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도시 ‘월리’를 찾아라!
삭막한 도시 ‘월리’를 찾아라!
  • 이동익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4.11.28 15: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속 힐링]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더피알=이동익 기자] 우리는 왜 영화를 볼까? 사람마다 각자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를 ‘공감’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도 관객과의 ‘소통’이다. 영화를 보고 웃고, 울고, 분노하는 것도 공감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로 ‘힐링’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소통을 위한 일이다. 가을의 끝자락, 힐링을 위한 영화의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할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열적인 정면 모습과는 달리, 이 도시의 옆면에는 현대 도시인들의 외로운 삶이 있다. 사진: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스틸컷.

탱고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로 불릴 정도로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볼거리가 가득한 도시다. 화려한 원색의 건물들이 뿜어내는 낭만과 에너지는 지친 일상을 보낸 이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열적인 정면 모습과는 달리, 이 도시의 옆면에는 사방이 꽉 막힌 원룸에서 소외된 채 우울하게 살아가는 현대 도시인들의 외로운 삶이 있다.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은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는 눈치 채지 못한, 계속 ‘살아가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무기력과 고립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무기력과 고립은 비단 지구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닭장’이라 불리는 원룸에 살면서 두서없는 건물들 사이를 거닐다 이 영화와 마주치게 될 우리의 청춘 남녀에게도 이 먼 나라의 연애담은 의외로 가깝게 느껴진다.

외로운 도시의 옆면에 사는 사람들

어느 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개가 자살하는 의문의 사건이 발생한다. 매춘부인 주인이 손님들에게 방해되지 말라고 개를 좁은 발코니에 가둬 놓은 것이 원인이었다. 발코니에 갇혀 고립된 개의 풍경은 고스란히 영화의 두 주인공으로 옮겨간다. 

‘마틴’(하비에르 드로라스)과 ‘마리아나’(피욜라 로페즈 드 아야라)는 한 줌의 햇빛도 들지 않는 좁은 원룸에 산다. 입구나 출구가 없어 인적이 드문 ‘옆벽’처럼 그들의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라곤 택배기사가 전부다. 새로운 인연도 하룻밤이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부지기수다.

▲ ‘마틴’(하비에르 드로라스)과 ‘마리아나’(피욜라 로페즈 드 아야라)는 한 줌의 햇빛도 들지 않는 좁은 원룸에서 고독한 삶을 산다. 사진: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스틸컷

마틴의 집은 1105번지 4층 H호. 창문 하나 달린 36㎡(11평)짜리 원룸에서 헤어진 여자친구가 남겨두고 떠난 강아지 수수와 7년째 함께 살고 있다. 잦은 발작 때문에 재택근무를 할 수 밖에 없는 그는 웹디자이너로 일하며 모든 생활을 인터넷으로 해결한다.

그에겐 8000곡이 담긴 60기가 아이팟이 있고 쉴 새 없이 세상을 찍어대는 라이카 카메라가 있지만 신경쇠약, 스트레스, 불안 등 자살을 제외한 온갖 도시 질병들을 앓고 있다. 안정제를 먹고 나서야 어렵게 잠이 드는 그는, 그마저도 이유 없는 허리통증으로 인해 수시로 깨곤 한다.

마리아나의 집은 길 건너 1183번지 8층 G호. 원래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카바나 빌딩의 31층까지 올라가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던 건축가지망생이었지만 지금은 쇼 윈도우 디자이너를 하고 있다.

8층에 위치한 집을 적어도 하루에 세 번은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어느 날은 20층에 있는 레스토랑까지 걸어 올라가기도 한다. 담배를 태우며 허전한 속을 달래는 그녀에게 유일한 벗이 있다면, 그녀가 일할 때 다루는 마네킹이다.

도시 연인들이 사랑하는 법

황량한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에게 긴 겨울이 찾아왔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여줄 따뜻한 사랑은 손에 쥔 모래처럼 금세 흩어져 도망가 버린다.

마틴은 강아지 수수를 산책시키기 위해 고용한 돌보미에게 마음을 주지만, 이미 애인이 있던 그녀는 어느 날 그를 홀연히 떠나버린다. 마리아나도 겉도는 관계를 이어간다. 수영장에서 만난 매너 좋은 남성과의 데이트는 그저 하룻밤의 꿈. 그와 헤어지고 돌아온 그녀는 서러운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

결국 두 사람은 막막한 도시생활의 돌파구를 찾기로 결심한다.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숨어살던 두 사람의 견고한 마음 속 벽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 모습은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이 사방이 막혀있는 좁은 원룸에 빛을 맞이하기 위해 작은 창을 내는 것으로 그려진다.

사실 이 영화의 원제는 <Sidewalls>로 건물의 옆벽을 뜻한다. 건물의 정면이 아닌 옆면은 주목받지 못하고 고립돼 살아가는 많은 도시인들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 옆면의 공간에서 무자비한 도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갑작스런 정전으로 모든 게 멈춰버린 밤, 집밖으로 나선 마틴과 마리아나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모르던 소통 없는 도시에서 조금씩 균열을 낸다.

널 향해 창을 내리, 바람 드는 창을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마리아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펼쳐져있는 ‘월리를 찾아라’ 책에서 길 잃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도시의 ‘월리’는 진실한 소통을 의미한다. 그녀는 그 진실함을 찾아 군중 속을 헤맨다.

우리 또한 자신의 ‘월리’를 찾아 콘크리트의 도시를 배회하고 있다.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을 꿈꾸는 도시남녀의 분투는 먼 도시의 일이 아니다. 옆집의 피아노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 사는 이웃에게 인사를 건네는 법을 잊어버린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마틴과 마리아나는 벽면에 창을 냄으로써 서로를 향한 소통의 창구를 마련했다. 자신안의 견고한 벽을 무너뜨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도시 속에서 겪는 상한 감정들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가 앓고 있는 많은 질병들도 단절된 도시가 낳은 후유증이다.

유일한 치료책이 있다면, 그건 우리 안의 가장 어둡고 우울한 벽을 허물고 그곳에 따뜻한 빛이 드나들 수 있는 창문을 다는 일일테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Sidewalls)
2011/94분
감독 : 구스타보 타레토 
배우 : 하비에르 드로라스, 피욜라 로페즈 드 아야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