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非行)’이 돼버린 ‘비행(飛行)’, 누구 책임인가?
‘비행(非行)’이 돼버린 ‘비행(飛行)’, 누구 책임인가?
  • 이병일 엔자임 이사 (thepr@the-pr.co.kr)
  • 승인 2014.12.30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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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체크] ‘CAP’ 부재가 가져온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태

▲ 지난 12일 국토교통부 조사를 받기 위해 고개숙여 입장하는 조 전 부사장.(왼쪽)

지난 12월 24일,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그리고 30일 조 전 부사장은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이 발생한 지 25일이 지난 시점이다. 대한항공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연말이다.

검찰은 허위진술을 강요하고 협박한 혐의로 객실담당 상무에게도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건과 관련한 증거인멸을 주도한 혐의로 대한항공 출신인 국토부 김모 조사관도 구속했다.

항공기 고장이나 테러범에 의한 납치가 아니라 오너의 딸이 일으킨 비상식적인 비행(非行)이 ‘최고의 비행(Excellence In Flight)’이라는 기업 슬로건을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관련기사: 대한항공, 오너딸 월권에 ‘공든 탑’ 무너져) 공중과의 관계(Public Relation)를 개선시킨다는 PR의 본분이 무색했던 잘못된 초기 대응의 원인은 무엇일까?

▲ 30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대한항공 조현아(가운데) 전 부사장이 서부지검으로 이동하기 전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책임자가 책임의식 가지지 못한 죄


위기대응의 전략적 관리는 흔히 ‘2P+2R’이란 용어로 대변된다. 이는 예방(Prevention)-대비(Preparedness)-대응(Response)-복구(Recovery)의 단계를 뜻한다.

‘모두가 예측하는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는 말처럼 위기(Crisis)는 갑자기 예고 없이 찾아오는 특성을 가진다. 잠재된 위험(Risk)이 표출돼 실제 맞닥뜨리는 상황을 위기라고 한다.

▲ 땅콩회항 사건과 관련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 복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뉴시스
실제 위기상황이 되면 머리로 차분히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평소 내재화된 역량이 즉각적으로 조건반사처럼 반응(Response)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돼야 피해를 최소화 한다.

항공기 승무원에게는 평소 매뉴얼을 통한 사전 준비(Preparedness)가 매우 중시된다. 수많은 승객을 대면하며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하고, 재난으로부터 항공기 안전을 책임지는 스탭으로서 지속적인 대비 및 대응 훈련을 받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은 임원의 비합리적인 질책에도 기꺼이 무릎을 꿇을 만큼 위계에 의한 직업적인 ‘위기의식’을 느꼈음이 굴욕적인 행위를 통해 입증된다.

반면 조현아 전 부사장은 대물림 받은 높은 위치만큼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도덕적인 의무(Noblesse Oblige) 혹은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항공기 내에서는 승객의 입장임에도 기장의 ‘운항을 방해’하는 ‘램프리턴’을 지시한 월권이 논란이 됐다. (관련기사: ‘라면 상무’ 이어 이번엔 ‘땅콩 부사장’)

사건당사자가 아닌 오너의 둘째딸인 조현민 전무는 내부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조직문화의 책임을 ‘모든 임직원의 잘못’이라고 밝혀 또 한 번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대한항공 사태의 핵심은 한가지로 집약된다. 책임지는 자리의 책임자가 책임의식을 가지지 못해서다.

부인과 변명이 낳은 메머드급 폭풍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기업에 초래된 명성(Reputation)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위기대응 전략으로 상황적 위기 커뮤니케이션 이론(Situational Crisis Communication Theory, SCCT, 1995, 이하 SCCT)이 있다 이 이론은 위기 상황에서 발생원인을 두고 조직의 책임 정도에 따라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 출처: reasoned action in crisis communication: an attribution theory-based approach to crisis management,, by coombs, w, t., & holladay, s, j,. 2004, nj: lawrence erlbaum associates 이현우 최윤형(2014). 위기관리에서 상황적 위기커뮤니케이션 이론의 전개과정과 향후 연구를 위한 제언. 홍보학 연구, vol. 18 no.1, pp.451

위기를 겪는 기업은 초기에는 당장의 상황을 일단 피하고 보자는 유혹에 직면해 사실을 ‘부인’하기 싶다. 흔히 위기상황에서 ‘거짓말’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다. (관련기사: 대한항공의 위기관리에서 ‘정직’ ‘투명’이 빠진 이유)

한편 법의 판결을 기다리며 대기업 총수가 검찰 등에 소환되는 TV뉴스를 접할 때면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이동형 병상에 누워 사과도 부인도 아닌 ‘고통감수’의 모습을 보이며 동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거나 비판적인 수위를 낮추려는 전략적인 ‘설정’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대한항공 측은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할 오너일가의 잘못된 행동을 ‘부인’하고 사건의 피해자일뿐 ‘회항사태’에 책임이 없는 승무원에게 비상식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정반대의 노선으로 엄청난 후폭풍을 자초했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잘못했고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소위 국민적 상식에 근거한 ‘반성문(사과문)’의 요소는 배제됐다. (관련기사: 불끄려다 불붙인 대한항공의 ‘사과’)

▲ 대한항공이 ‘땅콩회항’ 논란과 관련해 지난 16일자 일간지 1면에 게재한 사과광고.

‘빠른 사과’와 ‘무조건적인 반성’ 또는 ‘행동의 시정’을 약속해야 하는 상황을 초기에 오판하자 ‘늑장 사과’, ‘일부 보직 유지’, ‘사과 쪽지의 진정성 논란’, ‘1등석 사적인 이용 논란’ 등 연이은 악재를 불러일으켰다.

서비스 공급자적 시각의 변명형 사과는 국민적 공분을 불렀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 행위는 당사자의 뉴스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정면 반박’ 됐다.

소셜방송 시대, ‘CAP’ 원칙 기억하자

대한항공은 결국, 초등대응의 실패를 인식하고 지난 12월 16일 ‘무조건적인 사과문’ 광고를 중앙 일간지에 일제히 집행했다. (관련기사: 대한항공 다시 사과 “그 어떤 사죄 말도 부족”)

초스피드로 국토교통부와 검찰조사가 전격 이뤄진 가운데, 미국 교통국(DOT)의 조사 가능성까지 거론된 이번 땅콩회항 사태는 기업주에게 위기에 대한 높은 책임 수준을 요구하는 ‘범죄’ 유형으로 규정되고 있다. 사건 초기에 소문에 그치는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내려는 낮은 책임수준이 낳은 엄청난 ‘땅콩 효과’다.

▲ 출처: ongoing crisis communication-planning, managing, & responding. by coombs, w. t.,1999, ca:sage.이현우 최윤형(2014). 위기관리에서 상황적 위기커뮤니케이션 이론의 전개과정과 향후 연구를 위한 제언. 홍보학 연구, vol. 18 no.1, pp.452

이제 기업은 ‘피해자’ 혹은 ‘상대적 약자’가 누구인지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 사건의 정황과 원인은 적어도 제3자가 목격한 상황에서 통제되거나 관리될 수 없는 전국민 실시간 녹화 및 소셜방송의 시대이다.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과 배려(Care and Concern)을 가지고 조치(Action)를 취하고 재발방지(Prevention)를 약속하는 ‘CAP’의 원칙을 기억하자.

경제적 차별이 사회적 차별로 이어진 이번 사태와 관련, 대기업 오너들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진정으로 염두에 둔다면, 2세에게 자리부터 주는 특권의식 이전에 책임의식을 ‘대물림’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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