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신해철 씨처럼만 해주세요”
“우리도 신해철 씨처럼만 해주세요”
  • 김동석 (dskim@enzaim.co.kr)
  • 승인 2015.01.06 0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헬스커뮤니케이션닥터] 대한민국 환자, ‘샤우팅’으로 치유받다

[더피알=김동석] 정확히 1년 전 더피알에 ‘헬스 커뮤니케이션 닥터’ 연재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자단체연합회)’를 소개한 바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독특한 의료시장의 특성 때문에 항상 ‘을(乙)’의 입장에서 억울해 하는 환자들에게 환자단체연합회가 환자 주권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중심에 환자들 간 소통의 장이 되고 있는 ‘환자샤우팅카페’가 있다.

▲ 사진출처: 환자샤우팅카페 홈페이지(www.shoutingcafe.kr )

2012년 6월 27일 서울의 한 작은 카페에서 시작한 행사는 2년 반 동안 수 십여 건에 달하는 환자들의 희로애락이 소개됐다.

의료사고, 선택진료제도의 문제점, 항암제가 고가라는 이유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자의 사연 등 환자의 권리와 관련된 모든 내용이 다뤄졌다. 환자샤우팅카페의 한 시즌을 마감하며 마련한 ‘샤우팅, 그리고 그 이후’라는 자축연 자리를 다시 찾았다.

감기로 입원한 아들의 죽음, 의사 자문에만 석 달 반 걸려

어김없이 환자들의 간절한 샤우팅이 강당 곳곳에 울려 퍼졌다. 고(故) 신해철 씨의 황망하고 갑작스러운 죽음도 화제가 됐다. 신속한 수사와 부검결과 발표, 그가 받았던 특별한(?) 주목은 사실 특별하지 않은 정상적인 의료사고 처리의 한 과정에 불과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감기로 입원했다가 싸늘한 시신이 되고 만 10회 참여자 김유비 군의 아버지 김기후 씨는 자신은 아들 부검만 석 달, 의사 자문도 석 달 반이 걸렸다고 토로했다. 어떤 의료사고 피해자는 부검결과를 받는 데 무려 6개월이 결렸다는 하소연도 있었다.

“왜 우리는 신해철 씨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없나요? 유비 사건도 경찰이 그렇게만 해줬어도 덜 억울했을 것 같아요”라는 말 속에서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 환자들 간 소통의 장이 되고 있는 환자샤우팅카페 현장 모습. 사진출처: 환자샤우팅카페 홈페이지(www.shoutingcafe.kr )


이 날은 ‘샤우팅, 그 이후’라는 부제답게 참여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분노와 답답함보다는 후련함이 더 많이 느껴졌다.

“사실 영준이는 지금 아무 것도 해결된 게 없습니다.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음에도 해결되지 않은 여전히 미완의 상황이죠. 하지만 호소할 곳이 없던 저에게는 샤우팅카페에서 제 사연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과 힐링이 됐습니다.”

영준이는 2007년 2월 3일 토요일 교통사고로 우측 다리 골절상을 입었었다. 휴일이었지만 교수가 직접 수술을 한다는 말에 선택진료를 받았지만 레지던트 1년 차가 수술을 하면서 현재는 뇌손상으로 의식이 없는 상태다.

“지금도 자식을 잃은 그때 그 아픔이 덜컥덜컥 느껴집니다. 하지만 억울함, 아픈 마음이 정말 많이 풀렸어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스스로 힐링을 받은 느낌입니다. 그것이 샤우팅카페의 힘인 것 같아요.”

항암제를 잘못 투여하는 의료사고로 생명을 잃은 아들을 위해 2년 넘게 병원과 의료제도개선을 위해 싸워온 정종현 백혈병 환아 어머니 김영희 씨의 말이다.

환자이름이 들어간 최초의 법

종현이 어머니의 끈질긴 노력으로 일명 ‘종현이법’으로 불리는 ‘환자안전법’이 법 개정을 위해 국회 상임위까지 상정됐다.

매번 샤우팅카페에 참석해 환자와 환자가족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권용진 서울북부시립병원 원장은 “환자안전법은 그동안 수없이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어떤 학자의 주장도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평범한 한 어머니가 해냈습니다. 이 법은 환자이름이 들어간 대한민국 최초의 법입니다. 꿈이 이루어진 겁니다”며 벅찬 감동을 전했다.

 

▲ 환자샤우팅카페 멘토단.


예강이 어머니 역시 딸을 잃고 대형 종합병원과 의료분쟁을 겪으며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 제도’, 일명 ‘예강이법’ 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병원과 환자가 상호 협의를 통해 원활히 의료분쟁을 해결하자는 취지로 어렵게 의료분쟁조정법이 만들어졌지만, 상대방이 거부하거나 14일 동안 무응답하면 바로 각하되도록 돼 있다. 병원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의료분쟁 조정신청이 있으면 상대방이 거부하거나 무응답 하더라도 바로 각하할 것이 아니라, 우선 조정절차가 자동으로 개시되고 다만 조정할 것인지 여부는 최종적으로 양 당사자의 자유에 맡기자는 거다.

딸의 죽음 앞에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심약한 예강이 어머니 최윤주 씨는 “종현이법이 나왔듯이 예강이법이 나오도록 열심히 할 것”이라며 “그것만이 지켜주지 못한 딸을 위한 마지막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했던 선택진료의 피해자인 영준이의 사연과 아버지의 제도개선 노력은 ‘선택진료제도’ 변화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평범한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 시키는 것도 별거 아닙니다. 결국 평범한 한 사람이 나서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평범한 세상 사람들의 힘을 믿는다고 역설한다.

환자샤우팅카페는 환자 각자가 주인공인 환자들의 소통공간이다. 하지만 환자샤우팅카페가 2년 반 넘게 유지될 수 있었고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자원봉사자로 나서준 멘토단들의 역할이 컸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서울시북부시립병원 권용진 원장, 법무법인 제현의 구영신 변호사 등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 자문위원들의 해법 모색이 힘을 보태고 있다. 한 회도 빠지지 않고 진행을 맡으며 환자들의 아픔에 수없이 울었던 MBC 최현정 아나운서의 역할도 컸다. 백혈병환우회 이은영 사무국장 역시 13회 행사를 모두 기획하고 챙긴 소중한 조력자다.

‘환자리포트(Patient Report)’ 아세요?

이들 멘토단과 함께 샤우팅카페에서 채택된 내용을 기존 언론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환자단체연합회가 보유하고 있는 자체 매체 ‘환자리포트(www.koreapatient.com/ab-1001)’가 있었다. 최초의 환자 전문 매체인 셈이다. 환자 샤우팅 카페의 사연과 현장 기록은 자체 매체인 환자리포트에서도 다룬다. 영상은 ‘환자TV’를 통해 업로드 한다.

이 밖에도 환자와 관련된 각종 이슈를 환자리포트에 기사화한다. 오피니언 코너 등을 통해 이슈를 부각시키기도 한다. 게시된 대부분의 내용은 전통 매체에 보내져 재차 기사로 다루어지면서 이슈가 확산되는 구조다.

▲ 최초의 환자 전문 매체 환자리포트(www.koreapatient.com/ab-1001)


안기종 대표는 환자단체연합회의 이런 활동이 자칫 의사와 환자가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만 비춰질까 우려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은 의사들 역시 일하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우리 단체의 활동은 왜곡된 의료체계를 바꿔 의사와 환자가 모두 제대로 진료하고 제대로 치료하자는 상생의 의미이지 결코 서로 대립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고 잘라 말한다.

법무법인 제현의 구영신 변호사 역시 “환자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이제는 의사와 환자들이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동반자적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좀 더 무게를 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싸움과 갈등보다 조정과 중재를 우선하는 의료문화로 나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환자샤우팅카페에 사연이 접수되지 않는 세상이 되어야 비로소 대한민국에서 환자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될 때까지 환자샤우팅카페는 힘겨운 환자들에게 소통과 힐링의 역할을 해낼 것이라 본다.

“외치고 싶은 환자들, 들을 준비된 사람들 모두, ‘환자샤우팅카페’로 초대합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