규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 정부의 모든 기관과 공공기능을 수행하는 모든 기관, 선출조직, 국·공립회사, 정당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조항 역시 포함돼 있다.

지금까지 UN 인권위(UNHRCm)를 비롯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 미주기구(OAS) 등이 이 원칙을 승인했다. 전 세계 명예훼손 소송의 천국으로 알려졌던 영국 또한 2013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명예훼손법을 개정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국에서도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더욱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이 이어졌다. 2011년 9월 대법원은 MBC PD수첩을 상대로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제기한 소송에서 “보도내용 중 일부가 객관적 사실과 다른 허위사실의 적시에 해당하지만, 국민 먹거리와 관련된 정부 정책에 대한 여론 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공공성 있는 사안을 보도 대상으로 한 데다, 보도내용이 공직자인 피해자의 명예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악의적인 공격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징역형이 포함되는 형사법을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단순히 비판을 봉쇄하려는 목적의 SLAPP에 대한 특별한 조치도 없다. 2014년 가을 현직 대통령이 외국 매체의 특파원이 자국말로 쓴 칼럼을 대상으로 형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배경이다.

뉴스생태계의 해묵은 유령이 유독 지금 이 순간 이 땅에서 발생한다는 것이 부끄럽고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참고자료
고승덕 (1993) 국제적인 명예훼손사건에 있어서 적용할 법과 소송절차에 관하여, <언론중재> 48호
권기훈 (2001) 의견표명에 의한 명예훼손 성립 여부에 관한 판결례 검토, 언론법연구회, 세미나 발제자료 박상진 (2003) 공직자의 명예훼손소송과 그 법리, http://cafe.daum.net/parksangjin
염규호 (1993) 국제적 명예훼손 소송 사례 연구, <신문과방송> 1993년 8월호
이구현 (1998)『미국 언론법』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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